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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대신 글검토, 새로운 시대의 작문

이 글은 AI가 썼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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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발전은 글쓰기의 대중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글을 전문적으로 쓰거나 글쓰기에 진심이었던 사람들, 이미지와 동영상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AI의 급격한 발전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누군가 절필을 선언하기도 하고, 누군가 이 도구를 활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알파고와 싸워 이긴 유일한 인류, 이세돌이 느꼈을 고독의 감정이 이제 대중에게도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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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준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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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대신 글검토

새로운 시대의 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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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글쓰기보다 글검토라는 개념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예전의 나는 글을 쓸 때, 한 문장을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과정을 반복했다. 글쓰기에는 별로 재주가 없고, 글 고치기에는 재주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에 공을 들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에 정성이 스며들고, 어느새 글쓰기의 과몰입 상태에 이르곤 했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할수록 그 몰입은 더욱 깊어졌고, 그래서 글을 완성해 내보낼 때면 마치 해산하는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정성스럽게 작성한 글을 배포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한 조각을 보내는 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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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만나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는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글의 방향과 주된 메시지를 내가 주도하고 80% 이상 내가 끌고 간 글은 여전히 ‘내 글’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반대로 AI가 대부분을 써주고 나는 약간의 수정만 조금 거쳤을 때, 과연 이 글을 내 글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전에 내가 썼던 글들은 내 생각을 오로지 내 힘으로만 풀어놓은 기록이었으니 당당하게 '내 글'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역할이 미미했던 글 앞에서는 그 애정과 책임감이 점점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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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저자와 편집자의 역할이 나뉜다. 어떤 경우엔 저자는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편집자가 대부분의 글을 써주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책을 저자의 책이라 부른다. 편집자가 대필 작가의 역할을 했을지라도, 그 글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저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좋은 글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편집의 노력은 점점 줄고, 저자의 책임만 남는 셈이다.


우리는 '글쓰기'가 아닌 '글검토' 혹은 '글컨펌'으로 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 살고 있다. 처음에는 이 변화가 꽤 불편했다. 취미 삼아 쓰던 글쓰기를 잠시 멈추게 될만큼 심리적인 장벽이 생겼다. 글을 쓰려는 의욕 역시 점점 꺾여서 굳이 글을 써야 하나 싶은 권태에 빠졌다. 나는 왜 AI가 쓴 글을 보며 그토록 심리적인 저항을 느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글을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감정, 세계관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글쓰기란 나에게 장인 정신을 요구하는 일이었고, 동시에 나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공을 들였고, 흐름과 어조, 단어의 질감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다듬었다. 그런데 이제는 AI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예전처럼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손쉽게 완성도 있는 결과물이 나오니, 내가 그토록 애써온 노력이 무색해진다. 내가 공을 들이며 글을 쓰는 작업의 과정이 무가치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던 심리적 장벽의 실체, 무가치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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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정은 아마 글쓰기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리라 본다. 그림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면, 그리기에 오랜 시간 몰입해온 작가가 AI가 손쉽게 그린 그림을 보고 느끼는 감정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림 작가에게 그림 작업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다. 자기 삶의 일부이고, 자신을 상징하는 정체성 그 자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5326359?sid=105


지난 2025년 3월 26일 ChatGPT에 추가된 이미지 생성 기능은 온라인 세상을 지브리풍의 프로필 사진, 그리고 커뮤니티에는 각종 4컷 만화와 패러디 사진으로 가득하게 했다. 이미지를 특정 화풍으로 바꾸는 기술, 캐릭터를 일관성 있게 만드는 기술, 기존 사진을 프롬프트에 따라 변경하는 기술은 이미 존재하여 암암리에 알려졌다고 하나,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긴 어려웠다. 이제 그것마저도 일반인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흔히 금손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세계가 나에게도 열렸다.


이번 ChatGPT 열풍은 생각보다 길게 진행되는 듯하다. 아예 커뮤니티나 SNS의 기본 장치로 자리매김할 기세이다. 인스타툰으로 인기를 누리던 많은 작가들 중 상당수는 이번 기술의 발달로 펜을 내려놓고 싶다고 말할 정도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컨텐츠의 핵심은 꾸준함에 있다. 문턱이 아무리 낮아졌다한들, 컨텐츠는 만들던 사람이 만드는 법.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은 살아남아 오히려 이 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생산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좋은 그림을 알아볼 줄 아는 감식안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AI가 채워주면서 자기 생각을 오히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림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하거나 몰입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여 그리는 데 거리낌도 없다. 심리 장벽이 없는데 오히려 더 과감하게 자신의 세계를 펼칠 수 있지 않을까?


글과 그림을 예시로 들었지만, 과연 이게 글과 그림만의 문제일까?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경험하고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쌓이는 나만의 노하우, 각자의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은가? 이것이 매우 쉽게 대체된다고 했을 때 느끼게 될 감정, 그것이 바로 정체성의 혼란이다. 조금 멀게는 2016년 알파고와 싸워 유일하게 승리한 인간인 이세돌이 홀로 느꼈을 감정, 이제는 그 감정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게 될 뿐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이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음악, 사진, 기획, 프로그래밍 등 어떤 영역이든 마찬가지다. 결국 앞으로 각광받을 인재는 하나의 분야에만 몰입해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도 필요한 순간 몰입해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기존에 갖고 있던 노하우는 언제든지 갖다 버릴 수 있고,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이 오늘 당장 없어져도 혼란스럽지 않은 사람이 살아남을 것이다. 신인류의 등장이다. 그러한 세계에서 고지식한 나는 아마 살아남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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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나로선 인공지능이 만들고 있는 급격한 변화가 썩 달갑진 않다. 그러한 나조차도 요즘은 생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계속 이렇게 심리적인 장벽을 탓하며 글을 쓰지 않는다면, 기껏 내가 오랫동안 길러온 글쓰기 근육 자체가 퇴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글쓰기를 계속 해나가겠다고 다짐한다. 과거의 장인 정신과 지금의 도구 활용 사이에서 점차 균형을 잡는 법을 익히는 것. 아마 지금 내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글쓰기의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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