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라식을 처음 결심한 날과도 비슷했다. 해야지, 할까? 하지 말까? 그냥 살아? 할까? 이런 생각으로 살던 어느 날 갑자기 번개처럼 마음을 먹게 된다. 그래, 하자. 지금이야.
그렇게 벌써 몇 년 전에 트위터 친구로부터 추천받아 알게 된, 여성 운전 강사가 많다는 드라이빙 학원에 연락을 했다. 카카오톡 채널로 문의를 남겼더니 전화가 왔다. 나는 계속 여성 강사를 찾았는데, 요즘은 여성 강사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원래도 등록된 여성 강사 숫자가 적은데, 코로나 때문에 자녀 있는 분들이 쉽게 외출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여러 강사들이 개별로 활동하고, 학원이라 이름 붙인 기관은 에이전시의 역할만 하는 것 같았다. 학원 담당자는 내가 사는 지역을 물어보더니 그쪽 강사님이 상당히 잘 가르친다며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뭐, 그래 어쩌겠어. 여성 강사가 없다는데.
예전에 운전면허를 딸 때 서울 서부면허시험장 근처의 학원에서 도로주행 연수를 받았는데, 두 명의 남성 강사를 겪었다. 왜 두 명이냐면 두로주행 시험을 두 번 봤기 때문이고 왜 두 번 봤냐면 한 번은 떨어졌기 때문에... 여하튼 그 두 번의 기억이 다 좋지 못했다. 처음엔 50대 후반 정도의 남성이었는데 어찌나 자기 얘기를 많이 하는지 운전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가 연수를 마치면서 몇 번 더 추가 시간을 끊어서 연습을 하라고 시켰는데, 어쩐지 그 말을 듣기 싫어 그냥 시험을 봤고, 나는 떨어졌다. 그 강사는 쌤통이라고 생각했겠지. 결국 더 큰돈을 들여 또 일정 시간 연수를 받아야 했다. 그다음엔 젊은 남성이었는데 아무리 내가 초보고 연습면허로 겨우 달린다지만 그가 세상 성의 없이 가르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조마조마하게 운전을 하는 동안 옆에서 거의 잤다. 연수 시간 동안 그가 말을 한 것은 몇 문장 되지 않았다. 말을 너무 많이 해도 문제, 너무 안 해도 문제였다. 적절한 말을 적절히 하기란 정말 그렇게나 어려운 건가?
학원에서 내 번호를 강사에게 전달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2분이나 지났을까, 바로 전화가 왔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남성이었다. 추측컨대 나이가 꽤 많은 것 같았다.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사는 분이었고 주변을 잘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는 운전을 얼마나 해봤냐고 나에게 물었다.
"면허 따고 아버지 차로 몇 바퀴 돌아본 것 외에는 없습니다. 전혀 모른다고 보시면 돼요."
나는 17년 무사고 경력의 장롱면허 소지자다.
수업 시간을 정하는데, 어떤 시간이 좋냐고 해서 내가 보통 외출하는 시각은 오후 3-4시라 그렇게 말했더니 그 시각은 안 된단다. 금방 막히는 시간이라 굉장히 어렵고 별로 배울 수도 없다고. 할 수 없이 1시로 잡았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한다길래, 아니라고 한 주만 더 있다가 하자고 했다. 내가 지금 막 운전을 배우겠다 결심을 했다고 해서 당장 뛰쳐나갈 수 있는 상태인 건 아니다. 예정된 스케줄도 있고.... 막상 헤아려 보니 방해될 만한 스케줄은 없었지만... 여하튼 마음의 준비가 안 됐잖아. 다다음주로 일정을 잡아두었다. 또 나는 뭘 몰라서 며칠 간격으로 연수를 받냐 물어봤는데, 연달아 3일을 한다고 했다. 감을 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바로바로 이어서 해야 한다고. 내가 신청한 과정은 일반 연수로 10시간에 25만 원이다. 학원차로 하면 25만 원, 자차로 하면 22만 원. 학원 시간표에는 2시간씩 5일로 적혀 있었는데 강사님은 3~4시간을 한 번에 할 수도 있으니 날짜는 그보다 짧게 잡을 거라고 했다. "그럼 수업료는 언제...?"라고 물으니 "첫날 계좌이체 해주시면 됩니다."라는 답이 당연하다는 뉘앙스로 날아왔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 물어본다고 생각했으려나.
그렇게 일주일의 유예 기간을 두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유튜브도 찾아보고 관련 책도 찾아보면 좋았으련만 나는 무슨 배짱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초조해하기만 했다.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어딘가 있을 것도 같은데...?
그렇게 17년 장롱면허의 운전 연수 첫째 날이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