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모닝제이비 Apr 02. 2019

여러분도 직장인의 덫에 빠지셨나요?

옴짝달싸 못하는 직장인

얼마 전 환갑이 지난 우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유투브 영상 편집 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집에서 영상 하나를 만들어 봤으니 괜찮은지 어떤지 좀 봐달라고 연락을 한 것이다.


바로 지난 주, 엄마와 제주도 여행을 하는데, 미술 선생님이었던 엄마가 요즘 들어 꽤 낙심하고 계신 듯 했다. 나이 많은 할머니한테 누가 이제 미술을 배우겠냐고, 가끔 하던 종이 접기 클래스도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엄마는 종이 접기 전문가니까 그 재능 썩히지 말고 유투브 채널을 한번 만들어봐, 요즘 그거로 돈 버는 사람들도 많잖아" 라고 정말이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했는데, 그 다음 날로 엄마는 유투브 영상 강의를 신청하시더니 1주일 만에 혼자 영상을 찍고 자막도 넣고 음악도 넣어 영상을 촬영하고, 채널까지 개설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유투브 가르쳐 주는 강사가 할머니라고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무시만 했다고. 그래서 집에 와서 유투브 영상을 보면서 영상 만드는 법을 혼자 배워서 만들어 봤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뜬금없이 눈에서 눈물이 났다. 60세가 훌쩍 지난 나이에 열정이 있어 무엇인가를 배우고 재미있어 하는 엄마가 부러워서였는지, 아니면 이런 에너지 넘치는 엄마에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시체처럼 굳어 버린 딸이 바로 나여서 였는지는 모르겠다.


광고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바이럴 영상들을 보고 만들고 제작하고 있는 나인가. 게다가 최근 몇년 동안 가장 많이 한 일이 이 유투브 인플루언서들을 수백 수천을 들여 섭외하고, 같이 영상 제작하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또 우리 동료들끼리 가장 많이 한 이야기도 '우리가 이렇게 직장생활 해서 뭐하냐 유투브 채널 하나 만들어야 해.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야'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 했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그게 진짜 우리의 가치를 만들어 간다는 걸.


그런데, 그렇게 허구 한 날 하는 일이 브랜드 영상을 기획하는 일이면서, '나의' 영상 하나를 만들어 보는 건 그건 너무나도 큰 산이고 큰 일이고 어려웠던 일이었다. 환갑이 넘은 엄마에게는 도전 할 수 있는 일이고, 실행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던 일이었나 보다.


"얘 너도 유투브 해라, 찍을 거 없음 강아지라도 매일 찍어서 올려봐" 라며 나보다 더 신세대 같은 말을 하신다.


5년 전, 일반인들이 유투버라는 말도 모르던 그 시절, 광고주 제안서에 유투브 크리에이터, 유투버 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하며, 이런 애들로 브랜드 영상을 하면 만들어 봅시다. 라며 제안했던 나였는데. 엄마가 1주일 만에 한 일을 나는 5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직장인의 덪'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매달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시도 하고 도전하지 않아도 나는 내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아무래도 나는 내가 직장을 10년 넘게 꾸.준.히 다녔기 때문에 사람 구실을 잘하고 있으니 됐다. 라며 스스로 위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 우리 엄마의 예상외의 행보에 내가 내 스스로가 눈물 날만큼 자극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엄마는 전화를 끊으며, 엄마가 경쟁해야 하는 종이 접기와 만들기 채널이 몇 개 안 되는 것 같아 승산이 있을 것 같다는 말도 남겼다.


잘 한번 살아 보겠다고 내가 지금까지 수없이 읽었던 '머뭇대지 말고 당장 행동하라'는 메시지의 자기 계발 서적들은 도대체 어떤 역을 한 거지? 괘니 애꿎은 책 탓을 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