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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Nov 18. 2021

자네, 모범택시 면허도 받을 수 있다네

연수 첫째 날



평소보다 이른 점심을 먹고 운전연수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운전면허증이 들어 있는 지갑, 손수건, 핸드폰, 마스크 정도를 챙겼을 뿐이다. 오히려 평소 외출에 필수로 챙기는 가방도 들지 않아 더 단촐했다. 아,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한참 고민하긴 했다.


오늘 내가 있을 곳은 실내인가, 실외인가? 아무래도 차 밖보다는 안에 더 오래 있겠지? 오늘 날씨는 조금 쌀랑한데 옷을 두껍게 입어야 할까, 얇게 입어야 할까?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옷을 얇게 입던데. 특히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코트보다는 짧은 재킷 정도의 길이를 선호하는 것 같았어. 아무래도 엉덩이에 옷이 꾸물대고 있으면 신경이 쓰이겠지. 결정. 하의는 편하고 신축성 좋은 바지에 둔하지 않은 운동화, 상의는 맨투맨 티셔츠 위에 기장이 짧고 도톰한 초겨울용 재킷을 입었다.


1시 5분 전에 아파트 정문 앞에 나가 기다렸다. 사전에 강사에게 아파트 주소를 문자로 넣어두었으니 이리로 오겠지 싶었다. 강사보다 먼저 온 것은 전화였다.

"거기가 oo경찰서 전에 들어가는 길인가요?"

"...네 뭐 그렇긴 한데, 여기 OO아파트 O단지예요."

"아, 그럼 진작 그렇게 얘길 하지. 곧 도착해요~"


그러니까 이런 대화 말이다. 운전자들이 물어보는 말을 솔직히 나는 잘 못 알아듣겠다. 늘상 걸어다니니 익숙한 길이지만 운전자의 화법은 보행자와 화법과 다르다. 어느 길에서 우로 간다든지 소방서에서 첫 번째 좌회전이라든지 잘 아는 길도 운전자가 물어보면 내가 대답을 제대로 하는지도 가늠이 안 된다. 택시를 탔을 때도 기사가 어느 길로 갈까요 물어보면 나는 늘 "빠른 길로 가주세요." 또는 "네비 따라 가주세요."라고 한다. 내가 운전해 가본 적이 없으니 선호하는 도로가 있을 리 없다. 그러면 이제 나도 이 연수를 받으면, 이런 질문에 척척 대답하게 될까? 나도 좋아하는 도로가 생길까? 




은색의 승용차가 들어왔다. 잠시 멈춰 나에게 "연수 받으시는 거죠?" 하고 확인한 다음 바로 옆 주차장으로 곧장 들어가길래, 그 뒤를 쭐래쭐래 걸어 따라갔다. 강사는 예상대로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었다. 우리 아버지뻘인 7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뭐 가부장적인 발언 정도는 감안을 해야겠군. 성별과 연령만으로 함부로 판단하며 인사를 나눴다.


강사는 곧장 나를 운전석으로 밀어넣고 자신은 조수석에 앉았다. 처음에 뭘 하겠느냐고 물어서, 일단 안전벨트를 하고 좌석의 위치를 내 몸에 맞게 조정했다. 운전석 의자 왼쪽 아래에 버튼이 두 개 있는데 작은 버튼은 등받이를 앞뒤로, 긴 버튼은 의자 자체를 앞뒤로 움직일 수 있었다. 나보다 몸집과 키가 큰 강사가 타고 온 거라서 한참을 앞으로 당겨야 했다. 내 발이 액셀과 브레이크를 편히 밟을 수 있을 정도를 가늠해 조정했다.

  

"운전면허증 가지고 왔어요?"

"당연하죠. 여기 있습니다."

주머니에 넣어뒀던 지갑을 얼른 꺼내 면허증을 강사에게 건넸다. 이미 두 번이나 갱신한 그 면허증은 이제야 처음으로 제 구실을 하는 셈이었다. 늘 주민등록증 대신 신분증 역할만 하다가... 너도 참 오래 기다렸겠다. 이제 자주 써볼게.

내 면허증을 들여다보던 강사가 "어이쿠" 감탄사를 내뱉었다.

"17년 된 거네. 모범택시 면허도 나올 수 있어요, 이거!"

농담도. 모범택시가 그렇게 별거 아니진 않겠지, 설마.


