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건이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당신의 브랜드가 자꾸 OB가 나는 이유

by 언덕파



새벽 6시 30분,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은 골프장의 첫 홀 티박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호기롭게 휘두른 드라이버 샷이 야속하게도 오른쪽 숲으로 사라집니다.

"아이고, 몸이 덜 풀렸네. 하나 더 치세요. 멀리건!"

동반자의 자비로운 외침에 죽었던 공은 주머니 속 새 공으로 대체되고, 타수는 0으로 리셋됩니다.

아마추어 골퍼에게 멀리건은 신이 허락한 유일한 타임머신이자, 망가진 기분을 달래주는 달콤한 위로입니다. 하지만 필드를 벗어나 비즈니스의 현장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달콤한 타임머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클라이언트들과 미팅을 하다 보면, 가끔 비즈니스에서도 멀리건을 바라는 담당자들을 마주합니다.

물론 말로는 전략적인 설루션을 원한다고 하시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지금 이 망해가는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한 방을 달라는 요구일 때가 많습니다. 재작년 즈음 만났던 한 코스메틱 브랜드가 그랬습니다.

제품의 차별성은 모호하고, 타기팅은 엉켜 있어 매출 그래프가 곤두박질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미팅 자리에서 마케팅 담당자가 꺼낸 첫마디는 놀라웠습니다.

"요즘 OOO 프로가 핫하던데, 우리 모델로 어때요. 섭외 좀 해주세요."

그분에게 유명 모델은 일종의 멀리건이었습니다. 숲으로 날아간 내 브랜드의 공을, 모델이라는 힘을 빌려 다시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갖다 놓고 싶은 심리였겠죠. 하지만 저는 그 제안을 거절했고 전혀 다른 전략을 제안해 드렸습니다. 비즈니스라는 냉혹한 필드에서, 잘못된 스윙 궤도(본질)를 고치지 않고 새 공(모델)만 꺼낸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비싼 공을 잃어버릴 뿐입니다.

시장은 골프장 동반자처럼 자비롭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당신의 실수가 몸이 덜 풀려서 생긴 것인지 봐주지 않으며, 집행된 마케팅 예산은 OB 구역의 공처럼 영원히 회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꼬여버린 비즈니스에는 영영 기회가 없는 걸까요?

저는 리브랜딩(Re-branding)이 비즈니스가 허락한 유일한 합법적 멀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리브랜딩을 성형수술로 착각합니다. 로고를 더 세련되게 다듬고, 홈페이지 컬러를 바꾸고, 패키지를 예쁘게 포장하는 것을 리브랜딩이라 여깁니다. 죄송하지만 그건 그냥 화장입니다. 메이크업이죠. 화장이 잘 먹으려면 피부가 좋아야 하듯, 디자인이 힘을 받으려면 브랜드의 기초 체력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리브랜딩은 성형이 아니라 재활 치료에 가깝습니다. 화려한 드라이버를 내려놓고 다시 연습장으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립(브랜드 철학)을 다시 잡고, 어드레스(시장 진입 자세)를 교정하고, 에이밍(타깃 설정)이 핀을 정확히 향하고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입니다.

우리 제품은 2030을 겨냥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상세페이지는 50대 등산복 감성으로 쓰고 있지는 않은지. 프리미엄을 지향합니다라고 외치면서 당장의 매출 때문에 저가 할인 행사를 남발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엇박자를 찾아내고 척추를 바로 펴는 것이 진짜 리브랜딩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골프에서 라이프 베스트 66타라는 아마추어치고는 꽤 괜찮은 스코어를 기록해 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건 단순합니다. 멀리건이 필요 없는 완벽한 샷을 날리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인간인 이상 실수는 반드시 나온다는 것입니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실수 그 자체가 아니라 실수 이후의 대처에서 갈립니다.

하수는 실수한 샷을 만회하려다 더 큰 힘이 들어가 더블 보기 이상을 범하지만, 고수는 실수를 인정하고 레이업(Lay-up)을 통해 안전하게 전략을 수정한 뒤 기회를 노립니다.

비사이드웍스(BSIDEWORKS)가 클라이언트들에게 영상/지면 제안서 보다 구체적인 진단서를 먼저 내미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처방이 잠깐 기분만 좋아지는 멀리건(모델/광고)인지, 아니면 앞으로의 10년을 위한 스윙 교정(리브랜딩)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의 비즈니스 샷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혹시 숲으로 날아가는 공을 보며 주머니 속의 새 공만 만지작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비즈니스엔 공짜 멀리건은 없습니다. 하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립을 다시 잡는다면 당신의 브랜드는 다시 핀을 향해 날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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