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가 떠올랐다. 안양시 만안구 안양2동. 그곳에서 만안초등학교를 2학년부터 4학년까지 다니며 2년 반을 살았다. 그 동네에 갑자기 가고 싶었다. 40여분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골목의 LED 가로등 때문인지 삼성천을 따라 이어진 LED 빛 때문인지 아니면 산책하는 사람들 때문인지 몰라도 저녁 9시 치고 활기가 있었다. 많이 변해있었지만 개발과 재개발 사이 아슬아슬한 가장자리로 빗겨난, 하지만 무언가 당당한 2층 벽돌 주택들은 여전했다. 골목길 어귀에 바이크를 두고 삼성천을 따라 내가 살았던 집을 향해 걸었다. 몇몇 집들은 흔히 볼 수 있는 4층짜리 소형 다세대주택이 되어 있었지만 내가 살던 집은 30년 전 그대로였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천변을 내려다보는 넓은 거실 창문까지. 거실 안쪽 부엌 가스레인지로 휴지심에 불을 붙여 동생과 나는 삼성천으로 뛰어내려 갔었다. 감자를 구워 먹으려고. 사람들이 산책하는 천변에서 나는 동네형이 죽은 집고양이를 태우며 슬퍼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사람들이 건너는 돌다리 주변에선 여름날 불어난 물에서 노느라 여념 없는 나와 친구들을 봤고, LED 가로등 불빛마저 닿지 않는 골목 구석에선 반지하에 살던 서 씨 남매를 봤고, 그런 그들을 약간의 호기심과 편견으로 지켜보는 나를 봤다. 유치원 친구 민우는 아버지가 상판에 옅은 갈색 장판으로 덧댄 것을 빼면 마치 오락실의 조이스틱과 똑같이 만들어준 것을 자랑했고, 민우 옆에 앉아 조이스틱과 게임보이를 부러워하는 나를 봤고, 녹슨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기어올라가던 나를 봤고, 반지하에 새들어살던 집의 우편물을 함부로 열어봤다고 그 집 아줌마에게 혼나던 나를 봤고, 엄마 지갑에서 훔쳐온 만 원짜리 한 장을 동네형에게 자랑하면서 오락실로 향하는 나를 봤고, 그곳에서 백 원짜리 백개가 쏟아져 나오는 요란스러운 모습에 감동하는 나를 봤고, 거실 반층 위 안방에선 엄마 지갑에 손댔다고 아버지에게 회초리 맞는 나를 봤고, 약속과 달리 하룻밤 자고 가지 않는 외삼촌을 미워하며 안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외삼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를 봤고, 엄마가 생일 케이크 초를 불고 엄마의 나이 듦에 속상하다고 울어대는 나를 봤고, 밖에서 안 싸고 집에만 들어오면 오줌 싼다고 강아지를 발로 차던 아빠를, 집 밖으로 뛰쳐나간 강아지를 찾아 골목길에서 이름을 부르며 울던 나를 봤고, 일 때문에 부산에서 생활하던 아빠가 2주 만에 집에 오는 것이 싫은 나를 봤고, 돈 많은 서점 사장 할아버지가 직원을 시켜 남청색 봉고차에 엄마와 동생, 나를 집 앞 골목까지 데려다주는 모습을 봤고, 길 건너 이용원 의자 위 나무판자에 오르던 나를 봤고, 대학생이 되면 연세대 정문 앞에서 만나자고 친구와 약속하던 나를 봤고, 아빠의 낡은 갤로퍼 뒷자리에 앉아 부산으로 이사 가던 1996년 5월 초 늦은 밤,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다시 오지 않을 이 모든 기억들을 뒤로하고, 이곳을 잊지 못해 30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다시 찾아온 나를, 드디어 고향을 되찾은 나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