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으로부터의 해방
내가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유학생 시절이었다. 그 당시 나는 범죄학 관련 전공들이 많이 갖춰진, 뉴욕에 위치한 한 대학에서 법정/범죄 심리학(Forensic psychology)을 공부하고 있었다. (원래 나는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국제 형사정책학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일학년 이학기 때 사회학 101 수업이 너무 재미가 없게 느껴져서 그 학기가 끝난 후 바로 전공을 바꾸어 버렸다. 다행히 나는 바꾼 전공에는 흥미를 잃지 않고 무사히 졸업 후 관련 전공으로 대학원을 진학하였다.)
전공수업 중에는 흥미로운 수업들이 많았는데, 당시 나는 범죄행동 심리(Psychology of Criminal Behavior) 저녁 타임 수업을 수강 중이었다. 뒤로 갈수록 날씨가 추워져서 그 저녁에 수업을 듣기 위해 집에서 나오려면 항상 엄청난 결단이 필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때는 학기 중반쯤이었다. 범죄행동 관련 심리적 요인 중 정신질환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는데, 그중 다른 정신질환들과는 다르게 한 단원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와 사이코패시(Psychopathy) 였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전에도 종종 여러 수업에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잠깐 나왔었던 적은 있었지만, 주된 연구주제가 아니었기에 나 또한 미디어에서나 많이 접할 수 있었단 단어였고, 이렇게 자세히 다룬 수업은 이 수업이 처음이었다. 이 날 내가 배운 것들을 정리해보자면, 사이코패시는 DSM으로 진단되는 정신질환은 아니기에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엄연히 다르다는 것, 하지만 폭력성과 위험성과 관련이 있으며, 잔인한 범죄들을 치밀하게도 저지른 악명 높은 범죄자들이 대부분 사이코패스였다는 것이 었는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성공한 사이코패스 (Successful Psychopath)' 였다. 물론 지금까지의 수업에서도 모든 범죄자가 사이코패스는 아니고, 모든 사이코패스가 범죄자 인것은 아니라고 들었지만, 결국엔 범죄자나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사회와는 동떨어진 음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였는데 성공한 사이코패스라니. 어떻게 범죄자로 빠질 수밖에 없는 성향을 가지고 성공을 한단 말인가?
이후에도 사이코패스에 대한 여러가지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의 큰 차이중 하나는 공감능력임을 알게 된 날이 기억이 난다. 쉽게 예를 들자면, 길 가다 나랑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 넘어졌을 때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나 지인이 당하고 있는 슬픔이 전해져 타인의 슬픔을 알게 되는 것인가 아님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타인의 감정을 추론하는 것인가가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의 공감능력에 존재하는 가장 큰 차이이고, 그러한 자동적인 감정적 공감능력의 결여때문에 사이코패스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 공감을 안하려면 안할 수 있기에 사이코패스가 아닌 범죄자들에 비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흥미로운 사실들을 넘어 나에게 더욱더 흥미롭게 다가온 사실은 ‘머리를 통한 인지적 공감이 아닌, 감정적인 공감이 일반적인 것’였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예민한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종종 하였다. 그리고 친구가 나에게 그의 삶을 나눌 때, 그 상황에서 그가 어떠한 감정을 느꼈을지 인지하고 이야기에 알맞은 반응을 보여주는 일이 (물론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이지만) 번거롭고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피곤함을 느끼며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적으로 살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자동적으로 가능한 프로세스였다니. 사람들이 삶을 나눌 때 그에 대한 공감이 (1)인지 와 (2) 알맞은 반응을 고르는 절차가 없이 마음으로 가능하다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나는 내가 대부분의 사람들과 공감에 대해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런 스스로의 다름에서 비롯된 것들에 대해 심리학적 관점에서, 범죄, 수사 심리를 전공하며 배운 것들을 기반으로, 고찰하기 시작하였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내가 사이코패스라고 말할 수 없다. 사이코패스라고 진단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가장 보편적인 사이코패스를 판단하는 기준인 헤어 박사님의 모델 (Hare's Psychopathy Check List)은 사이코패스적 범죄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아마 나를 진단하기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사이코패스에 관한 연구결과들에서 나온 성향들을 보았을 때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성공한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칸트는 계몽을 '편견 일반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정의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굉장히 높은 나는 현재 우리나라에 형성된 사이코패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 굉장한 씁쓸함을 느낀다. (씁쓸함이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니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공감과 감정을 느낌은 다른 문제이다.) 이러한 편견 때문에 이 글을 시작하기 전 많은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널리 퍼진 그러한 부정적인 시각들 때문에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진짜 나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기에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이 사회에서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는지, 그 소소한 일상들에 대해 쓰고 나누며 사이코패시를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