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에는 두 가지 감정이 존재한다.
힘겹게 맞던 바지가 수월하게 들어가고, 몸이 가벼운 느낌이 나는 그 순간. 묘하게 다듬어진 몸선과 또렷해진 얼굴에 자신감이 깃든다. 배고픔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목표를 잡고 성공을 이루어 낸 경험. 다이어트는 나에게 할 수 있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깨우치게 해 주었다.
삶이 힘들 때는 다이어트로 도피를 했다. 먹을 것을 통제하고 꼭 해야 할 운동 목록을 만들면 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라도 이루고 있으니까. 그 어렵다는 다이어트를 나는 이렇게 성공시키고 있으니까.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다는 느낌. 석사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공부가 하기 싫을 때는 식단과 운동을 했다. 졸업장을 딸 때는 이런 마음이었다.
'그래 내가 그 힘들다는 다이어트도 성공했는데 논문? 당연히 쓸 수 있지'
자신감은 내가 다이어트를 지속하는 이유였다.
또 다른 감정은 허기다. 허기에는 단순한 배고픔과 감정적인 허기가 있다. 감정적 허기는 주로 통제력을 잃었을 때 발생한다. 통제의 의미가 희미해질 때. 다 내려놓고 싶고 그저 무언가 보상이 필요하다는 간절함 같은 것들이다. 보상에는 음식만 한 것이 없었다. 맛있는 향과 혀에 닿을 때의 맛. 씹으면서 느껴지는 충족감들. 허기를 달랠 때는 미래의 다이어트 의지를 가져다 쓴다. 그래. 오늘은 그냥 먹자. 하루는 먹어도 아무 일이 안나.
자신감과 허기에는 시차가 있다. 자신감은 매일의 작은 성취들이 모인 시간이 쌓였을 때 느껴진다. 적어도 3일 이상의 식이요법과 지속적인 운동을 해야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기기 시작한다. 허기는 10분이면 충분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편의점으로 달려가 가서 초콜릿을 먹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을 먹자고 하면 허기는 즉각적으로 충족되곤 했다.
성취보다는 핑계를 대는 게 쉬웠다. 매일 무너지고 다시 다짐하기를 십 수 번. 일주일만 참아보자는 말은 매일 다음날, 다음 주로, 다음 달로 미뤄졌다. 머릿속으로는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손과 입은 멈추지 못했다. 이미 단기 다이어트 성공의 맛을 여러 번 본 나는 합리화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잠깐 정신 놓고 먹어도 다시 집중하면 뺄 수 있으니까. 지금은 허기를 제거하는데 집중을 하고 또 여유가 되면(혹은 마음이 먹어지면) 빼는 것으로 하자. 그렇게 허기를 달래느라 몸이 살짝 불어나고, 또 그 살을 다시 빼는 행위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오늘의 허기만 달래면 내일은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
나는 힘이 들 때 음식을 찾았다.
음식 중독은 취업을 준비할 때 극에 달했다.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지 못한다는 불안이 만들어내는 허기와 무기력함.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생활 속에서 더 이상 나를 다듬고 통제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매일 무언가가 먹고 싶었다. 먹어야 했다. 주로 달거나 매운맛을 원했다. 자극적인 맛이 혀에 닿는 순간 모든 것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매일을 먹었다. 살은 6개월 새 5kg이 넘게 쪄있었다. 역대급 몸무게였지만 더 이상 마른 몸은 의미가 없었다. 그 순간에는 나를 기쁘게 해주는 음식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합격목걸이를 쥐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이어트를 시작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