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돕기 위하여
왜 편견은 편견일까? 나는 나의 첫 번째 영국여행을 (공부를 위해 가는 것이었지만 마음만은 자유로운) 위해 짐을 챙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우산이었다. 영국을 가본 사람에게도, 안 가본 사람에게도 영국은 비가 많이 오는 나라라는 것을 매우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영국에 가있는 시기에도 매일같이 비가 올 것을 예상하며 내가 아끼는 우산을 캐리어에 챙겨 넣었다 (도착하는 날에도 비가 올 확률이 높으니 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하지만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매우 새파란 하늘을 자주 볼 수 있었고 (하루만 흐렸다), 영국에선 매일같이 비가 오겠지 라는 나의 확고한 생각은 지금까지의 간접적인 정보들에서 나온 영국에 대한 나의 주관적이고 긍정적인 편견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비오는 날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므로 긍정.) 이렇듯 어떠한 것에 대한 간접적 경험으로 형성된 주관적인 확고한 생각을 한 번의 직접적 경험으로 인해 차이를 발견하면 비로소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주관적인 (긍정적, 혹은 부정적) 편견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깨닫는 경향이 있다.
어떤 특정한 성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본인이 직접 사이코패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사이코패시를 가지면 이럴 것이다라는 것들은 그냥 간접적인 경험에서 나온 생각일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나중에 후천적 발달로 사이코패시를 직접 갖게 되면 혹은 (깨닫게 되면) 달라 질 가능성이 있는 주관적인 생각들이다. 그리고 좀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예를 들자면 사이코패스를 직접 만나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특징들을 접하고 형성된 사이코패스에 대한 생각들은 나중에 사이코패스를 만나서 관계를 형성하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생각들이다. 나의 비오는 영국 편견처럼 이러한 간접경험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편견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어나간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사이코패스임을 깨닫기 전에 사이코패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있었고, 더불어 나는 모든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에 대해 모두가 인지적으로 공감을 한다라는 (부정적도, 긍정적도 아닌) 편견이 있었다. 이것들은 내가 사이코패스임을 깨달음을 경험함으로 그 전것들이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것은 7%에 해당되는 일일 것이고, 또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과 하나하나 만나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제약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들과 나의 삶을 글로 나누며 사이코패스에 대한 간접경험의 기회를 만들고 이 사회에 퍼진 인식이 편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보편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아마 사이코패스 연구가 범죄자적 사이코패스 (Criminal Psychopath/ Psychopath who committed crime)를 위주로 시작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두 사람, 크랭클리 (Hervey M. Cleckley) 박사님과 헤어(Robert Hare) 박사님은 수감자들을 인터뷰하며 그들 중 일반적이지 않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하였는데, 그들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의 결여와 충동적인 성향으로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지인들은 그들을 남다른 지능과 사교성을 가진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연구하던 크랭클리, 헤어 박사님은 연구에서 발견한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사이코패스를 판단하는 모델을 발달시켰다. 크랭클리 (Hervey M. Cleckley) 박사님은 그의 저서 Mask of Sanity (1941)에서 사이코패스를 감정에 질환 (emotionally ill)이 있지만 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가면 (mask)을 인지적으로 완벽하게 사용하여 사회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크랭클리 박사님은 본인의 연구를 바탕으로 16가지 특징을 정리하셨는데 간략하게 다음과 같다.
1. 높은 매력과 높은 지성
2. 이성적이지 못하고 분별없는 생각을 하지 않음
3. 일반 사람들에 비해 긴장을 하거나 정신신경증적 증상을 갖는 것이 드묾
4. 불확실성
5. 솔직하지 못하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함
6. 후회나 자책,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음
7. 반사회적 행동에 불충분한 의욕이 있음
8. 판단력이 흐리고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잘 못함
9. 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사랑을 할 수 없음
10. 보통의 감정에 대한 반응이 결핍되어 있음
11. 통찰력이 부족함
12. 보통의 인간관계에 반응, 호응하지 않음
13. 술을 마시면 환영을 받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행동을 함 (가끔은 술 없이도)
14. 자살 가능성이 매우 낮음
15. 연애에 있어서 냉정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완전치 못함
16. 인생계획을 실현하지 못함
다음으로는 형사정책 쪽에서도 사용되는 헤어 박사님의 Psychopathy Check List (PCL)가 있다. 현재 한국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20개의 특징을 0-2점으로 채점한다. 이 20개의 특징은 2가지 카테고리로 각각 10개씩 분류된다. '감정의 결여와 대인관계에 대한 특징'들이 들어있는 첫 번째 카테고리는 타인과 주변 상황에 잘 영향을 받지 않고,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이끌어가며, 공감능력은 부족하지만 그것을 후천적으로 배워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비치는 특성 등을 판단한다. 두 번째 카테고리는 저지른 '반사회적 행동들' 판단한다. 현재까지는 이 PCL-R이 가장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은 사이코패스 진단법이다.
