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 2025. 06. 23.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의과대학 정원 문제로 정국이 시끄러웠던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부가 이번에는 강경하게 나설 조짐을 보이더니, 의사들과 의과대학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다가 결국 이다지도 긴 파업과 수업 거부가 이어지고 말았다. 민기는 24년도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그러나 OT를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일이 터지고는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한지 어느새 1년 반 가까이가 지났다. 휴학을 더 이어가다가는 유급을 당할 상황에 처하자 민기는 급히 입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군 입영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과거의 나 역시, 언제든 육군에 가고싶다 하면 굳건이가 냉큼 집으로 입영통지서를 꽂아주고 군대로 끌고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군 행정이 그렇게까지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지는 않더라. 신체검사를 받은 사람이 입영하고자 하며, 모집병에 지원할 생각 없이 육군 어디든 좋으니 끌고가기를 바란다면, 병무청에서 공지한 일정에 따라 당년 혹은 차년도 입영일자 본인선택원을 접수해야 한다. 이 일정을 놓쳤다면 자신이 원하는 날짜에 빈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다가 추가접수 공지가 뜨면 일명 '군켓팅'을 시도하거나 육군 기술행정병에 지원하는 선택지가 남게 된다.
민기도 같은 케이스였다. 내가 학기중에 한창 CPU 때문에 고생하고 있을 때, 민기는 군켓팅에 계속 실패하여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몇 번 시도했다고 그랬지, 여섯 번이었나 일곱 번이었나. 여하튼 예닐곱 번의 시도 끝에 민기는 빈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이 녀석은 15사단 신병교육대로 입영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입영 일자는 굉장히 빨랐다. 6월 23일, 내 여름 계절학기가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유난히도 맑았던 유월의 하늘이었다. 간만에 일찍 잠을 깨어 아침을 먹고 동서울 터미널로 향했다. 원래라면 민기 가족들이 민기와 함께 화천으로 향했겠지만, 하필 민기가 겨우 잡은 입영일이 가족여행 일정과 겹쳐버리는 바람에 나와 민주가 가족분들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가족 여행 날에 군대를 간다니, 여러모로 애석한 일이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군대를 가는 것도 아닌데, 속에 뭐가 약간 얹힌 듯한, 답답하면서도 싱숭생숭한 기분과 묘한 긴장감이 계속 감돌았다. 그날 터미널에는 유난히 장병들이 많이 보였다. 아침 일찍 부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모처럼 휴가를 나온 병사들. 어쩌면 민기의 선임이 저기에 섞여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터미널 한가운데서 바쁘게 지나가는 군복 입은 다양한 얼굴들. 터미널에 가득 찬 사람들 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겠지. 민기도, 세 달 뒤의 나도.
터미널에서 한눈을 팔고 있으려니까 민주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민주는 이틀 전 주환, 민기와 함께 만났을 때 본 게 졸업하고 처음 본 것이었다. 민주도 곧 미국으로 떠난다고 했었다. 이번에 보면 몇 년 뒤에는 볼 수 있겠느냐며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았던 그저께였다. 오늘 떠나는 사람을 위해 다음에 떠날 두 사람이 먼저 터미널에 도착했다. 머지 않아 오늘의 주인공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를 빡빡 깎은 민기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리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로 들어오는 민기를 편의점으로 이끌고 들어가 요깃거리들을 이것저것 사들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하리보를 까먹으며 민기의 가방을 구경했다. 군대를 먼저 가는 선배님이 어떤 것들을 준비해서 가시는지 알아두면 좋으니 유심히 살펴봤다. 각개전투 때 쓸 보호대와 올인원 바디워시, 일체형 충전기, 행군 때 도움이 될 깔창 등이 기억에 남는다. (TMI. 그러나 준비가 무색하게도 이 녀석은 훈련소에서 감기에 결막염까지 걸려 행군을 아예 빠졌다. 더군다나 혹서기라 행군을 군장도 안 메고 몇 km만 걸었다 그랬었나.)
버스 시간이 되어 플랫폼으로 걸어나갔다. 생각보다 민기와 함께 15사단으로 입영하는 사람들이 같은 버스에 여럿 보였다.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겠구나(?) 생각하며 서울에서의 마지막 사진 몇 장을 찍고 버스에 오르니, 이윽고 화천을 향해 출발했다. 화천까지 가는 길은 당연하게도 생판 처음 타보는 고속도로와 산복도로의 집합이었다. 중간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차가 산에 들어서며 구불구불한 도로를 질주하니 머리가 좌우로 흔들려 잠에서 여러 번 깼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산복도로를 달려 무수한 정류장들을 지나니 마침내 종점인 사창리 터미널에 버스가 닿았다.
이제 입영하기 전 마지막 만찬을 즐길 차례다. 주변의 식당을 알아보다가 들어가기 전에 든든하게 먹이면 좋겠다 싶어 국밥집으로 향했다. 후식으로는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이맘때 유행했던 메가커피의 팥빙수 비슷한 메뉴가 화천에서는 품절이 아니길래 이걸 먹기로 했다. 막상 메가커피에 들어서니 주문이 많이 밀려있는 듯 보였다. 입영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메뉴가 안 나와서 똥줄을 좀 태우다가, 20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겨우 음식을 받아 얼른 사진을 찍고는 허겁지겁 먹었다. 실내가 좀 추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음료가 차가우니까 먹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다 못 먹은 팥빙수를 들고서 택시에 올랐다.
신교대 앞에 도착하고 보니, 입영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이 한가득이었다. 주차장으로 변한 연병장을 지나 단상 쪽에서 입영 관련 안내장을 받고 민기는 따로 빠져 물품 같은 걸 수령한 뒤 다시 만났다. 부대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군수품들과 총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굳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기엔 좀 그래서 연병장 쪽으로 나와 정문 간판 쪽을 향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이게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분명 입영 행사가 2시부터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본 건물 쪽으로 줄을 따라 가보니 조교가 금일 입영 행사는 취소되었다고, 여기서 작별하셔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민기를,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보내게 되었다. 화천의 여름은 많은 걸 하기엔 너무 더웠다. 이미 지난해 12사단에서 27도의 기온에 얼차려를 받아 훈련병 한 명이 사망한 사고도 있었던 만큼, 신병교육대에서 고온을 특히 주의하고 있는 듯했다. 어쩌겠는가, 아쉬운 마음에 연신 잘 가라고 인사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 먹다 남은 팥빙수 용기 세 개만이 손에 들려있을 뿐이었다. 아까 택시에서 내릴 때 받은 명함으로 다시 전화를 걸어 터미널로 돌아갔다.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신교대에서 받은 입영 안내 자료를 하염없이 들여다봤다. '더 캠프'라는 앱으로 병사 가족들이랑 소통을 한다기에 나도 설치해서 민기를 등록해보기도 하고, 버스 터미널 뒤에 새장이 있길래 구경하다가 민주랑 노가리를 까기도 하고,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는 국민연금 가입 신청을 하라기에 연금공단에 전화를 하기도 하고. 유독 길게 느껴지는 대기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주 후에 나는 공군 면접을 보게 된다.
EP 08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