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연애학 - 부재

없다는 사실이 사랑을 증명할 때

by 정담훈

21화. 부재 – 없다는 사실이 사랑을 증명할 때


✒️ 정담훈 (Jung Dam-Hoon)


사랑은 대체로 곁에 있을 때 확인된다.

함께 걷는 거리, 웃음이 겹치는 순간, 저녁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된다.

사랑이 가장 깊이 드러나는 순간은 오히려 부재일

때라는 것을.


사람이 없는 방은 낯설다.

늘 틀어놓던 음악이 꺼져 있어도, 그보다 더 큰 정적이

귀를 메운다. 창문을 통과한 햇살은 어제보다 싸늘하고,

빈 의자 하나가 집 안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몸은 정확히 느낀다.

사라진 숨결, 대답 없는 목소리, 끊어진 웃음이 곧

존재의 무게를 말해준다.


후각은 특히 잔인하다.

베개에 남은 향기, 옷장 깊숙이 스며 있는 냄새,

컵 가장자리에 남은 입술의 흔적.

이 사소한 것들이 부재를 끝없이 불러낸다.

손끝은 공허하다.

습관처럼 뻗으면 닿던 손이 없고, 팔에 기대던 무게가

사라졌다. 허공 속에서 우리는 손의 빈자리를 배운다.

청각은 침묵을 증폭시킨다.

그 침묵이, 더 크게 들린다.

그리고 시간은 기다림을 늘려가며,

‘아직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끝없이 각인시킨다.


사랑은 이 부재 속에서 시험을 받는다.

견디지 못하면 불안이 자라나고,

불안은 확인을 요구하며, 확인은 집착이 된다.

그러나 부재를 여백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은 달라진다.

그 빈 시간을 기다림으로 채우고, 불안을 신뢰로

덮으며, 그리움 속에서도 마음을 단단히 붙든다.

떨어져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사랑. 그것이 부재가 가르치는 성숙이다.


부재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네가 원하는 건 그 사람 자체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메워주는 빈자리인가?”

“그리움은 타인 때문인가, 아니면 네 안의 허기

때문인가?”

이 질문 앞에서 무너지는 사랑은 의존에 불과하다.

그러나 담담히 기다려내는 사랑은 한 뼘 더 깊어진다.

고통을 탓하지 않고 버텨낼 때, 사랑은 새로운 층위로

들어선다.


부재는 오감 전체로 경험된다.

시각은 빈자리를 기록하고, 청각은 침묵을 우려낸다.

후각은 잔향으로 다시 불러오고, 촉각은 닿지 못한

허공에서 허전함을 배운다.

시간 감각은 기다림을 늘리며 인내를 시험하고,

자존 감각은 혼자 남은 순간에도 스스로의 가치를

묻는다. 사랑은 이 모든 감각을 지나 더 단단해지고,

때로는 더 아프게 흔들린다.


사랑은 두 가지 시간을 함께 배워야 한다.

곁에 있을 때의 충만함과, 떨어져 있을 때의 고요함.

함께하는 순간은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부재의 시간을 견디는 일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 공백을 의심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불안이 아니라 신뢰로 채울 수 있을 때,

사랑은 성숙한다.


부재는 차갑지만 동시에 뜨겁다.

없음이 오히려 ‘여전히 내 안에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떠나도 부재를

감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는 떠난자리에서조차 계속 살아

있다. 없음 속에서 있음이 증명되는 것,

그것이 부재가 남겨주는 가장 큰 역설이자 선물이다.


사람의 부재는 공허가 아니다.

그 공허는 남겨둔 흔적과 기억, 여전히 이어지는

감각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그 부재를 통해 사랑을 배운다.

없음이 곧 있음으로 증명되는 순간, 사랑은 가장 깊은

자리에서 우리를 흔들고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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