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연애학 - 틈

보이지 않는 틈

by 정담훈

37화. 틈 - 보이지 않는 틈


✒️ 정담훈 (Jung Dam-Hoon)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틈이 있다.

그건 균열이 아니라 호흡이다.

함께 있을 때조차 조금은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길 위에서도 서로 다른 속도로 걷는다.

사람은 그 어긋남을 불안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그 틈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연애 초반에는 그 거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대화가 설렘이고, 모든 시간이 기다림이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서로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바뀌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면 마음의 틈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 틈은 어쩌면 ‘익숙함’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상대를 보는 대신, ‘함께 있음’에 안주한다.


연애를 오래 하면 누구나 비슷한 시점을 맞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던 관계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사이로 변한다.

대화가 줄고, 서로의 표정에 해석이 붙는다.

“괜찮아?”

“응, 괜찮아.”

짧은 말 안에 무수한 감정이 엉켜 있다.

사랑은 그렇게, 틈 사이에 쌓인 말들로 흔들린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매일 미세하게 달라지고,

그 변화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랑을 유지하려면 그 틈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 안에서 함께 머무를 줄 알아야 한다.

떨어져 있어도, 다가서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거리.

그게 관계가 숨 쉬는 지점이다.


밤이 깊을수록 틈은 더 또렷해진다.

각자 휴대폰을 보고, 같은 침대에 누워 있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거리를 인식하는 순간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우리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구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그냥 두는 용기.

그게 오래된 관계가 가진 느린 품격이다.

틈은 사랑의 결함이 아니라 여백이다.

닫히지 않은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드나드는 것처럼,

사람 사이에도 틈이 있어야 온기가 돌고 숨결이 흐른다.

그 틈이 너무 좁으면 답답하고,

너무 넓으면 외롭다.

결국 사랑은 그 사이를 조율하는 일이다.

닫히지 않을 만큼의 거리,

식지 않을 만큼의 온도.


사람의 마음은 늘 창문과 같다.

조금만 열면 공기가 돌고,

완전히 닫아두면 금세 탁해진다.

함께 산다는 건 그 창문을 번갈아 여는 일이다.

한쪽이 열면 다른 쪽은 커튼을 정리하고,

빛이 너무 강하면 서로의 손으로 조절한다.

그 조심스러움 속에 관계의 리듬이 생긴다.

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이론처럼 고요하지 않다.

일상은 늘 복잡하고,

감정은 일정하지 않으며,

사람의 마음은 계획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에게 화를 내고,

그 화를 후회하고,

다시 어색하게 웃는다.

그 반복이 싫지만,

그게 없으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틈은 결국, 인간다움의 흔적이다.


요즘 사람들은 틈을 견디지 못한다.

메시지 답이 늦으면 불안해지고,

SNS의 이모티콘 하나에도 감정이 흔들린다.

우린 너무 빠르게 반응하고,

너무 쉽게 오해한다.

하지만 진짜 관계는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신뢰로 이어진다.

때로는 하루를 쉬어가도 괜찮고,

하루 종일 대화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랑은 ‘지속적인 확인’이 아니라

‘조용한 확신’으로 자란다.


가끔은 틈이 너무 커져서

한쪽이 먼저 등을 돌릴 때가 있다.

그럴 땐 억지로 붙잡지 말고,

그 틈을 잠시 바라보면 된다.

사람은 자신만의 온도에서 다시 돌아온다.

그 기다림이 아프더라도,

그 시간은 결국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모든 사랑에는,

다시 이어지기 위한 고요한 시간대가 필요하다.


사랑은 틈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그 틈 속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가끔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가까이 붙잡는 것보다 따뜻할 때가 있다.

그 적당한 거리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잃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걷는다.

너는 약간 앞서고, 나는 조금 뒤따른다.

그 사이로 바람이 스친다.

그 바람이 우리를 떼어놓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바람이 있어서

우리는 함께 걸을 수 있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틈이 있어야 흐르고,

거리가 있어야 닿는다.

너와 나 사이의 그 미세한 간격,

그게 우리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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