시동을 걸고 주행 기어를 넣었다. 차가 슬슬 움직였다. 드디어 시작되는군. 몸이 절로 긴장되었다. 목과 어깨, 팔이 빳빳해지는 걸 느끼며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우리 집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즉 집 앞 도로가 스쿨존이라는 뜻이다. 평소에 걸어다니면서는 차가 천천히 다니고 신호등이 친절하고 카메라가 많아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길인데 운전자가 되니 천천히 가야 한다는 생각과 사람이 나타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과 여기서 우회전인지 좌회전인지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지, 생각이 고양이 털실처럼 엉켜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어찌어찌 시키는 대로 가다보니 한적한 길이 나왔다. 구부러진 길도 나왔다. 꼬불꼬불한 길도 나왔다. 서랄 때 서고 가랄 때 가고 켜라는 깜빡이를 부지런히 켰다가 끄면서 액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았다. 강사가 가장 먼저 강조한 건 페달을 부드럽게 밟는 법이었다. 내가 휙휙 밟아서 덜컹거리면 자기 목디스크 온다고 으름장을 놓고 살살 잘 밟으면 이렇게만 하면 회장님도 모실 수 있다며 칭찬했다. 멈춰 있다가 액셀을 밟을 때는 특히 발가락에만 살살 힘을 줘서 스르르 출발하라고 했다. 이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서, 나중에 책을 찾아보니까 운동화는 바닥이 두툼해서 비추고, 연수를 받을 때는 가급적 밑창이 얇은 신발을 신는 게 좋다고 한다. 처음에는 감각을 익혀야 하니까. 아하, 내일부터는 바닥이 얇디얇아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아픈 로퍼를 신고 나가야겠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멈춰선 곳은 경기도 양주의 마장호수 주차장이었다. 나는 양주에 와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마장호수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다. '교외'라는 곳, '근교'라는 곳이 바로 이건 건가 싶은 한적하고 풍경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잠시 쉬며 화장실을 다녀왔다. 강사는 거기가 10분 무료라며 들어갔는데 1분을 초과해서 300원의 주차비를 냈다. 원래 600원인데 노령할인인지 장애할인인지 여튼 50% 할인을 받았다. 


다시 꼬불꼬불 구불구불 쭉쭉의 도로를 탔다. 강사는 이 길은 강원도의 길과 다를 바 없어 연습에 아주 좋다고 했다. 이전 시간에 연수한 수강생은 이런 길로 오지 않고 넓은 길로만 다녔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내가 초보치고는 좀 잘한다는 뜻? 잠깐 으쓱해지려고 하는데 곧이어 강사의 보충 설명이 따라붙었다. 사람마다 잘하는 부분이 모두 다르다고. 어떤 사람은 차선 중앙으로 주행하는 걸 정말 오래 걸려서야 배우고, 어떤 사람은 차선 변경을 정말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주차를 못한다고. 


조금 뜬금없지만 수영도 마찬가지다.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은 자유형이지만 나는 평영이 가장 편하다. 사람마다 뼈와 근육이 제각각이어서 각자 편한 영법이 다른 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초급 때 자유형의 벽을 넘기가 힘들어 계속해서 실패와 포기를 반복한다. 그것만 넘으면 넓은 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애초에 자유형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을 깨면 이런 부분은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운전은 아무래도 어렵겠지. 길 가운데로 갈 수 없는 것도, 차선을 못 바꾸는 것도, 주차를 못 하는 것도 모두 차례차례 극복하고 나아지지 않으면 숙련자가 될 수 없다. 어느 하나만 잘해서는 운전이라는 총체적인 행위가 완성되지 않는다. 이 생각도 지금 이렇게 내 방에서 글을 쓰면서야 하는 거지, 운전할 때는 전방을 주시하느라 전혀 하지 못했다. 잠깐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차선을 비뚤게 타거나 브레이크 대신 악셀을 밟거나 신호등을 확인을 놓쳐 정지선을 넘겼다.   


곧장 집으로 온 건 아니고 여러 길을 일부러 돌아서 체험해 보며 왔다. 교차로도 여럿 지나고 좁은 길도 지나고 국도도 지나고. 강사는 옆에서 계속 진짜 많이 떠들었는데 서삼릉이 어쩌고 뭐가 어쩌고 무슨 길이 또 어쩌고... 내 머리에 남은 건 파주와 양주가 붙어 있다는 정보뿐. 그마저도 그 말을 들을 때 '음, 파주와 양주, 각운이 맞는군.'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겨우 머릿속에 남은 것이다. 




집 앞에 와서 차를 세우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강사가 "들어가자마자 30분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누워서 멍 때려요. 안 그러면 몸살 나."라고 했다. 그 말이 아니었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태이긴 했다. 차에서 내리니 다리가 후들후들 가슴이 쿵쾅쿵쾅거렸다. 나중에 마장호수 주차장에서 슬쩍 찍은 차 사진을 보여주니 룸메는 구형 소나타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차종을 전혀 모르는데 운전을 한번도 안 해본 룸메는 적힌 이름을 안 보고도 차종을 척척 맞힌다. 룸메까지 갈 것도 없이 대여섯 살 아이들 중에도 차 머리만 보고 이름을 맞히는 경우가 있더라. 무슨 눈썰미가 그리 좋아? 감색과 곤색도 모르면서, 인디핑크와 코랄도 모르면서 어찌 그런 건 잘 아는지 미스터리. 


내일의 강습을 기대하며 역사적인 오늘의 주행을 돌이켜본다. 나중에 찾아보니 모범택시는 무슨무슨 협회의 추천과 경찰청장의 인정이 있어야 받는다는데 기본적으로 5년 무사고 경력이어야 한다. 원래는 이게 10년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오늘 처음에 한 강사의 농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 내 운전이 어디로 갈지, 장롱면허를 진짜 탈출할지 혹시 또 장롱에 쳐박힐지는 두고 보자. 커밍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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