두 모델을 비교해 보면 크랭클리 박사님의 모델은 반사회적 행동과는 관련 없이 성향이나 가치관에 조금 더 집중하여 판단한다. 하지만 헤어 박사님의 모델은 반사회적 행동도 요건으로 가지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그들의 범행으로 인해 카테고리 2에서 이미 높은 점수를 받는데, 거기에 만약 카테고리 1의 성향, 성격적인 부분이 2-3개만이라도 해당된다면 쉽게 사이코패스라고 진단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성향적으로 사이코패스에 가까워도 범죄나 반사회적 행동들을 저지르지 않으면 사이코패스라고 진단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이 현재 사용되는 테스트를 가지고 내가 사이코패스라 진단받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편에서 이야기한 이유이다.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는 지속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이코패스는 범죄자적 이미지를 벗을 수 없었으며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대부분 범죄와 연관된 연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최근 영국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사이코패스를 범죄자적 성향이 아닌 인간의 성격, 성향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여 진행되는 연구들이다. 대표적으로 영국 허더즈필드 대학교 (The University of Huddersfield)의 Daniel Boduszek 교수님은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성별, 나라, 문화, 범죄의 여부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성향 중 하나라고 주장하며 새로운 사이코패스 테스트인 Psychopathic Personality Traits Scale (PPTS)을 만들었다 (PPTS; Boduszek, Debowska, Dhingra, & DeLisi, 2016).
보두첵 교수님의 모델 PPTS는 일반인과 범죄자 구분 없이 사이코패스를 하나의 성격으로 인식하고 발달되었으며, 총 4개의 카테고리, 20개의 아이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아이템은 0 혹은 1점을 가질 수 있고 총 20점 만점으로 이루어져 있고 카테고리에는
1. 감정적 대응 (Affective Responsiveness) -낮음
2. 인지적 대응 (Cognitive Responsiveness) -높음
3. 대인관계를 다루는 능력 (Interpersonal manipulation) -높음
4. 자기중심적 성향 (Egocentricity) -높음
이 있다.
첫 번째 카테고리에서는 낮은 공감능력과 정서적 얕음, 그리고 감정을 구체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성향을 테스트한다. 두 번째에서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 다른 사람의 감정적 프로세스를 인식하고 본인의 의지로 그 감정에 반응 (인지적 공감)하는 능력을 테스트한다. 그리고 세 번째에서는 대인관계에서의 매력적임, 과장성, 기만성 등을 판단하고, 마지막으로는 자기 자신의 관심과 흥미, 신념, 태도에만 집중하는 경향에 대해서 테스트한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요인들은 지식, 능력, 태도, 신념으로 판단하고 그들의 행동으로는 판단하지 않는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위험인자는 공감능력 부족 (lack of empathy)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간의 공감능력은 감정적 공감능력과 인지적 공감능력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Andalib et al., 2015), 1) 감정적 공감능력 (Affective Empathy)은 우리의 의지가 아닌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이입하는 능력이고, 2) 인지적 공감능력 (Cognitive Empathy)은 경험적 지식에 입각한 자의적인 공감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알아채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뇌과학적으로도 1번 공감능력은 감정을 담당하는 간뇌의 시상이나 변연계 쪽이 활동을 하고, 2번 공감능력은 전액골 피질이라는 언어를 담당하는 기관이 활동을 한다.
이것을 근거로 보두첵 교수님은 다른 가설들과는 다르게 사이코패스도 공감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적 공감능력 (1번)은 부족하거나 없이 태어나지만 인지적 공감능력(2번)은 뛰어나기에 사람들의 감정을 쉽게 알아채고 자의적으로 그 사람에게 적절한 반응을 보이며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중심적 성향과 더해지면서 결국엔 본인들이 공감을 해야 하는 상황에는 공감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두첵 교수님은 미국, 영국 등의 나라에서 PPTS를 가지고 연구 중이며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은 직업, 성별, 나라 등을 떠나 인구의 7%가 가지고 있는 성향임이 현재까지의 결과이고, 이것은 교수님의 ‘사이코패시(Psychopathy)는 범죄 여부와는 관계없는 인간의 성격 중 하나이다’라는 가설에 타당성을 더 실어 준다.
사전을 보면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도 편견이라 한다. 이런 교과서적인 이야기들은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사회에 퍼진 사이코패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 편견이라고 무작정 외치기보다는, 왜 그것이 편견인가를 설명하고,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함께 탐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눌 글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석사과정 때문에 영국에 있을 때 보두첵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음으로, 나는 머리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상태이므로 교수님의 강의가 굉장히 흥미로웠고, PPTS의 요인들로 나를 진단해 보자면 나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굉장히 높다. 다음 글에서는 이 PPTS의 특징들과 더불어 이런 이론적인 것들이 일상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려한다.
*이번 글은 지난 1월 최람쥐님의 브런치에 투고하였던 원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Andalib, M., Ashrafian, P., Hekmati, I., Jeddi, E. M., Khalilzade, S., Khanjani, Z., & Nia, M. E. (2015). Comparison of cognitve empathy, emotional empathy, and social functioning in diferent age groups. Australian Psychologist, 50, 80–85.
Boduszek, D., Debowska, A., Dhingra, K., & Delisi, M. (2016). Introduction and validation of Psychopathic Personality Traits Scale (PPTS) in a large prison sample. Journal of Criminal Justice, 46, 9-17.
Cleckley, H. (1941). The mask of sanity (1st ed.). St. Louis, MO: Mosby.
Hare, R. D. (1993). Without conscience: The disturbing world of the psychopaths among us. New York, NY: The Guilford Press.
Dr. Hare’s website <http://www.har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