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연애학 - 존재

너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기적

by 정담훈

19화. 존재 – 너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기적


✒️ 정담훈 (Jung Dam-Hoon)


사랑은 ‘존재’라는 감각 위에 놓인다.

눈빛의 떨림, 손끝의 체온, 목소리의 울림조차 모두

“너와 내가 여기에 있다”는 진실에서 비롯된다.

사랑은 만남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의식이다.


존재를 갈망하는 인간

태어난 아기는 울음을 통해 “나는 여기 있다”라고

외친다. 엄마의 눈길과 손길이 그 울음에 답할 때,

존재는 세상에 뿌리를 내린다.

연애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눈 속에서, 마음속에서

“너는 내게 실재한다”는 답을 듣고 싶어 한다.

사람은 누구나 존재를 증명받아야 살아남는다.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감각이 무너질 때,

사랑은 가장 먼저 퇴색하기 시작한다.


존재가 무시될 때의 상처

사랑에서 가장 잔혹한 순간은 떠남보다도

‘지워짐’이다.

곁에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처럼 대우받는 것.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있지만,

상대의 눈은 휴대폰 화면만 따라가고,

내 말은 공중에서 흩어져 아무 데도 닿지 않을 때.

같은 이불 아래 누워 있어도,

두 마음은 서로 다른 별자리처럼 멀리 흩어져 있을 때.

그때 우리는 묻는다.

“나는 아직 너의 세계에 존재하는가?”

이 질문이 쌓이면 사람은 투명인간처럼 희미해진다.

존재가 무효화될 때, 사랑은 사라짐보다 더 깊은 고통을

안긴다.


작은 의식들의 힘

그러나 존재를 되살리는 힘은 늘 사소한 의식 속에 숨어

있다. 출근길에 건네는 짧은 안녕, 늦은 밤에도

기다려주던 따뜻한 불빛,

평범한 대화 속에 묻어나는 이름 부르기.

그 모든 순간이 서로의 존재를 다시 확인해 준다.

사랑은 화려한 이벤트로 지켜지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반복이 매일 새롭게 도장을 찍어주듯,

존재를 굳건히 남긴다.

사랑은 거대한 증명서가 아니라, 작은 확인서의

연속이다.


진짜 나로 서는 용기

존재는 가면을 쓴 얼굴로는 지속되지 않는다.

상대의 기대에 맞춰 연기하는 순간,

그 자리는 ‘나’가 아니라 허상만 남는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벗겨져야 한다.

흠집 난 얼굴, 서툰 표정, 모자란 말투까지 드러낸 채

서야 한다.

그것이 존재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을 ‘살(flesh)’이라 불렀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드러나며 서로 얽히는 것.

연인 앞에서 가장 솔직한 숨결을 내어놓을 때,

우리는 서로의 삶을 떠받치는 뿌리가 된다.


존재와 시간

존재는 거리로 측정되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목소리가 닿지 않아도,

상대가 내 안에서 살아 있다면 존재는 지워지지 않는다.

반대로, 매일 곁에 있어도 마음이 비어 있다면

그 관계는 이미 사라진 것과 다름없다.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처럼,

존재는 단순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 속에 스며드는 것이다.


존재라는 기적

사랑에서 존재는 결코 거창하지 않다.

길 위를 함께 걸으며 발자국을 나란히 남기는 일,

식탁 위 국그릇을 서로 밀어주는 일,

밤이 깊을수록 서로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

이 작은 장면들이 쌓여

“오늘도 네가 내 앞에 있고, 내가 네 앞에 있다”는

기적이 완성된다.

사랑은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어제의 상처와 내일의 불안을 넘어,

지금 이 순간 숨결이 따뜻하고, 눈빛이 서로를 비춘다는

사실.

존재란 결국, 사랑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깊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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