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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욕이 없다고 해서 무소유의 삶은 아닌데

제가 바로 돈미새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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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look.so/posts/RGtqkmV


- 글을 쓰게 된 목적 : 


alookso에서 시작하는 에세이 세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돈을 소재로 써 보았다. [돈]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마주했던 첫 기억은 [엄마 백 원만]. [엄마 백 원만]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했던 것일까. 당시의 나는 백 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돈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돈 쓰는 것에 매우 인색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에 인색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돈 쓰는 것 자체에 공포감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돈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묻는다면, 안전하다는 착각을 심어준다는 점이 좋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왜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천박하다는 느낌이 생길까. 모두 돈을 좋아하면서, 한편으로 쉬쉬하는 돈. 돈에 대한 에피소드와 생각, 고찰 등이 궁금한 분들은 브런치를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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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얼룩소에서 진행하는 [얼에모], 얼룩소 에세이 쓰기 모임에 참가하는 글입니다. 소재 다섯 개(글 - 일 - 돈 - 쉼 - 나)에 대해 한 달에 2회가량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합평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경어체를 사용하던 평소와 달리 부득이 평어체를 사용하게 됨을 양해 바랍니다.


=====


구매욕이 없다고 해서 무소유의 삶은 아닌데


0.

누구나 세상을 다

가졌던 때가 있다


돈과 처음 만난 기억을 떠올리면, [엄마 백 원만]이 스쳐 지나간다. 이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아마 나와 나이가 비슷한 세대는 깊게 공감하리라. 비록 백 원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 딱 한 가지뿐이었지만, 백 원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바로 그 느낌이 좋았다. 아폴로, 쌍쌍바, 쥐포, 쫀디기, 논두렁. 이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면 좋을까 곰곰이 고민하다가 결국 가장 오래 먹을 수 있는 아폴로를 골랐었지.


아폴로를 집에 들고 갔다가 왜 불량식품을 사 먹냐면서 엄마한테 혼이 났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내가 혼났는지 형이 혼났는지 정확하진 않은데, 아무튼 혼났던 것 같다. 솔직히 조금 억울했던 게 불량식품이 몸에 해롭다면, 불량식품을 사 먹은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라, 불량식품을 파는 사람을 문제 삼아야 했던 거 아닌가 싶었으니까. 여하튼 그때부터 몰래 사 먹었으면 먹었지, 아폴로를 집에 들고 오는 일은 없었다. 아폴로 다음으로 나의 원픽은 쌍쌍바. 쌍쌍바는 두 개를 두 손에 하나씩 잡아서 먹는 느낌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 특히 좋았다. 기분 좋은 날엔 친구에게 호기롭게 하나 건네주기도 하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엄마 백 원만]에는 쿨타임이 존재함을 본능으로 알았다. 무작정 [엄마 백 원만]을 재촉해서 외친다고 해서 엄마에게서 백 원이 나올 리 없었다. 어설프게 떼를 쓰다간 오히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게 될 뿐.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형이 보여준 실패 사례를 보고 배운 것 같다. 징징댄다고 해서 백 원이 나올 리 없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지만, 눈치로 깨달았다고 해야 정확할까. 집안일로 정신없이 분주하던 엄마가 백 원을 줬다는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한 번 툭 시도해야 성공률이 높아지는 법을 어떻게 알았던 것인지.


나의 손에 쥐어지는 작디작은 이순신 장군 하나에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그때 그 느낌을 능가한 적이 없는 걸로 봐서는, 그때의 백 원은 지금으로 치면 백만 원 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용돈 기입장과 저금통이 생기면서, [엄마 백 원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정액제로 제공되는 용돈의 개념을 가르치기에는 너무 어렸던, 어린이라는 호칭도 살짝 과분하여 유사 어린이였던 시절에나 허락되었던 축복, [엄마 백 원만]. 요즘 어린이들은 [엄마 천 원만]을 외치려나, [엄마 만 원만]이라 말하려나. 금액은 적어도 입에 착 감기는 건, 역시나 [엄마 백 원만].




1.

구매욕이 없다고 해서

무소유의 삶은 아닌데


근검절약을 모토로 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이끌어 온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였을까, 수중에 용돈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딱히 부족했던 적도 없었다. 문제집이나 학용품을 사는 것같이 용도가 명확한 돈은 따로 요청해서 받을 수 있기도 했고. 뭔가를 구매할 때마다 이게 정말 필요한지 엄청 많이 고민하는 편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옷이나 신발을 스스로 사기 시작했을 정도로, 외형적인 멋을 부리기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자동차에도 별로 흥미도 없었고. 심지어 군 생활하던 선/후임들은 집에서 용돈까지 받아다 썼던 모양인데, 한 달에 많아 봐야 10만 원 정도 받던 월급이 오히려 남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지. 그러니까 정말 생필품만 구매했던 셈.


