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차를 사야 할까?
차를 살까 하는 마음이 손톱만큼 들자, 그 마음은 곧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본래 욕망은 한번 생기면 걷잡을 수 없는 것이다. 한번 초콜릿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초콜릿을 먹을 때까지 그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욕망은 잘 모르겠고 일단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조건을 걸었다. 모 출판사에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면서 책 편집을 관리하는 자리가 났는데, 그 자리에 지원해 보고 붙으면 차를 사기로 했다. 정기적으로 사무실에 가야 한다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지만(프리랜서에게는 이 정도도 제약으로 느껴진다) 그 일을 하게 된다면 그래도 정기적인 소득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그 소득이 많지는 않으나 그래도 일이 끊기는 불안은 조금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붙었다. 그러니 이제... 차를 사야겠지...?
자동차 소개 채널 본격 탐구
사실 손톱만큼의 마음이 들었을 때부터 룸메와 나는 열심히 자동차를 소개하는 유튜브를 봤다. 세상에, 유튜브에는 차를 고르는 온갖 기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중고차 딜러들이 채널을 운영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고,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알리는 데 유독 신경을 썼다.) 그냥 자기 차를 열심히 타고 다니면서 취미로 중고차 사이트의 차들을 뒤지며 하나하나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닥신) 자동차 회사들의 협찬도 받고 직접 차를 빌리기도 하면서 차를 실제로 타며 리뷰하는 이들도 많았다. 유튜브에 차와 운전 콘텐츠가 이렇게 많은지, 운전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정말로 몰랐다. 생각해 보니 운전과 차야말로 영상 콘텐츠에 아주 적합한 주제인 것 같았다. 아무리 글로 운전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 봤자, 차의 좋은 점을 설명해 봤자, 실제로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실제 차의 기능을 보여주는 것보다 생생할까.
내가 생각한 첫차의 조건
그렇게 여러모로 정보를 모으며 다듬어 생각한 조건들이 모였다. 당연히 3개월간 공유 자동차를 타 본 경험도 한몫을 했다.
1. 가격
우리는 가진 돈이 많지 않으니 최대한 저렴한 차를 골라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중고차다. 말하자면 이번 차 구매 미션은 얼마나 좋은 상태의 차를 얼마나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가에 성패가 달렸다.
2. 경차가 아닐 것
처음엔 막연히 당연히 경차를 사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싸니까. 하지만 공유 자동차로 경차를 여러 번 타보니 경차는 서울 시내를 다닐 용도로는 적합하지만 고속도로를 다닐 때는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시속 100킬로로 빗속을 달리는 경차를 본 적이 있는가? 뒷바퀴가 도로에서 거의 떠서 간다. 손으로 툭 치면 빙글빙글 돌아갈 것만 같이 불안해 보인다. 우리는 차를 사게 되면 서울도 가지만 지방에 갈 일도 꽤 많다. 시가도 가야 하고 출장도 가야 하고 바다에 놀러도 가야 한다. 고속 주행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더욱이 나는 경차를 탔을 때 심리적 불안감이 커졌는데, 일단 차의 진동이 심해 몸까지 떨리게 되니 그 영향이 있고, 다른 차들보다 문짝과 차체가 얇아서 다른 차가 가까이만 와도 들이받쳐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얇은 벽?은 나를 보호할 수 없을 것 같다. 금방 죽을 것 같다.
또 경험해 본 바로, '초보운전' 딱지를 달고 달렸을 때 모닝을 타고 나가면 골목에서부터 여러 번 빵을 당했다. (빵:클랙션을 울린다는 뜻) 큰 도로에서는 물론이다. 여차 하면 빵 저차 해도 빵이다. 하지만 소형 SUV인 셀토스를 타고 나가니 아무도 내게 빵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어서 끼어들으라며 양보도 잘해 주었다. 운전하는 사람은 그대로이고 내가 저지르는 바보짓도 그대로인데 갑자기 도로가 젠틀해지는 마법을 경험했다. 경차가 도로 위에서 유독 무시당하는 것은 짐작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로 보였다.
사실 생초보인 나는 무시를 당해도 싸다. 사방에서 빵을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초보의 패닉 상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빵에 기분이 상할 것이다. 그러면 도로에 나가기 점점 싫어지고 결국 애써서 운전연수를 받고 차를 산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도로 위에서 싸움이라도 붙으면 어떻게 될까? 나는 영영 운전을 포기할 수도 있다. 원래 갈등에 무척 취약한 사람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차는 운전 생활에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3.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최근 들어 자동차의 시스템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특히 안전옵션이 아주 다양해졌는데, 후방센서나 전방센서는 기본이고 '측면센서'라고 해서, 차선을 변경할 때 옆 차선 가까이 다른 차가 있으면 사이드 미러에 불이 들어오고, 옆차가 있는데도 차선 변경을 시도하려 깜박이를 켜면 딩딩 경고음을 내준다. 초보에게 가장 힘든 것이 차선 변경인데, 그 무서운 걸 다소 안전하게 해주는 고마운 기능이다. 물론 베테랑 운전자들에게는 별 쓸모없는 기능일 것이다.
내가 가장 원했던 기능은 비상자동제동장치다. 나는 이 기능 덕에 사고를 면한 적이 있다. 집앞에서 쏘카로 아반떼를 빌려 한 바퀴를 돌려던 참이었다. 어디 대단한 곳을 가려던 것은 아니고 그저 운전연습 삼아 근처 마트나 가는 길이었을 거다. 내리막 길에서 앞에 빨간불이 켜져 차 여러 대가 서 있었다. 나도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정지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속도를 줄여가고 있는 중에 갑자기! 차가 부르릉 덜컹하더니 부웅 속도를 냈다. 마치 급히 액셀을 밟은 듯이. 하지만 내 발은 이미 브레이크를 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순간 혹시 내가 발을 잘못 놀려 액셀을 밟았나 싶어 다시 확인했지만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였다. 자칫 하면 앞의 벤츠를(하필 외제차라니) 박으려던 찰나, 비상자동제동장치가 차를 제어했다. 바퀴에 톱니라도 걸린듯 덜거덕 덜거덕 하면서 스스로 속도를 줄였다! 차가 부웅하고 속도를 낸 시간과 덜거덕 하고 스스로 속도를 줄인 시간을 합해도 불과 몇 초 되지 않는다. 사고는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휴- 나도, 옆의 룸메도 그 순간 십년감수 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비상자동제동장치를 신봉하게 되었다.
그 외에 있었으면 하는 자잘한 것들은 엉따와 손따가 있는데, 솔직히 엉따는 없어도 되고 수족냉증이 심한 나는 손따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너무 비싸면 포기할 수 있다. 너무 손 시리면 옛날 택시나 버스 기사님들처럼 장갑을 끼고 운전하면 되지 뭐. 하지만 자동차 회사들이 그렇게 쉽게 내가 원하는 걸 준비했을 리 만무했다. 이 회사들, 사람 지갑 여는 데는 통탈한 이들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