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별, 반짝거림
언제일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루 세 번 하늘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다면,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니다.'
꽤나 오래전에 들은 말이기 때문에 정확히 이런 말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은 다른 뉘앙스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하루 세 번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자는 마음가짐만큼은 꾸준히 되새기고 있다.
유독 힘든 날이 찾아오면 더더욱 그 말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럴 때면 억지로라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유독 긴 시간 동안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떠다니는 구름과 노을, 시간이 늦은 때에는 달과 별이 한가득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이 나에게 말을 걸진 않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을 보다 보면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바뀌어만 가는 나의 삶에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주는 듯하다.
특히나 나는 어두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좋아한다. 반짝이는 별이 왜 좋은지는 나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한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삶을 살고 싶어서일까, 자신을 불태우면서도 다른 것들을 위해 빛을 내뿜는 모습에 대한 동경일까, 아니면 그냥 반짝반짝 빛나는 게 예뻐서일까. 별 말고도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 빛이 비치는 바닷가도 좋아하는 걸 보면 단순히 예뻐서 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단순히 예뻐서일지라도 내 마음속 여러 순간에 하늘과 별, 반짝거림이 들어있다. 철원 산속에서 경계근무를 설 때에, 새벽에 위병소에서 나와 하늘을 바라보면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처음 그 별들을 보았을 때의 압도되는 느낌이란. 동기들과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사회에서 벗어나 군대라는 곳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구나. 힘들지만,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다 보면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하는구나.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나는 역시 하늘을 보았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바로 들어간 회사에서 혼이 나고, 땀을 뻘뻘 흘렸을 때.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한 시간 반 동안 무력감에 가득 찼다. 이렇듯, 어떻게 해도 좋아질 것 같지 않는 순간이었음에도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었다. 바로 3호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였다. 집으로 돌아갈 때 지하철 창 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져가며 아름다운 빛이 한강에 비추곤 한다. 그럴 때 멍하니 하늘과 한강을 바라보다 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곤 했다. 힘들지만 내일도 어찌어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아름다운 하늘과 한강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요즘은 크게 힘들진 않지만 습관처럼 하늘을 보게 된다. 약간은 불안한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하고,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듯한 기분이다. 어렸을 때 막연히 이때쯤이면 안정된 곳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도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니, 언제까지고 쇠를 두드리는 것처럼 나 자신을 제련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늘은 맑다. 그렇게도 지독한 장마가 끝난 탓일까, 맑은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이 여유라는 걸 몸소 느끼게 하는 듯하다. 뜨거운 열기에 힘들어하다가도,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지금의 이러한 혼란이 결국은 끝날 것을 아니까. 하늘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일 테니까.
습관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하늘, 자연, 바다, 반짝거리는 것들이 너무나 아름답다며 봐보라고 한다. 내가 보는 아름다운 것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위로를 받은 것처럼 각자 가지고 있는 상처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내가 그 말을 들었던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말해야겠다.
하루 세 번 하늘을 바라보라고, 당신의 삶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