상대적으로 돈 쓰는 재미를 별로 몰랐던 것 같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고 싶은 물건을 목표로 돈을 모아본 적이 없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 만화책이나 우표, 미니 게임기와 컴퓨터 게임 CD, 딱지와 구슬 등 자신이 수집하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열심히 용돈을 모았던 형과는 사뭇 달랐던 것. 형이 자기가 샀던 물건에 흥미를 잃으면, 그제야 형이 쓰다 버린 물건을 가지고 놀았다. 다른 사람이 쓰던 것을 물려받아 쓰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고.


구매 욕구가 없으니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나 싶겠지만, 오히려 정반대. 나는 소유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다만 내 것이 되기 전까지는 갖고 싶다거나 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가, 내 것이 되고 나면서부터 집착이 생기기 시작할 뿐. 집착이란 특정한 대상에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감정. 내 것에 집착이 강한 까닭은 아마 스트레스를 회피하려는 본능 때문일 거다.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받는 스트레스, 구매한 물건을 제대로 쓰지 못했을 때 받는 스트레스, 쓰임새가 불분명한 물건을 가질 때 받는 스트레스 등을 못 견디기 때문.


지금도 뭔가를 구매하기 전에 굳이 이 물건을 사야 하는지 신중하게 따져보고, 혹시 한 번 쓰고 버릴 것 같지는 않은지 스스로 꼭 묻는다. 쓸데없는 물건에 쓰는 돈이 아깝기도 하지만, 물건을 제대로 쓰지 못했을 때 받게 되는 다양한 스트레스가 너무도 싫기에. 그래서 필요한 물건을 새롭게 사기보다는 주어진 물건에 어떻게든 의미 부여하고, 최대한 잘 활용하는 게 익숙하고 편했나 보다. 새로운 것을 사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재구성하거나 새롭게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던 나만의 창의성은 이런 성향에서부터 기인한 것은 아닐까.




2.

나에게서 돈이란

안전하다는 착각


돈에 관심 없다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다. 이 말은 수능 지리를 가르치는 이기상 강사가 말했던 명언. 그런데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데, 돈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부자가 될 수 없을 텐데, 왜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천박하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세상에는 돈보다 위대한 가치가 있고, 돈보다 위대한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교육받은 탓인가. 돈보다 위대한 가치, 신념, 사명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 심지어 못 찾는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왜 돈이 좋은지 설명할 수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구매 욕구가 없는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돈에 대한 집착을 낳았다. 일단 돈은 굳이 왜 가져야만 하는지 의미와 쓸모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게다가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효능감은 마치 백 원만 있으면 뭐든지 다 살 수 있던 어린 시절의 그 충만감과 일치하기도 했고. 쌓여가는 통장 잔액이 주는 안전한 든든함은 보너스. 그러니까 나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상태], [안전하다는 착각]이 좋았던 모양이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태를 좋아했었는데, 도리어 돈에 집착하게 된 건 살짝 아쉽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돈도 써 본 놈이 잘 쓰는 법. 아직도 어떻게 써야 돈을 잘 쓰는 건지 와닿진 않는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빚진 것 없이 살았으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음에 감사하다 해야 할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서 규모 있게 소비하는 삶의 패턴에 감사하다 해야 할까. 돈에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나는 아직도 돈을 쓰는 게 두렵다. 도대체 얼마나 돈을 많이 모아야 비로소 나는 편안하게 돈을 쓸 수 있을까.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나는, 어쩌면 돈에 관심 없다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는, 다시 말해 돈에 미친 사람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집착은 몰입의 즐거움을 주기에 행복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기도 하지만, 자칫 정해놓은 틀을 벗어나는 스트레스 때문에 행복으로 가는 길을 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돈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도, 돈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일단 안전하다는 착각을 깨뜨리지 않는 수준까지만, 쓸데없어 보이는 소비를 조금씩만 늘려볼까 싶다. 사람이 돈을 쓰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나에게 돈이란 행복을 위한 도구이길 바라기에. 이왕이면 돈에 미친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행복에 미친 사람이 되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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