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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Apr 24. 2022

미레나 넣었어

아미가 출판사 - 여성의 경험 시리즈  

*2W매거진 22호에 수록된 '나 미레나 넣었어 1편'입니다




여성만이 겪는 신체적·의료적 문제는 이상하리만치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지난 설 연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명절 당일에 딱 월경이 겹쳤다. 나는 월경을 시작할 때 갈색 피가 하루 이틀 조금씩 비치다가 곧 본격적으로 붉은 피가 나오면서 월경통을 겪는다. 피가 많이 나올수록 월경통도 심해지는데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도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온수주머니를 배에 댄 채 끙끙거리며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월경통 때문에 명절 인사 못 가겠어. 그냥 집에 쉴게요.” 일단 엄마는 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날 이후 엄마와 이모가 번갈아 내게 전화를 해서는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루프를 추천했다.

 

“야, 그거 나도 옛날에 다 해봤는데, 진짜 별거 아냐. 그냥 넣으면 끝이야.”

“아니 나는 자궁에 넣는 거니까 좀 무서워서….”

“무섭긴 뭐가 무서워. 아무렇지도 않던데?”


안 그래도 이미 몇 년 동안이나 미레나 삽입을 고민해 오던 차였다. 가족들의 추천도 있겠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 월경 주기가 끝날 무렵 다니던 산부인과에 가서 미레나 시술을 알아보았다.





미레나는 자궁 삽입형 피임기구이지만 나는 온전히 월경통 경감 목적으로 미레나를 넣었다. 정자를 가진 인간과 섹스를 하지 않은 지 벌써 수 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피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만약 월경통도 줄이고 피임도 하려는 여성이 있다면 미레나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꼬박꼬박 피임약을 챙겨 먹는 것은 너무 번거롭고 까먹기도 쉬울뿐더러 흡연을 하는 35세 이상의 여성이라면 혈전 위험성이 높아 피임약을 먹을 수 없다. 나는 이 사실을 매우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피임약을 먹은 게 너무 오래전이라 신경을 못 쓴 것도 있겠지만 처방받은 피임약을 먹을 때도 의사나 약사에게서 한 번도 그런 복약지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35세 이상이며 흡연을 하는 여성이 여럿 있고 그러면 이 모든 친구들이 피임약을 먹지 못한다는 건데, 왜 그동안 나는 이렇게 상식적인 주의사항을 알지 못했는지 놀라웠다. 피임약이 피임에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월경주기 조절이나 부정출혈 치료 등 다양한 자궁 관련 증상 조절에 두루 쓰인다. 혹시 나만 모르고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던 걸까 싶어서 트위터에 썼더니 리트윗이 꽤 많이 되고, 전혀 몰랐다는 메시지가 여럿 도착했다. 그래 자꾸 이런 식이다. 여성만이 겪는 신체적·의료적 문제는 이상하리만치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내 뒤의 여성 한 명이라도 덜 아프기를 바라는 마음



미레나를 포함한 각종 루프에 대해서도 그렇다. 내가 미레나를 알게 된 건 벌써 10년 전이지만 그동안 겁을 먹고 있었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정확한 정보를 알기가 힘들고 사람마다 부작용이 다르다고 하니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주변에 그걸 넣었다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먼저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도 전혀 없었다. 최근 엄마와 이모가 내게 루프를 추천한 것도 하필이면 명절에 아파 가족 모임을 깼기 때문이다. 아마 그 명절이 아니었으면 엄마와 이모의 루프 경험을 계속 몰랐겠지. 알 수 없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 예측되지 않는 미지의 것에는 으레 불확실의 공포가 뒤따르고 이는 곧 나를 속박하는 장치였다.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어찌 보면 부끄럽고, 혹자는 남우세스럽다고 할 만한 나의 생식기 사정에 관해 왜 자세히 기록할 마음을 먹었는가? 이 글로 인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여성이 미레나에 대해, 각종 피임 방식과 월경 도구에 대해 알게 된다면 미지에 대한 공포는 한결 덜할 것이다. 내 몸으로 겪어낸 정보가 나로 끝나지 않고 다른 여성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이 경험은 작은 줄기가 되겠지. 여기에 다른 여성의 경험이 입혀지고 또 덧입혀지면 이는 커다란 강물도 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큰 바다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다음 세대의 여성들 앞에는 분명히 더 많은 선택지가 놓일 것이다. 남몰래 배를 싸안고 아픔을 참아야 하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내 뒤의 여성 한 명이라도 덜 아프기를 바라는 마음, 어떤 이는 이 마음을 인류애나 공감, 혹은 기록욕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마음을 페미니즘이라 부르고 싶다.



글_윤준가

주로 다른 이의 글을 다듬고, 종종 내 글을 쓴다. 아주 드물게 그림을 그리는데, 장래희망이 그림책 할머니라서다. 현재 가장 가까운 목표는 그림책 완성과 개 입양이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프리랜서가 됐고 출판사 말랑북스를 운영한다.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 ≪대체로 가난해서≫, ≪바다로 가자≫, ≪Bones and flesh≫, ≪파는 손글씨≫, ≪한동리 봄여름≫, ≪우정보다는 가까운≫을 쓰거나 엮었으며 ≪엄마가 알려준다≫, ≪밥상 위의 숟가락≫을 발행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생리통! 인류의 절반이 겪는 문제인데, 왜 아직도 쉬쉬 하는 분위기인 걸까요. 20년 가까이 극심한 생리통을 겪어온 한 여성이 이에 대한 경험담을 풀어놓습니다. 결국 생리통을 극복하기 위한 최후 방법으로 미레나 시술을 선택한 윤준가 작가! 혹시 미레나 시술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작가님께 물어보세요! 질문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2W매거진 두여자엽서'를 보내드립니다!


>>질의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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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질문과 답변은 추후 출간 예정인 단행본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출처] 아파서, 너무 아파서 |작성자 Ami



<2W 매거진> 구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317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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