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게 너무 인색하게 굴지 마십시오 (컨시드)

by 언덕파



골프에는 컨시드(concede)라는 개념이 있다. 짧은 퍼트가 남았을 때, 굳이 치지 않아도 된다고 상대가 인정해 주는 관행이다. 룰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드시 해야 할 의무도 아니다. 그래서 컨시드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같은 거리의 퍼트라도 어떤 사람은 끝까지 치게 하고, 어떤 사람은 공이 멈추기도 전에 오케이~(한국식 표현)라고 말한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 순간의 공기는 전혀 다르다.

컨시드를 잘 주는 사람이 항상 관대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골프를 오래 친 사람일수록 컨시드를 쉽게 쓰지 않는다. 아무 때나 주지 않고, 줘야 할 순간을 안다. 이 퍼트가 결과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이 장면이 관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컨시드는 스코어 카드가 아니라 사람에게 남는다. 라운드를 하다 보면 이런 차이는 점점 분명해진다. 굳이 한 번 더 확인하게 만들고, 굳이 한 번 더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과, 여기까지면 충분하다는 신호를 정확히 주는 사람. 스코어 차이는 크지 않아도, 라운드가 끝난 뒤의 인상은 전혀 다르다. 어떤 사람과는 다시 치고 싶어지고, 어떤 사람과는 괜히 다음 약속이 미뤄진다.


일을 하다 보면 이 장면은 전혀 낯설지 않다. 고객에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을 요구하고, 이미 확인된 내용을 다시 검증하고, 받아도 되는 결과를 끝까지 미루는 순간들. 표면적으로는 신중함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지만 고객은 그 차이를 생각보다 정확히 읽는다. 이게 신중함인지, 아니면 인색함인지.

인색함은 비용을 아끼는 태도가 아니다. 브랜드 판단을 미루는 태도에 가깝다. 조금만 더 보자, 한 번만 더 확인하자, 이건 아직 인정하기 어렵다는 말들은 조심스럽게 들리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계속 치라는 신호로 다가온다. 퍼트 거리는 짧아졌는데, 선택의 피로는 길어진다.


컨시드를 잘 주는 골퍼는 경기를 대충 보지 않는다. 오히려 흐름을 더 정확하게 읽는다. 이 퍼트가 결과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 이 순간에 한 번 더 긴장을 주는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안다. 대신 그 사람은 스코어 보다 장면을 본다. 이 장면이 끝나고도 관계가 남을지, 아니면 피로만 남을지를 본다.


브랜드 상황도 똑같다. 고객에게 끊임없이 증명을 요구하는 브랜드일수록 관계는 피곤해진다. 반대로 어디까지가 충분한지를 아는 브랜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시 선택된다. 모든 조건을 충족해서가 아니라, 그 브랜드를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랜드 판단이 좋은 경우는 대부분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더 설득하지 않아도 될 순간을 정확히 아는 것, 그 판단이 브랜드의 품격을 만든다.


라운드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정확한 스코어를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그날이 편했는지, 괜히 신경 쓰였는지는 또렷하게 남는다. 누가 끝까지 퍼트를 치게 했는지, 누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고 말해줬는지. 브랜딩 역시 고객은 모든 조건과 문장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는지는 오래 기억한다. 컨시드는 이기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다. 같이 끝내기 위해 건네는 신호다. 그 신호를 읽고 쓸 줄 아는 순간부터 골프는 점수 게임이 아니게 되고, 브랜드는 거래 대상이 아니라 관계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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