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해 볼 수 있잖아요
몇 년 전 써서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글을 약간 수정하여 발행합니다. 가볍고 재밌게 읽어주세요 :)
나의 결혼 이야기 2.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 제도란 이렇다.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두 남녀는 10년 단위의 계약을 맺는다.
결혼 10년이라는 정해진 기간 안에 서로에게 배우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집도 구하고 애도 낳으며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결혼 생활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
결혼 10년 계약이 끝나는 날 (11주년 결혼기념일), 두 남녀는 서로에게 앞으로 또 다른 10년을 함께할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10년의 결혼 생활을 연장한다. 이는 물론 변호사를 두고 하는 계약이다.
이때 배우자 중 한 명이 계약 연장을 원치 않는 경우 보통의 이혼처럼 재산 분배, 양육권 분배 등의 절차를 밟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처음 10년을 같이 산 배우자가 10년이 지난 뒤에도 좋고 둘이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한 대여섯 번쯤 재계약을 하는 데 성공해서 팔 구순까지 오손도손 사는 것이 희망사항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간에 배우자의 무능력함, 변심, 외도 등의 이유로 재계약에 실패한다면 '이혼녀' '이혼남'의 꼬리표를 달고 남은 생을 살아가는 대신 '결혼 계약 연장 안 했어요' 정도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결혼 생활이 비즈니스도 아니고 어찌 계약이 될 수 있냐 묻겠지만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이 10년 단위의 결혼 계약은 피도 눈물도 없이 각자의 이윤을 따지며 영위되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두 명의 자주독립적인 개인이 서로를 좀 더 애틋하게 여기는 동시에 존중하며 살도록 도와주는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생활도 언젠가 끝난다'를 전제에 두고 임하는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몇 년 전 종영된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이태오(바람난 유부남)의 대사가 '다경아 2년만 기다려줘. 나 와이프랑 10년 계약 끝나가'가 될 수도. 유부남 유부녀의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장려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Take it for granted(당연하게 여기다) 하지 않기 위한 장치이다.
경험상 시간적 제한이 있는 어떤 무언가를 대할 때 조금 더 성실한 태도를 갖게 된다고 믿는다.
나의 첫 직장 역시 그랬다. KLM 네덜란드 항공사는 우리나라 노동법에 따라 한국인 승무원 전원을 2년의 계약직 직원으로 고용했다. 2006년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비정규직 보호법은 기업에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장려하는 법이었다. 허나 KLM은 한국인 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대신 2년마다 새로운 비정규직 승무원을 고용하는 것을 택했다. 항공 업계의 특성상 특정 노선을 위해 고용된 로컬 크루의(한국인 승무원은 암스테르담-인천 구간만 승무 한다)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대한민국은 아직 전시 국가이고 또 전 세계가 겪었던 COVID-19 같은 전염병이 창궐한다면 그에 따른 인천 노선 중단과 더불어 로컬 승무원 감축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KLM 네덜란드 항공은 2010년부터 울며 겨자 먹기로 2년마다 어마어마한 비용 손해를 보면서 새로운 한국인 크루를 채용해 왔었다.
9주의 입사 트레이닝을 무사히 통과하고 암스테르담-인천 첫 비행을 마친 나는 곧바로 비행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일이 손에 익으니 마음에 여유도 생겼고 비행기에서 만나는 손님들에게 장거리 비행에 도움이 되는 스트레칭 팁이나 서울과 암스테르담의 맛집 리스트를 공유할 정도가 되었다. 이 재밌는 일을 2년밖에 하지 못한다니 나는 머지않아 끝날 승무원 생활이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2년의 근무 동안 한 번도 Sick을(결근) 내본 적이 없다. 매 비행 여행을 가듯 설렜고 다음 비행이 다가오기도 전에 소풍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미리 짐을 싸 두었다. 비행이 끝나면 기내 카트와 컨테이너를 하도 열고 닫아서 손끝이 아릴 정도로 열심히 일 했고 암스테르담 레이오버 때는 호텔에서 방콕 하는 대신 암스테르담과 주변 도시들을 열심히 놀러 다녔다. 언젠가 머지않은 미래에 다 끝날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끝이 있는 일, 특히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매 순간 아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계약이 6개월 정도 남았을 때는 항상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암스테르담 구석구석을 걷고 또 걸었다. 내가 난생처음 가본 유럽 도시. 20대 초반의 첫사랑 같았던 암스테르담. 퇴사 후에는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암스테르담을 그렇게 눈과 마음에 담았다.
이야기가 잠깐 새긴 했으나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둘 중 누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서 우리의 인연이 끝나는 날까지의 막연한 데드라인이 아닌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기간을 두고 내 배우자의 10년의 실적을 바탕으로 계약을 연장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얘기해 나도 그 10년 동안 상대방이 또 나를 선택하게끔 좋은 배우자 항목을 대부분 충족시켜야 하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서유럽의 많은 국가에는 동거와 결혼 그 중간 정도의 제도가 있다. 네덜란드나 프랑스의 경우 사실혼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다. 전통적인 결혼 제도를 따른 것은 아니니 서로를 남편과 아내로 부르지는 않지만 같이 살 집을 마련하고 함께 2세도 갖는다.
아이가 있다는 네덜란드 승무원 동료들과 말을 나누다 보면 종종 아이의 아빠를 남자 친구라고 칭해서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20년 가까이 되는 세월을 같이 살고 있는 내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 법적인 남편이 아니고 남자 친구라니. 당시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 왜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어라는 질문에는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대답이 다수였다. It's just a piece of paper. '(혼인신고서) 그건 단순히 종이 조가리에 불가해'. 진정 내 파트너에 대한 믿음이 있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결혼을 하던 안 하던 함께 할 테니까.
결혼 전에 스스로 했던 질문이 있다. 두 사람이 정말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종족 번식의 본능이 아닌 우리 사회가 만든 1부 1 처제는 진정 한계가 없을까?
내가 선택한 배우자와 50, 60년을 함께 사는 동안 나 혹은 그의 눈에 다른 상대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같은 질문을 당시 남자 친구였던 현재의 남편에게 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살면서 눈에 들어오는 다른 멋진 이성이 있을 수는 있지.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애정과 믿음과 우리가 만든 가정이 더 중요하니까 다른 선택은 하지 않는 거지. 언제까지 첫 만남처럼 설렐 순 없겠지만 의리라는 것도 있잖아. 서로에 대한 우정이나 의리 같은 거'.
개인적으로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런 제도가 없다는 게 좀 안타깝다. 그래도 남들에게 보이는 것보다는 나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Z세대들부터는 혼전 동거, 결혼 예식, 비혼 등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 제도와는 별개로 우리 부부는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좀 유별나게 사는 것 같아도 큰 틀에서 남들이 하는 것은 또 다 하면서 살고 있다. 10년 단위의 계약은 못하고 검은 머리 파뿌리까지의 종신계약을 하긴 했지만 그 piece of paper 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속에 갖고 있는 10년 계약서 일 것이다.
매일 육아하랴 살림하랴 내일은 생각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넘어가버리는 느낌이지만 그 와중에도 실은 우리의 삶 자체가 영원하지 않은 시간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늘을 좀 더 감사하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