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속에서 나의 자리를 감지하는 힘
16화. 고유 수용감각 — 사랑 속에서 나의 자리를 감지하는 힘
✒️ 정담훈 (Jung Dam-Hoon)
우리는 눈을 감고도 팔을 뻗을 수 있다.
계단의 마지막 칸을 밟기 전, 발끝은 이미 그 높이를
안다. 몸 안에 숨어 있는 작은 나침반이 늘 나의 위치를
확인해 주듯, 고유 수용감각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조용히 알려준다.
사랑도 다르지 않다.
관계 속에서 중요한 것은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서로의 무게와 균형을 얼마나 세밀하게 감지하느냐다.
내가 상대에게 과하게 기대고 있는지,
스스로를 잃지 않고 서 있는지,
혹은 혼자 너무 앞서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사랑은 금세 균열을 만든다.
사랑은 화려한 불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숨결이 겹쳐지는 작은 감각이다.
상대의 걸음이 흔들릴 때 내 발끝도 미세하게 떨려야
한다. 그 신호를 무시하면 균열이 깊어지고, 그 신호에
함께 흔들릴 수 있을 때 사랑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랑은 춤과 닮았다.
한쪽이 발을 디디면 다른 한쪽도 그 리듬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너무 당기면 춤은 끊어지고, 너무 밀어내면 춤은
흩어진다. 서로의 움직임을 감각할 때 사랑은 춤이
되고, 춤은 사랑이 된다.
또 사랑은 줄타기와도 같다.
밧줄 위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면
내 몸뿐 아니라 바람의 방향, 발끝의 각도까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 예민한 감각이 모여 추락을 막는다.
사랑도 이와 같다.
짧은 눈빛 하나, 지나간 침묵 하나,
그 작은 신호를 외면하면 관계는 쉽게 무너진다.
사랑은 악기와도 같다.
현을 너무 팽팽하게 당기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를 내지 못한다.
때로는 당기고, 때로는 풀어내며
서로의 음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유 수용감각은 바로 이 조율의 순간을 알려주는 귀다.
그리고 사랑은 자연과도 닮아 있다.
나무가 뿌리로 땅을 단단히 붙잡을 때
가지가 자유롭게 흔들릴 수 있듯이,
자신의 자리를 아는 사람만이 관계 속에서 흔들림 없이
선다.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밀어내지만
해안선은 그 움직임을 기억하며 껴안는다.
사랑도 이처럼 서로의 움직임을 받아내는 힘 속에서
지속된다.
사랑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무너질 때 다시 세우는 힘이다.
우리가 균형을 잃을 때마다
사랑은 우리를 시험한다.
그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상대의 흔들림을 나의 감각으로 함께 느끼는
것이다.
고유 수용감각은 결국,
사랑의 무게를 나눠 짊어지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 힘은 두 사람이 서로를 잃지 않도록 묶어주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드는 내밀한 좌표가 된다.
길을 잃은 듯 흔들릴 때도, 그 좌표는 우리를 다시 불러
세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몸과 마음이 동시에
기억하는 은밀한 약속처럼.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지도보다 나침반에 가깝다.
세밀한 길을 알려주지 않아도
함께 걸어야 할 방향만은 잊게 하지 않는다.
남은 거리는 끝내 알 수 없어도,
그 좌표 하나만으로 우리는 다시 나란히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