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아래의 기억

꿩의다리

by 정담훈



그늘 아래의 기억



가장자리에 피는 꽃
햇살보다 바람에 오래 익고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뿌리를 다 쓴다


아버지도 그러셨다
늘 한발 물러선 채
먼저 일어나고
늦게 눕는 사람이었다


우린 늘 어머니만 불렀고
당신은 당신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 대신 시간을 남기고
말 대신 기척을 남겼다


당신은 고단한 날들을
책임처럼 접어두고
빨래처럼 조용히
햇살 속에 걸어두셨다


어느 날
당신의 숨이 멈춘 뒤
집 안이 낯설 만큼 조용해졌고
우리는 그 침묵의 크기를 처음 보았다


꿩의다리는 오늘도 피어 있다
그늘 속, 바람을 닮은 방향으로
당신이 남긴 빈자리는
아직도 식지 않은 빛을 품는다



-정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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