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AI 카피라이팅,
브랜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by 언덕파



2022년 말, ChatGPT가 나왔다. 마케팅 업계가 흔들렸다. 카피라이터가 필요 없어지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슬로건을 AI에게 시켜봤더니 그럴듯한 게 나왔다. 브랜드 스토리를 써달라고 했더니 그럴듯한 게 나왔다. 광고 카피를 써달라고 했더니 그럴듯한 게 나왔다.

맞다. AI는 카피를 쓴다. 그것도 빠르게, 많이, 저렴하게.

그렇다면 브랜드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AI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AI는 패턴을 학습한다. 수백만 개의 카피와 슬로건과 광고를 학습했다. 그래서 패턴에 맞는 카피를 빠르게 뽑아낸다. 읽기 좋고, 문법적으로 맞고, 그럴듯하다. 근데 AI가 못하는 게 있다. 브랜드가 지금 이 순간 왜 이 말을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이 브랜드의 역사가 뭔지, 대표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이 제품이 만들어진 맥락이 뭔지를 모른다. 패턴은 알지만 맥락은 모른다.

그리고 AI는 버리지 못한다. 10개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10개를 만든다. 50개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50개를 만든다. 어떤 걸 버려야 하는지, 왜 버려야 하는지를 모른다.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기준은 브랜드가 가지고 있다.


그럴듯한 카피와 맞는 카피는 다르다

AI가 만든 카피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럴듯한 카피와 이 브랜드에 맞는 카피는 다르다. 그럴듯한 카피는 어느 브랜드에나 쓸 수 있다. 맞는 카피는 이 브랜드에만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AI에게 커피 브랜드 슬로건을 써달라고 하면 "하루의 시작을 특별하게", "당신의 하루를 깨워드립니다", "진한 향기, 깊은 여운" 같은 것들이 나온다. 다 그럴듯하다. 근데 이 슬로건들은 어떤 커피 브랜드에도 붙일 수 있다. 이 브랜드가 왜 다른지를 말하지 못한다.

맞는 카피는 이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지, 어떤 고객에게 말하는지, 경쟁사와 무엇이 다른지를 한 문장에 담는다. 그건 브랜드를 알아야 나온다. AI는 브랜드를 모른다. 입력한 정보만 안다.


AI 시대에 브랜드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

역설적이게도 AI가 카피를 쓰는 시대일수록 브랜드는 더 중요해진다. 모든 브랜드가 AI로 카피를 만들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비슷한 카피들이 넘쳐난다. 다 그럴듯하고, 다 읽기 좋고, 다 비슷하다. 차별화가 사라진다. 그 상황에서 살아남는 브랜드는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가진 브랜드다.

고유한 관점.

일관된 목소리.

쌓아온 신뢰.

이건 학습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만들고 경험이 만들고 판단이 만든다. 스타벅스가 AI로 카피를 만들어도 스타벅스다. 파타고니아가 AI로 카피를 만들어도 파타고니아다. 브랜드 자체가 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브랜드가 없는 상태에서 AI로 카피를 만들면 그냥 AI 카피다. 어느 브랜드인지 모른다.


판단은 사람이 한다

AI는 도구다. 망치가 못을 박는 게 아니라 사람이 망치를 들고 못을 박는 것처럼, AI가 카피를 쓰는 게 아니라 사람이 AI를 써서 카피를 찾는 것이다. AI를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차이는 프롬프트가 아니다. 판단이다. 어떤 카피를 뽑아야 하는지, 뽑아낸 것 중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왜 이 카피가 이 브랜드에 맞는지를 아는 것. 그게 판단이다. 판단은 AI가 할 수 없다. 25년간 광고를 만들면서 배운 것이 있다. 좋은 카피는 좋은 도구에서 나오지 않는다. 브랜드를 정확하게 아는 데서 나온다. AI가 새로운 도구가 됐을 뿐,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브랜드가 해야 할 것

AI가 카피를 쓰는 시대에 브랜드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다.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브랜드는 누구에게 말하는가.

우리 브랜드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우리 브랜드는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 세 가지가 명확하면 AI가 만든 카피 중에서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다. 명확하지 않으면 AI가 만든 카피 50개 중에서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다. 다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브랜드 경쟁은 누가 더 좋은 AI를 쓰느냐가 아니다. 누가 더 명확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다.


총 12화 연재를 마치며 —

판단이 브랜드다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브랜드의 문제는 대부분 실행이 아니라 판단에서 온다는 것. 신규 유입보다 이탈이 먼저였고, 슬로건보다 포지션이 먼저였고, 디자인보다 고객 재정의가 먼저였다. 팔로워보다 신뢰가 먼저였고, 광고비보다 메시지가 먼저였고, 카피를 쓰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먼저였다. 바이럴을 목표로 하기 전에 브랜드 메시지가 먼저였고, AI를 쓰기 전에 판단 기준이 먼저였다. 모든 화의 결론은 같았다. 판단이 먼저다. 브랜드는 만드는 것이 아니다. 판단하는 것이다. 무엇을 말할지,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 누구에게 말할지, 누구에게 말하지 않을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어떤 방향을 포기할지. 그 판단들이 쌓여서 브랜드가 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 판단은 사람이 한다. 브랜드를 아는 사람이 한다. 그게 브랜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고, 판단이 브랜드인 이유다.


판단이 먼저다. 제작은 그다음이다.

비사이드웍스 → https://bsideworks.co.kr

이전 11화11화-바이럴은 전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