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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Nov 20. 2021

왼쪽 오른쪽을 아시나요?

연수 둘째 날



강습 시작 5분 전에 밖에 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마음먹고 바닥이 얇은 로퍼를 신었음은 물론이다. 어제를 교훈 삼아 윗옷도 더 가벼운 것들로 골랐다. 이윽고 천천히 차가 들어왔다. 

"오늘은 어디로 가나요?"

강사와 인사를 나누고 오늘의 수업에 대해 물었더니 "오늘은 이 동네를 벗어나지 않습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교차로 중에는 희한하게 생긴 것들도 존재하는데 그런 이상한 교차로가 고양시의 우리 동네 근처에 몰려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 사는 강습생도 일부러 이 동네로 데려와 연습을 시킨다고. 그곳은 근방의 번화가로, 재래시장이 있는 우리 집 근처 동네와는 달리 온갖 대형 마트가 들어서 있고 영화관도 있고 버거킹(양파링 좋아함)도 있다. 늘 버스를 타고 지나다니던 익숙한 그 길로 들어섰다. 




고백하건대 나는 왼쪽 오른쪽을 잘 모른다. 아니 모르는 건 아니고 정확히 표현하면 '빨리' 알지 못한다. 만약 룸메가 등을 긁어주고 있는 나에게 "거기서 조금만 오른쪽으로."라고 요청하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오른쪽이라고? 

2) 오른쪽은 밥 먹는 손 쪽이지. 

3) 이 손이 밥 먹는 손이지. 

4) 그렇다면 이쪽이 오른쪽이군! 

이 과정에 1-2초 정도가 걸린다. 

그렇다면 왼쪽은 어떻게 알까? 

1) 왼쪽이라고? 

2) 왼쪽은 오른쪽의 반대편이지. 

3) 오른쪽은 밥 먹는 손 쪽이지. 

4) 이 손이 밥 먹는 손이지. 

5) 그렇다면 이쪽이 왼쪽이군!  

이렇게 왼쪽의 경우 한 단계가 더 있다. 

몇 년 전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남들은 1) 오른쪽? 2) 여기! 이렇게 안다고 한다! 뭐, 다른 사람들은 인생이 그렇게 빠르다고? 삶의 비밀을 한 가지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그래서였다. 운전을 더욱 기피하게 된 것은. 내가 오른쪽 왼쪽도 빨리 구분을 못하는데 좌회전 우회전은 빨리 반응할 수 있을까? 그러면 이제 1) 좌회전이라고? 2) 좌회전은 왼쪽이지. 3) 왼쪽은 오른쪽의 반대편이지.... 이렇게 시작해야 할 판인데. 정글 같은 도로 위에서 과연 나처럼 판단이 느린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오늘은 좌회전 우회전을 이렇게 무수히 돌리고 있는 건지? 인생 알 수 없는 것이다.  


정말이지 강사는 끊임없이 좌회전과 우회전을 시켰다. 좌회전은 보통 시야가 트여 있고 좌회전 신호가 짧게 주어지는 동안 기다리는 차들은 빨리 가고 싶어하므로 흐름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속도를 내서 돌아야 한다. 우회전은 따로 신호가 없으니 언제든 갈 수 있지만 그 언제가 언제인지를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횡단보도를 지나쳐 갈 경우도 많으니 항상 보행자를 주의해야 한다. 우회전은 돌고 나서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어 서행이 기본이었다. 또한 차로가 하나일 경우 길에 바싹 붙어서 틀어야 중앙선을 넘지 않는다. 길에 붙어서, 보행자 살피고, 천천히. 그것이 우회전의 조건이었다.


교차로, 교차로는 어떤가. 나는 이쪽 도로에서 교차로를 지나 저쪽 도로로 들어갈 때 어디로 가야 할지 허둥대기 일쑤였다. 강사가 옆에서 핸들을 틀어주며 "이 길로! 이 길로!" 외쳐댔다. 교차로의 법칙은 내가 1차로에 있었다면 건너가서도 1차로로, 2차로에 있었다면 건너서도 2차로로 가야 한다. 그런데 내가 직진 1차로에 대기하고 있을 때 옆에는 좌회전 차로가 있으니 나는 내가 2차로에 있는 걸로 착각할 수 있었다. 강사는 좌회전 차선은 임시로 생기는 보너스라고, 그건 치면 안 된다고 했다. 음 알겠어. 알겠어. 그런데 내가 좌회전을 할 때는 교차로 건너서 갈 때 어디로 들어가는 거지? 좌회전 1차로는 건너서도 1차로, 좌회전 2차로는(큰 도로는 가끔 좌회전이 두 차로로 나오기도 한다.) 건너서도 2차로. 그런데 내가 대기하는 좌회전이 하나의 차선만 있고 교차로 건너서 곧 우회전을 해야 한다면 교차로에서 들어가면서 2차로로 가도 되는 것 같다? 아닌가 그러면 안 되나? (이 부분 잘 모르겠다. 운전 선배 누가 좀 알려줘요.) 


앞서 희한한 교차로가 존재한다고 했는데 그런 곳도 몇 개 봤다. 바로 직진이 우회전이나 좌회전처럼 비뚤게 나 있는 경우였다. 애초에 길이 그렇게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그리 된 거였다. 이런 경우 신호등도 평소 직진의 동그란 초록 신호가 아니고 좌회전 신호처럼 가야 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초록 화살표로 나왔다. 그럴 때는 차선도 굉장히 헷갈릴 수 있어서 미리 이쪽으로 가라고 유도선을 그려 놓았다. 그 선을 졸졸 따라가면 무사히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사는 이제 온갖 교차로를 가봤으니 다른 곳도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이상한 교차로에서 길을 모를 때는 기억할 것. 맨 왼쪽은 좌회전, 맨 오른쪽은 우회전, 나머지는 직진.




우회전 좌회전 연습이 끝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이마트로 들어간다. 그래! 생활 운전이라면 마트지! 끝없이 도는 지하 주차장을 한번 들어갔다가 구경만 하고 나왔다. 그러고는 모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 또 여러 번의 우회전과 좌회전을 하고, 다음에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굉장히 한적한 곳이었음. 내가 연습하는 동안 단 한대의 차도 드나들지 않았다.) 기둥을 안 박고 도는 회전 연습과 주차 연습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전 생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에 갔다. 버거킹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 결제도 하고 돌아 나와 음료를 받았다! 캬, 이 맛에 운전하는구먼! 단 돈 이천 원에 느끼는 성취감이라니. 갑자기 잘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집 앞에서 주차 연습을 한 번 더 하고 오늘의 연수를 마쳤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도 집에 오니 몸이 탁 풀려 30분 이상 누워 있어야 했다. 나는 여전히 많이 긴장되어 있었다. 언제쯤 이 긴장이 풀릴까? 과연 언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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