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잠

by 정이든

푸르름이 물들어가는 풍경과

은은하게 달콤한 향기가 휘감아 스르르 눈이 감겼다

읽던 책 사부작 덮이는 소리에

짧은 찰나의 주저함이 있었으나

못 이긴 채, 아니 실은 기꺼이 눈을 완전히 감아

내 안으로, 안으로 녹아들었다


봄빛을 받으려 몸을 하늘거리는 나무들 틈으로

간간이 바람이 불어와 몸을 살랑살랑 건드렸지만

웅크리고 수그린 덕분에

나는 나로써 따뜻할 수 있었다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해 보는 것이 얼마만인가

비싸고 편한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긴 시간 속에도 얻지 못했던 안락감을

거칠고 딱딱한 나무의자에서 찾다니 참 우스운 일이다


갈팡질팡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구나

차라리 더, 더, 더 삶을 몰아붙여 볼 것이지

하는 씁쓸함이 입안에 배였으나 이내 뱉었다


따뜻하고 깊은 잠

실컷 자고 나면 기억나지 않을 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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