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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Jul 06. 2023

매년 결혼기념일은 가족사진을 찍는 날이었으면 좋겠어.

인생이라는 파도를 서핑하듯 살고 싶다.

나는 살다가 한 번씩, 여유 있게 시간을 두고 지난날의 사진들을 보며 추억여행을 떠나곤 한다.

사진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내 모습이 지금의 나에게 기분 좋은 에너지를 건네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보다 어리고 무모했던 시절에 떠난 해외여행의 순간이 담긴 사진,

다음날은 생각하지 않았던 어느 날 다저녁의 술냄새 폴폴 나는 사진,

오랜 친구들과 옷 색깔을 맞춰 입고 떠난 여행에서 지금 보면 한껏 촌스러운 포즈로 찍었던 사진,

씻지도 않은 떡진 머리로 가족들과 함께 이른 생일파티를 즐기던 한 때의 사진,

지금의 연인과 귀엽게도 어색했지만 그게 너무 설레었던 연애 초반 어느 날의 사진.


이 외에도 수많은 '일상을 살면서는 잊고 있던 순간들'이 사진을 보면 마치 그날로 돌아간 듯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순간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지금의 나에게 와닿는 순간이 참 좋다. 몽글몽글하고 흐뭇하게.


지난날의 사진들 중 가장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진은 바로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의 사진이다.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지만, 분명 나였던, 아주 오래전 어느 날의 나의 순간.

한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나와 지금보다 젊은 부모님이 담겨있는 사진들은 아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나의 에너지빔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가장 아무런 걱정도 염려도 없이 행복만 했을 나날들이 나의 순간들에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하는 소중한 사진이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최대한 많이 남기자는 다짐을 틈틈이 한다.

일상 속의 연출되지 않은 순간의 가족들 모습, 즐거운 순간이 생생히 담긴 영상, 오래 기억하고 싶은 풍경, 가장 젊은 오늘의 나와 너를.




인생을 조금 더 재미있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는 이벤트를 잘 챙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누군가의 생일, 크리스마스나, 큰 명절과 같은 날을 그 날답게 보내는 것.

그리고 그걸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

모든 기념일들을 다 챙기는 것은 무리이고 부담이지만, 우리가 나름 special day 혹은 holiday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에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고, 선물을 전하고, 조금은 특별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그 기록을 남기는 것이 인생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런데 수많은 기념일 중, 살다 보면 처음에는 특별하지만 점점 무뎌지는 기념일 중 하나가 결혼기념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엔가는 결혼기념일을 특별하게 여기고 챙기는 일이 오히려 조금은 쑥스럽거나 유난이라고 여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외식이라도 하고 지나가면 다행인 기념일. 그런데 그냥 넘어가면 뭔가 서운한 그런 기념일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결혼기념일을 하나의 가족 기념일로 만든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이 가족사진을 남기는 날이 되면 더더욱 좋겠다고 말이다.

꼭 사진관에 가지 않더라도, 전문가의 손길이 아니더라도, 가족의 순간을 조금 더 예쁘게 담는 날.

그런 하나의 가족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가족을 끈끈하게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내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보다도 훗날의 나에게, 훗날의 나의 소중한 이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추억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결국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이라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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