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음

by 정이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봄내음이 났다.

바람은 아직 차가웠지만 기세가 꺾였다. 겨울 특유의 시니컬한 냄새도 줄었다.


숨을 들이켰다. 구석구석 온기가 퍼졌다.

몸이 가벼워졌지만 일부러 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집 앞 카페에 가려던 참이었다.

봄이 오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이제 한동안 따뜻한 커피는 찾지 않을 것이다.


나는 창가 바 테이블에 앉아 잠시 여유를 즐겼다.

카페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봄내음이 밀려 들어왔다.

나는 그때마다 흡- 하고 흉곽을 열어 공기를 크게 마셨다.


봄내음은 연노란색이다.

개나리 같은 쨍한 색이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묽지도 않은 적당한 연노란색.

아, 연노란 색을 떠올린 순간, 보고서의 연노란 색 강조 표시가 순차적으로 떠올랐다.

지난주에 너무 보고서를 써댔나 보다.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어린 시절의 봄은 나의 공상을 부추기곤 했다.

기대감과 아늑하고 행복한 표정, 생각, 풍경 같은 것들에

둘러싸여 빙글빙글 돌다 보면

오밀조밀하고 포근한, 달콤한 미래를 관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중력에 이끌려 순식간에 지면으로 돌아오거나

직장인이기에 운명처럼 정해진 일상의 막연함을 떠올리게 된다.

집 앞 카페 가는 몇 걸음 정도의 아늑함 정도로 기대감을 타협하고 있다.

어차피 돌고 돌다 보면 다시 겨울이 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봄이 오고 있다.

나는 이제 기대감이 소진될 틈이 없었던, 어린이가 아니다.

자연의 일부로서 계절을 맞이할 책무가 있다.


*


이것이 출퇴근용 검정 봄점퍼를 주문한 이유다.

절대 충동구매가 아니다.

금방 더워져서 못 입을 것이라는 이유로

봄옷을 안 산지가 제법 되었으나

올해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로 했을 뿐이다.

그래야 짧은 계절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름 쿠폰을 먹이고 최저가를 비교하여 구입했다.

밝은 계열은 잘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데일리로 입기에 부담스럽다는

나름의 딥한 고민도 반영한 결과다.

그러니 다시 말하지만, 충동구매가 아니다.


완연한 봄이 오고 벚꽃까지 피면,

새로 산 점퍼를 입고 삼청동과 정독도서관으로 산책을 다녀오는 상상을 해 본다.

점퍼가 어두운 계열이니 바지는 밝은 톤으로 입어야지.


아, 신발은 뭘 신어야 하지? 새 신발도 하나 사고 싶다.





사진: UnsplashMasaaki Ko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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