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흉터 위에서 샷을 하지 마라

디봇이 말해주는 '벤치마킹'의 함정

by 언덕파
ChatGPT Image 2026년 1월 24일 오전 11_54_08.png



페어웨이 정중앙. 티박스에서 바라본 공의 궤적은 완벽한 포물선이었습니다.

손에 남은 타구감도 짜릿했죠. 오늘은 되는 날이구나 콧노래를 부르며

세컨드 샷 지점으로 걸어갔을 때, 저는 짧은 탄식을 내뱉어야 했습니다.

제 공은 푸른 잔디가 아닌 누군가 앞서 지나가며 무참히 파헤쳐 놓은 흙구덩이,

'디봇(Divot)' 한가운데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프의 룰은 냉정합니다.

Play the ball as it lies. (놓인 그대로 쳐라).

아무리 억울해도, 아무리 내 잘못이 아니어도,

골퍼는 그 구덩이 속에서 다음 샷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아마추어들은 보통 이 상황에서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동반자들이 안 볼 때 슬쩍 발로 공을 좋은 잔디로 옮기거나,

디봇이니까 옮기고 칠게 하며 동의를 구하거나,

아니면 재수가 더럽게 없다며 샷을 하기도 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무너져버리거나.


하지만 25년 차 CD의 눈으로 본 디봇은 단순한 불운이 아닙니다.

그건 앞서간 자들의 흔적이자 검증된 길의 배신입니다.

마케팅 시장에서도 저는 이 디봇에 빠진 브랜드들을 수없이 목격합니다.

우리는 종종 벤치마킹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경쟁자의 뒤를 쫓습니다.

업계 1위가 지나간 길, 요즘 뜨는 브랜드가 선점한 키워드,

유행하는 밈(Meme). 그곳은 안전해 보입니다.

이미 누군가 성공해서 길을 터놓은 페어웨이 정중앙이니까요.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내 브랜드(공)를 던져 넣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미 남들이 휩쓸고 지나간 그 자리는 사실 안전지대가 아니라 상처 입은 땅입니다.

디봇에 잠긴 공은 클린 샷을 하기 어렵습니다.

클럽 헤드가 공보다 흙을 먼저 때리게 되고,

탄도는 낮아지며, 스핀은 제멋대로 걸립니다.

비즈니스도 똑같습니다. 남들이 다 파놓은 시장에 후발주자로 들어가면,

내 브랜드 본연의 퍼포먼스를 내기 힘듭니다.

경쟁자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는 내가 아무리 잘 쳐봐야 아류라는 흙탕물을 뒤집어쓸 뿐입니다.

가격 경쟁을 해야 하고, 그들의 룰을 따라야 하며,

결국 내 고유한 색깔은 진흙 속에 묻혀버립니다.


남의 흉터 위에서는 결코 나만의 샷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고수들은 무조건 페어웨이 중앙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코스 매니지먼트를 할 때 남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너덜너덜해진 구역을 본능적으로 피합니다.

차라리 조금 위험하더라도 남들이 가지 않은 가장자리나 거친 러프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비록 공을 치기는 조금 까다로울지 몰라도

그곳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빳빳하고 싱싱한 새 잔디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잔디 위에서는 공이 떠 있습니다.

내가 의도한 대로 채를 휘두를 수 있고,

스핀도 걸 수 있으며, 무엇보다 흙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차별화의 본질입니다.

차별화는 단순히 남과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파놓은 구덩이에서 걸어 나오는 용기입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지금 어디에 놓여 있습니까?

남들도 다 하니까라는 핑계로 안심하며 디봇 속에 웅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낯설고 두렵지만 나만의 궤적을 그릴 수 있는 새 잔디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까.

디봇에서 칠 수 있는 최고의 샷은

고작해야 위기를 모면하는 탈출뿐입니다.

하지만 새 잔디 위에서는 세상에 없던 창조가 가능합니다.

저는 오늘도 클라이언트에게 묻습니다.

안전한 흉터 위에서 치시겠습니까 아니면 거친 새 땅 위에서 치시겠습니까?

선택은 스코어를 바꿉니다.

아니, 브랜드의 운명을 바꿉니다.


[작가의 말]

남이 낸 길은 편하지만, 내 발자국을 남길 수 없습니다.

비즈니스의 페어웨이는 넓습니다. 굳이 붐비는 곳에서 서로의 발을 밟지 마십시오.


(다음 화 예고) 09. 비즈니스엔 멀리건이 없지만 '리브랜딩'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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