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다툼, 같은 후회
27화. 반복 – 같은 다툼, 같은 후회
✒️ 정담훈 (Jung Dam-Hoon)
휴대폰을 덮고 나서도, 화면 속 이름이 자꾸 떠올랐다.
지워버린 메시지창이 머릿속에 다시 열리고,
손끝에 남은 미세한 진동이 사라지지 않았다.
끝냈다고 믿은 순간에도 마음은 아직 제자리였다.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끝과 시작이 맞닿아 있었다.
우린 서로를 놓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다시 같은 문 앞에 서곤 했다.
한때는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시절엔 침묵조차 다정했지만
지금의 침묵은 거리의 언어가 되었다.
말을 아끼는 게 배려였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피로가 말보다 먼저 찾아온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른 곳을 보고,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생각에 잠긴다.
함께 있지만, 마음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싸움은 언제나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다.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말,
그 말의 뒷면에 깃든 오래된 상처,
그리고 말보다 더 빠르게 자라나는 오해.
서로의 말이 엇갈리고,
사소한 감정이 벼락처럼 터져 나온다.
“넌 왜 늘 그렇게 말해?”
“너는 언제나 똑같아.”
그 대사는 수없이 반복되어
결국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후회가 따라오고,
후회는 미련으로 바뀌며
또다시 서로의 마음을 흔들었다.
우린 매번 다짐했다.
이번엔 다를 거라고,
이번엔 정말 끝이라고.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에 나오는 순간,
이미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감정은 그렇게 순환한다.
서로를 탓하다가도,
잠시의 공백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낯설어지면
또다시 같은 손을 붙잡는다.
그 손끝의 따뜻함이 남아 있는 한
우린 떠나지 못한다.
다툼 뒤의 포옹은 늘 따뜻하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다가,
가슴에 묻히면 금세 식어버린다.
그 온기가 잠시 우리를 착각하게 만든다.
이제 괜찮을 거라고,
이번엔 정말 달라질 거라고.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린 다시 같은 자리에서 싸운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의무처럼 반복되고,
서로의 감정은 점점 무뎌진다.
사랑이 아니라 관성으로 움직이는 순간,
감정은 관계의 그림자가 된다.
사랑은 원래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되돌아오고, 머물고, 흩어지고, 다시 이어진다.
우린 그 반복 속에서 점점 닳아가며
서로의 감정을 닮아간다.
싸움의 리듬도, 화해의 방식도,
심지어 후회의 타이밍마저 똑같다.
그 익숙함이 우리를 붙잡고,
붙잡힌 우리는 다시 반복한다.
시간이 지나면 싸움의 이유조차 희미해진다.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는지보다
그때의 공기만 남는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식어가는 걸 느끼면서도
그 식음마저 받아들인다.
싸우는 것보다
그냥 조용히 앉아 있는 게 편해진다.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그냥 잊는 게 쉬워진다.
그건 평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든 감정이 닳아버린 상태다.
그렇게 사랑은 내용이 사라지고,
형태만 남는다.
우린 여전히 함께 있지만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서로를 바라보던 시선은 무뎌지고,
대화의 온도는 식어가며,
남은 건 지난날의 습관뿐이다.
그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린 아직 사랑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어느 날,
그 반복마저 멈춘다.
다툼도, 후회도, 눈물도 없이
아무 일 없는 하루처럼 지나간다.
그날은 유난히 조용하고,
모든 것이 이상하게 평온하다.
그때 깨닫는다.
사랑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걸.
수많은 되돌림 끝에,
서서히 희미해지는 일이라는 걸.
그 희미함이 때로는 슬프지만,
그 속에는 자유가 깃든다.
감정이 다 타버리고 난 자리엔
조용한 공기만이 남는다.
그 공기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멀어진다.
누군가는 잊으려 하고,
누군가는 끝내 잊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모든 사랑은 반복을 거쳐 제자리를 찾는다.
끝을 향해 걷는 게 아니라
천천히 멀어지는 것이다.
그 멀어짐 속에서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