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靜天) 에세이 36]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by 한정구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A ship is in harbor is safe, but that is not what ships are built for.” by John A. Shedd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꿈을 위해, 생존을 위해, 생계를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문제는 방향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멘토(Mentor)를 찾는다.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와 같은 유명한 학자들의 책을 읽고, 유명인들의 강연에 가고, 주변에 학식과 성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조언을 구한다. 그러나 책을 덮은 후에도, 그들을 만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늘 허전하기만 하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멘토들이 해답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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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Let Anybody Steal Your Dream


영화 <파닥파닥(2012, 감독 이대희)>은 횟집 수족관에 갇힌 고등어 ‘파닥파닥’이 겪는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파닥파닥’은 끊임없이 바다로 돌아가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수족관에 갇히고 만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파닥파닥’이 바다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무의미해 보인다. 그러나, ‘파닥파닥’에게 탈출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의지와 삶을 바꾸이 위한 선택의 실현이다.




<크랩 멘탈리티(Crab Mentality)> 또는 <크랩 이론(Crab Theory)>이라는 이론이 있다. 양동이 안에 게들을 집어넣으면 어떤 게는 양동이 밖으로 탈출하려고 한다. 그러면 옆에 있는 다른 게가 탈출하려는 게를 방해한다. 이 이론은 양동이 속에 있는 게들의 행동습성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이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인간의 이기심을 묘사한 이론이다. 집단에서 한 구성원이 우월하다고 평가받으면, 다른 구성원들이 질투와 열등감 등을 느끼고, 우월하다고 평가받는 그 구성원의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행동을 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도전에 늘 방해되는 사람은 오히려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또한 누군가에게는, 특히 아무것도 하지 않던 누군가에게는,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때 그들은 마치 내 앞에 도움을 줄 것처럼 나타나 나의 자신감을 깎아 내리기 시작한다.


“네가 아직 도전하기는 너무 일러”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조금 더 신중해 봐”


“수많은 경쟁자들이 있을 텐데, 쉽지 않을 거야”


만약 도전을 포기하면 그들은 뒤에서 비웃을 것이다.

만약 도전에 실패하면 ‘거봐 내 말이 맞지’ 라고 하며 쓰러져 있는 나를 다시 밟는다.

혹시 도전에 성공하면 자신의 조언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을 아끼지 않는다.


나라는 배를 항구에 묶으려는 자들이다. 하지만 나라는 배는 항구에 있기 위해 만들어진 배는 결코 아니다.



가짜 군기의 어이없음


대학교에 입학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첫 번째는 밴드였다. 음악을 하고 싶어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선배들은 음악을 가르치지 않았다. 음악이 아닌 군기와 조직적응법을 가르쳤다. 군기를 가르치고 강조하는 선배 중에는 어이없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미필자와 여자들도 있었다.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두 번쨰는 영화였다. 시나리오를 쓰거나 직접 연출도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이 동아리의 선배들은 따뜻하게 맞아줬다.


하지만 똘아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틀리지 않았다. 유독 남자선배 하나가 나를 괴롭혔다. 만날 때마다 은근히 사람을 무시하는 말투로 나를 대했다. 다른 여자선배가 말렸다. 하지만 장난으로 하는 행동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그 곳에서도 조용히 떠났다. 붙잡는 여자선배에게는 다른 동아리 활동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꿈에서는 멀어졌지만 좋은 사람들이 많은 동아리를 찾았다.)


며칠 후 강의실로 가는 길에서 괴롭히던 선배를 만났다. 나는 모른체하며 지나갔다. 몇 걸음 뒤에서 나를 부르던 그 선배가 다시 내게 걸어왔다. 그리고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너...조심해…”


다행히 그날 이후 다시는 그를 만난 적이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군대를 다녀왔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3년 정도 흘러 회사생활에도 여유가 생겼다. 어느 날 회사동료들과 점심식사를 마친 후 농담을 하며 회사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저 쪽에서 그때 조심하라고 했던 그 선배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었다. 그때와 달리 무척이나 긴장한 표정으로 회사선배의 뒤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누가봐도 신입사원의 모습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 듯했다. 인사라도 할겸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선배가 먼저 긴장한 듯 눈을 내리깔더니 자신의 선배를 따라 걸어갔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군기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군기(軍紀, Military Discipline)란 군대의 기강을 말하며, 효율적인 전투와 강한 군사력을 갖기 위한 필수요소다. 그런데 군대도 아닌 곳에서 군기를 잡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군사정권이 싫어 민주화 투쟁을 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군기는 진짜 군기가 아니다. 양동이 속에서 다른 게처럼 다른 게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단지 나이가 많고 조직에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위계(位階)를 내세우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정받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생긴 외로움의 표현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훌륭한 선배나 리더는 군기를 입에 달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후배와 팔로워들이 따른다. 그리고 군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그 군기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꿈을 포기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글 | 정천(靜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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