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의 조기 인지
필드에 서면 라운드가 끝난 뒤 꼭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OB를 냈던 샷이나 벙커에 빠진 순간은 아니다. 그 장면들은 이미 결과에 가깝다.
진짜 오래 남는 건 그보다 앞서 있었던, 사실은 멈출 수 있었던 순간이다.
대부분의 실수는 예상 밖에서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늘 이미 알고 있던 선택지 옆에 있다.
그날도 그랬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고, 그린은 충분히 넓었으며, 안전하게 가면 다음 샷이 남아 있었다. 굳이 지금 결과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누구나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도 핀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바람을 다시 계산하고, 클럽을 바꾼다.
그 선택의 순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경고도 없고, 위험 신호도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는다. 리스크는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이미 눈앞에 있었고, 이미 인지된 상태였다. 다만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스스로 납득했을 뿐이다.
결국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샷 하나로 라운드가 망가지는 순간.
하지만 라운드가 끝난 뒤 머릿속에 남는 건 실패한 샷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때 왜 굳이 그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이다.
골프를 치다 보면 이상할 정도로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어려운 상황에서의 무모함보다 쉬운 상황에서의 과잉 판단이 흐름을 더 자주 망친다.
이미 충분한데 조금 더 잘하고 싶어질 때, 이미 안전한데 한 번 더 욕심이 날 때,
그 순간은 늘 조용히 지나간다. 그래서 많은 실수는 리스크를 발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미 인지된 리스크를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발생한다.
비즈니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가 터진 뒤에야 사람들은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되묻지만, 대부분의 경우 리스크는 이미 여러 번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다. 속도를 조금만 늦췄다면, 한 번만 더 질문했다면, 굳이 지금 해야 하는 일인지
다시 생각해봤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대개 이렇게 정리된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판단이 어려운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위험을 관리 가능한 범위로 착각하거나,
혹은 성과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결과보다 자신의 선택을 더 오래 곱씹는다.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멈출 수 있었던 순간을 지나쳐버렸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필드에서는 그게 스코어로 남고, 일에서는 관계나 신뢰로 남는다.
그리고 그 차이는 실력이 아니라 리스크를 언제 인지했는지
그리고 그 인지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결정적인 순간을 찾으려 하지만, 사실 결정적인 순간은 늘 그 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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