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살아보는 여행-
아래 글은 제가 2019년 에어비앤비 재직 당시 썼던 글 입니다.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글을 오랜만에 읽으니 재밌어서 공유합니다. 에어비앤비 상장 이후, 혹은 코로나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개인적으로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이 글이 에어비앤비 입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2016년 미국의 구인구직사이트인 글래스도어에서 북미와 유럽 지역의 구직자들이 매긴 기업 평점을 조사한 결과 에어비앤비가 구글과 페이스북을 제치고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1위를 당당히 차지했다. 에어비앤비는 2019년 현재 IPO를 앞두고 회사 안팎으로 약간의 몸살을 겪고 있는 시기라 최근 그 1위 자리를 타 기업에 내어주긴 했으나 여전히 많은 구직자들에게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 에어비앤비만의 특별한 입사 관문과 내가 개인적으로 에어비앤비에 입사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공유하려 한다. 평소 에어비앤비의 기업 문화에 관심이 있었거나 입사를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에어비앤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가 있고 전 세계 메이저 도시에 사업장을 두고서 운영되는 숙박/경험 공유 플랫폼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도 지사가 있다. 나는 지난 2년간 이 서울 지사에서 ‘트립 고객지원팀'의 일원으로 일했다.
지원하는 포지션을 막론하고 에어비앤비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Core Value Interview(핵심 가치 면접, 이하 '코어 인터뷰'로 생략)라는 관문을 거치게 되는데, 이는 해당 포지션과 업무적으로 연관이 있는 질의응답이 오가는 인터뷰가 아니라 지원자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을 알아보는 인터뷰이다.
Core value(핵심 가치)란 어떤 개인이나 기업의 Fundamental Beliefs(기본 신념) 혹은 Guiding Principle(원칙 지침)을 말한다.
보통 에어비앤비 입사를 위해서는 총 세 번의 업무와 관련된 인터뷰 끝에 두 번의 코어 인터뷰가 주어진다. 이 코어 인터뷰를 통해 인터뷰어(면접관)는 지원자가 갖고 있는 다양한 관점과 그가 중시하는 가치들이 에어비앤비의 비전, 그리고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들과 부합하는지를 따져본다. 쉽게 얘기하면 기업과 개인의 궁합을 보는 관문이랄까?
아무리 Hiring Manager(고용 매니저)의 Yes를 받았다고 한들 코어 인터뷰어들 중 한 명이라도 No를 하게 되는 경우에는 입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업무 수행 능력이 출중하다 평판이 난 지원자였을지라도 에어비앤비의 핵심 가치와 잘 맞는다는 확신을 주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를 진행하는 인터뷰어는 지원자가 -만일 입사한다면- 함께 Cross-Functionally 일을 하게 될 유관 부서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어비앤비에서 1년 이상 근무를 했고 Core Value의 중요성을 알며 인터뷰 트레이닝을 완수한 직원이라면 누구든 코어 인터뷰어로 활동할 수 있다. 이들은 매니저의 관점에서 인터뷰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지에 대해 집중한다. 지원자의 배경과 능력보다는 핵심 가치를 보고 그가 에어비앤비의 문화와 잘 맞을지(culture fit)를 보는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의 키워드는 Diversity(다양성)와 Belonging(소속감)인데 이는 그들의 기업 사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에어비앤비의 Mission Statement(기업 사명)는 아래와 같다.
To create a world where anyone can belong anywhere, providing healthy travel that is local, authentic, diverse, inclusive and sustainable
진정한 현지 문화를 경험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며 지속 가능한 건강한 여행을 통해 누구나 어디에서나 내 집 같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에어비앤비 홈페이지 발췌]
'누구나 어디에서나 내 집 같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어찌 보면 참 거창한 기업 사명이다. 기업의 이윤 창출을 넘어서 어떠한 세상을 만들자니.
