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말기
출산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지방에 있는 친정에 내려가 임신 막달을 보내던 중이었다.
임신 기간 내내 입덧(토덧 혹은 먹덧)과는 거리가 멀어 우리 남편은 참 복도 많지 했었는데 하필 남편이 출산 예정일을 한 달 앞둔 시점에 해외 발령으로 출국해버리고 나 혼자 친정으로 내려온 이제야 문득 초코우유가 궁금해졌는지. 임신 기간 내내 뭐 먹고 싶으니 대령해라 어린양 한 번 제대로 못한 게(안 한 게) 내심 억울했었는데 이마저도 내가 직접 공수하러 나가야 하다니.
산책도 할 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친정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 단지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슈퍼에 도착했는데 내가 들어서자 계산대 뒤에 서계시던 여사장님께서 유독 반갑게 맞아주시는 게 아닌가.
아휴 귀한 사람 오셨네!
혹여 내 뒤에 따라 들어온 오랜 지인에게 하신 말씀인가 하고 두리번거리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시면서 한번 더 아주 귀하신 분이 오셨어! 하신다.
아 저요? 하하하.
임신 막달 핑계를 대며 과자며 초코 우유, 젤리를 양팔 가득 집어 계산대에 올려놓고는 어쩐지 겸연쩍은 마음에 실은 제가 3일 뒤가 출산 예정일이거든요. 갑자기 초코 우유가 그렇게 당기더라고요. 하자
어휴 그랬어요? 요즘은 애들을 안 낳으니까 임신한 사람 보면 예뻐. 아주 애국자야 애국자.
사장님은 계산대 옆 매대에 있는 낯 개로 개별 포장된 모나코를 하나 서비스로 넣어주시며
이쁜 애기 순산하세요~ 덤으로 덕담까지 주셨다.
귀한 사람.
하나의 생명을 품고 키워내는 고귀한 일을 하는 사람.
임신 기간 열 달 동안 마주쳤던 나랑 평생 일면식도 없던 이들의 덕담에 스스로도 참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상기시키곤 했다.
아직 배가 많이 나오지 않은 임신 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괜히 임산부 좌석을 이용하는 것이 눈치가 보여 허리를 앞으로 쭉 빼고 임산부 스티커가 잘 보이게 앉곤 했는데 누가 봐도 임산부구나 할 정도로 배가 나오기 시작한 후부터는 굳이 내가 티 내지 않아도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임산부라는 이유로 받는 환대와 배려는 몸이 무거워질수록 고마웠다.
내가 부축해줄게요. 무거운 거 들지 말아요. 도와줄게요. 여기 앉으세요. 먼저 타세요. 세상 사람들이 서로를 임산부 대하듯 한다면 더 배려 넘치는 사회가 될 텐데 하며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뭐든 자기가 직접 겪어 봐야 안다고 임신과 더불어 경험하게 되는 신체적, 감정적 변화와 더불어 내가 세상에 내놓는 한 생명을 독립하기 전까지(한편으로는 평생) 보호하고 지켜줘야 한다는 막대한 책임감에 필연적으로 우리 엄마도 걸었을 그 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걷는 길.
엄마라는 친근하면서도 새로운 역할을 나는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새삼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친정엄마랑 시어머니께만 여쭤봐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나 기억의 조각들을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얘기해주신다. 그만큼 여자에게 있어서 임신, 출산과 육아는 뼈에 각인이 될 정도로 기억에 남는 경험임이 틀림없다.
둘째는 태동도 요기 배 아래쪽에서만 꼬물꼬물 했어서 나는 정말로 딸인 줄만 알았잖니~
큰애를 가졌을 때는 임신 초기부터 입덧이 심해서 살이 오히려 빠졌었어 근데 입덧을 7개월까지 한 거 있지!
네 동생 가졌을 때는 멍게가 항상 먹고 싶어서 아빠가 퇴근하실 때마다 생물 멍게를 그렇게 사 오셨어.
여자라면 임신 기간이 어떻게든 기억에 남겠지만 코로나가 바꿔놓은 세상에서의 임신은 분명 지금까지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일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육아에 대한 경험을 훗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묵직한 답답함일지도 모르겠다.