에어비앤비 입사 전, 나는 그들의 플랫폼을 통해 그들이 그리는 세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 2014년 스페인 세비야 여행 중 묵었던 두 번째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날은 마침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호스트 부부가 나를 선뜻 가족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스페인식 크리스마스를 경험하게 됐다. 긴 테이블에 조부모부터 손주까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몇 시간에 걸쳐 먹고 마시며 스페인 현지 문화를 몸소 체험했다. 여행 중 혼자 타지에서 쓸쓸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대신 호스트 부부로부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 받았다. 다음날 나는 감사의 의미로 장을 봐서 손수 한국식 저녁을 대접했다. 나는 깊이 있는 문화 교류와 누구나 어디에서든 소속감을 느끼는 여행의 산 증인이었다. 내게 몇 년 후에 기회가 생겼을 때 에어비앤비의 Mission에 동참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크게 코어 인터뷰에서 보는 부분, 즉 에어비앤비의 핵심 가치는 네 가지이다.
'Be a Host': 에어비앤비는 호스피탈리티 기업이다. 호스트는 게스트를 환대하고 직원들은 우리 커뮤니티에 속하는 모두(사용자와 직원)를 환대한다.
'Champion the mission': 에어비앤비의 기업 사명인 "Belong Anywhere"를 수호하고 이행하는가.
‘Be cereal entrepreneur’: 세 명의 에어비앤비 창립자가 창업 초기에 기업을 살리기 위해 시리얼 상자를 만들어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기업가적인 정신을 갖고 있는가.
‘Embrace the adventure’: 얼마나 오픈 마인드를 갖고 주어진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가.
코어 인터뷰어는 여러 가지 가정의 상황을 지원자에게 질문하여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끌어내는 동시에 지원자가 인터뷰를 위해 만들어낸 페르소나(Persona)가 아닌 그 사람의 진솔한 모습을 본다.
나의 경우 마치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근황을 업데이트하듯 편안한 코어 인터뷰를 봤다. 스페인에서 살던 중 웹으로 인터뷰를 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내가 스페인에 오게 된 이야기와 함께 중요시하는 가치들에 대해 얘기하게 됐다. (이전 글 나는 성공한 에어비앤비 덕후다 참고)
에어비앤비에서 일하는 모두가 암묵적인 연대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는 아마 ‘우리는 모두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어’라는 생각에서 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개개인이 개성 넘치는 우리는 어딘가 모르게 서로 참 닮아 있었다.
에어비앤비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다라며 일반화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코어 인터뷰와 같은 관문을 거치며 기업의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열린 마음을 갖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존중하는 기업 문화를 고수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는 비단 서울 지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에어비앤비의 장점 중 하나는 직원들이 세계를 여행하듯 근무하고 싶은 장소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매니저의 동의는 필수이며 포지션과 업무에 따라 비슷한 Time Zone에 있는 도시로 지역적 제약이 있을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서울에 베이스를 둔 고객지원팀의 직원은 APAC(Asia-Pacific)에 위치한 싱가포르, 도쿄 혹은 시드니의 사무실에서 최대 2주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서울 사무실에서도 매일 기분에 따라 자리를 골라 앉아가며 일할 수 있었고 종종 다른 도시에서 서울로 "임시 전근" 온 새로운 얼굴들과 옆자리에 앉아 일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국적도 인종도 부서도 다른 에어비앤비 직원들은 서로를 환대하고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일한다.
요즘 아무리 불경기다 취업난이다 하지만 내가 지원하고자 하는 기업의 사명과 윤리, 그리고 문화가 나의 가치관과 잘 맞는지 미리 고려하고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나만 잘 먹고 잘 살다 가는 삶이 아닌 주변에 크던 작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고 싶었다(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내가 에어비앤비 트립 고객지원팀에 속해서 했던 업무들이 내가 사는 세상에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에어비앤비라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에 꼭 필요한 일이라 믿었고 그 배가 나아가는 방향이 내가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에 일하면서 오는 보람도 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