임신 기간 대부분 혹시라도 잘못된 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어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해가 갈까 극도로 사람을 피했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혈육을 무서운 바이러스에 노출시킬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인간으로서 가질만한 많은 욕구들을 억눌러 왔다. 그 무게와 책임감이란...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프로 캔슬러가 되어 친구와 미리 했던 약속들은 기약 없는 '나중에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으로 무기한 연기되었고 미혼의 친구들과도 서로 인생의 챕터가 다르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멀어지게 됐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조금 더 단절되었다. 이 세상 많은 엄마들이라면 '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을 테지만 코로나 시대에 엄마가 되는 경험을 했던 이들이야 말로 그것을 좀 더 뼈. 저. 리. 게 느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혹은 하게 될 미래의 엄마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해서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참여했을 임산부 요가 클래스라던지 손바느질 클래스는 꿈도 못 꾸는 일이 됐다. 극성맞은 엄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기에게 좋다는 것은 가능한 한 해주고 싶은 내 마음은 그렇게 태교다운 태교를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대신했다.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자주 마주하게 되는 감정이 죄책감이라던데 미리 친해졌다고나 할까. 외식은 또 웬 말인가 손에 꼽을 정도의 외식조차 식당에 미리 전화를 해서 테이크아웃 주문을 넣고 음식이 준비되면 받아와서 차에서 먹었는데 그때마다 남편과 좁은 차에서 지금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허탈하게 웃었던 기억도 있다.
밖에서 맘껏 산책도 하고 광합성도 하고 태교여행이라는 것도 가보고 싶었는데 우리 모두의 일상을 바꿔버린 코로나는 특히나 임산부에게는 더 혹독한 현실을 주었다. 막중한 책임감에 마치 감옥생활을 하듯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냈고 그야말로 항시 자가격리에 잠깐의 외출이 허락되는 정도로 생활을 했으니 그리 즐겁고 행복한 임신 기간이었다고는 할 수는 없겠다. 나중에 팬데믹 베이비들을 따로 연구하게 된다면 어쩌면 임신 당시 엄마의 심리 상태와 아이들의 발달이나 성향의 상관관계가 입증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10개월의 길다면 긴 임신 기간 동안 호르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렸다. 이제라도 마스크 단디 쓰고 태교 클래스를 다녀 볼까? 더 똑똑해질 수 있었던 태평이(태명)가 내 걱정과 게으름으로 인해 엄마 덕을 보지 못한다면 어쩌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최선을 다해 태교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잊을만하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나를 괴롭혔다.
그놈의 최선. 태교마저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나의 성격.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 예비맘들의 분위기.
아이를 밴 여자가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고 언행을 삼가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우리가 소위 말하는 태교라는 것은 엄마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에게 최선을 다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태아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것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은근히 스트레스받던 당시의 나에게 제일 위안이 됐던 말은 남편이 무심하게 툭 던진 한마디였다.
여보, 어차피 태교를 욕심 내서 해도 애 머리는 우리 머리에서 크게 다르진 않을 거야. 그냥 받아들여.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다. 무심하게 뼈 때리는 게 특기인 남편이다.
그냥 맘 편히 잘 먹고 잘 쉬고 많이 웃으면서 지내는 게 제일 좋은 태교야 라고 했던 육아 선배인 한 친구의 얘기도 내 마음 가짐을 바꾸는데 역할을 했다.
어느덧 태평이는 세상에 나와 돌을 앞두고 있고 아주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주고 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가 임신기간 내내 너무 극단적으로 외출을 삼가고 집에만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지인들도 마스크 잘 쓰고 조심하면서 외출도 하고 어느 정도 일상을 영위하면서 지냈고 별 탈 없이 아기를 낳고 키우고 있는 걸 보면 내가 또 너무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뭐든 적당히가 좋은데 그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대신 남편과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태교를 반쯤 자포자기 한 시점부터는 정말 guilt free 하게 지냈다.
아침 늦게까지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일어나 아점을 먹고 그러다 졸리면 또 한 숨 자고 모차르트 음악 대신 최신 유행하는 팝송을 들으며 춤을 췄고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함께 게임을 하고 깔깔거리며 나만의 태교를 했다. 다 지나고 나니 결국에는 뭐든 엄마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게 태아에게도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신 S대학교 산부인과 전종관 교수님의 말씀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었는데 임신부의 태교가 태아에게 좋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한다. 워킹맘이라서 태교다운 태교를 못한다고 스트레스받을 필요도 없고 엄마는 그저 아기를 열 달 동안 품어서 세상에 내놓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몫을 다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 나처럼 열 달 동안 품는 것 이외에 플러스알파: 매일 밤 배에 대고 태담 들려주기, 임신부 명상, 임신부 요가, 임신부 수영, 태아 클래식 들려주기, 태아 뇌를 발달시키는 바느질 등등을 못해서 슬픈 예비 엄마들이여 부디 맘 편히 태교는 놓으시길 바란다.
머지않아 다 지나고 나면 알게 되리라.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 쏟는 정성보다 아기가 비로소 세상에 나와서 주는 정성과 사랑이 더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매일 피부로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