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판정

by Heesoo Jung

2017년부터 이 공간에 수사심리학 전공자로서 글을 써오며 내가 가장 경계했던 건 학문의 오만함이었다. 한 인간의 복잡한 생애를 단 몇 줄의 진단명으로 요약해버리는 그 서늘한 효율성.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괴물’을 규정하는 방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듯하다. 아니, 어쩌면 더 조급하고 더 자극적으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최근 뉴스 화면을 가득 채운 ‘김소영,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판정’이라는 자막은 오래도록 마음에 걸렸다. 이건 단순한 용어의 오용으로만 보기 어렵다. 사이코패스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아무 설명 없이 같은 말처럼 포개는 순간, 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은 멈추고 자극적인 낙인만 남는다. 이제는 대중도 두 개념이 완전히 같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시대인데, 지상파 뉴스는 여전히 낡은 등식 위에 안주하고 있었다. 전문가라는 이들이 나와서 반복하는 설명을 듣고 있자니, 그들이 말하는 ‘사이코패스’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모호하게 느껴졌다.



껍데기만 남은 오래된 체크리스트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많은 범죄심리 전문가들이 근거로 삼는 로버트 헤어(Robert Hare) 박사의 PCL-R은 교정 및 포렌식 맥락에서 오랫동안 큰 영향력을 가져온 도구다. 다만 이 모델은 전과, 소년원 기록, 충동적 행동 같은 외적 행동 지표를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 도구를 사용할 때는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범죄 이력과 반사회적 행동을 많이 보였다는 사실이 곧바로 그 사람의 내면 구조 전체를 설명해준다고 여겨지는 순간, 우리는 사람의 심리보다 결과만 읽게 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현대 심리학의 일부 흐름은 분명한 문제제기를 해왔다. 범죄 이력은 어떤 성격 특질의 가능한 발현 양상일 수는 있어도, 그 특질 자체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Jennifer Skeem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PCL-R 점수와 psychopathy 개념을 지나치게 겹쳐 읽는 태도를 비판해왔다. 비판의 핵심은 단순하다. 범죄를 많이 저질렀다는 사실과 특정한 성격 구조를 가졌다는 판단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Skeem 박사의 비판이 정곡을 찌른다는 사실은, 그 이후 벌어진 논란만 봐도 알 수 있다. 2010년에는 Skeem과 Cooke의 비판 논문이 헤어 측의 법적 대응 시사와 맞물리며 약 3년간 출판 지연 논란을 겪었다는 점이 공론화됐다. 비판 논문을 둘러싼 법적 대응 시사와 출판 지연 논란은, 이 논쟁이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psychopathy 개념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PPTS나 TriPM 같은 모델들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모델들은 보다 특질 중심적으로 psychopathy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행동의 결과만이 아니라 정서 반응성, 대인관계적 양식, 대담성, 비열함, 탈억제 같은 심리적 구조를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려 한다. 물론 이들 역시 하나의 완성된 정답이라기보다 연구와 토론이 계속되는 접근이지만, 적어도 ‘범죄를 저질렀다’는 결과만으로 한 사람의 내면 전체를 결론내리는 태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무는 고유성의 지도


Christopher Patrick과 David Cooke 같은 학자들이 던진 질문은 더 흥미롭다. 사이코패스적 성향이라 불리는 것들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발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특질은 누군가에게 파괴적인 행동의 바탕이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기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대담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Scott Lilienfeld 역시 기존 모델이 감옥에 간 표본에 지나치게 기대면서, 그러한 특질의 다른 표현 양상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패트릭의 삼원론적 모델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두려워해온 특성들 또한 늘 단선적인 악의 표지가 아님을 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전과가 있느냐 없느냐만이 아니다. 같은 특질도 어떤 환경과 어떤 사회화 과정을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현될 수 있다. David Lykken이 오랫동안 강조했던 것도 결국 비슷한 지점이었다. 겁 없는 기질이 어떤 맥락에서는 영웅성이나 탐험 정신으로 나타나고, 다른 맥락에서는 범죄와 결합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늘 ‘고유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인간의 심리 구조는 낙인으로 봉인할 대상이 아니라, 편견 없이 읽어내야 할 지도에 가깝다. 우리가 흔히 ‘성공한 사이코패스’라 부르거나, 반대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하나의 단어 아래 묶어버릴 때 놓치는 것도 바로 이 복잡한 지도다. 문제는 그 사람이 태생적으로 악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성향이 어떤 환경과 만나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었느냐는 데 있다.



낙인이 아닌 고유성을 읽어야 할 시간


김소영이 저지른 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에게 ‘사이코패스’라는 딱지를 붙여버리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멈추게 된다. 왜 그런 선택이 나왔는지, 어떤 심리적 구조와 맥락이 작동했는지, 무엇이 위험 요인이었는지를 분석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그는 사이코패스니까’라는 한마디로 복잡한 맥락을 지워버리는 건 수사심리학이라기보다 행정적 편의에 더 가깝다.


수사심리학을 전공한 뒤 내가 범죄심리학과 거리를 두며 가짜 뉴스와 싸워온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의 고유성은 몇 점의 수치로 재단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한 성향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 본질적인 시선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낙인을 찍는 가해자가 된다. 누군가를 ‘치유 불가능한 존재’로 상정하는 일은 대개 이해의 실패를 감추는 가장 손쉬운 방식일 뿐이다.



미디어가 팔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미디어는 이제 자극적인 자막으로 공포를 파는 일을 멈춰야 한다. 오래된 체크리스트 뒤에 숨어 낙인을 찍는 행정 편의주의는 결국 우리 사회의 눈을 멀게 할 뿐이다. 어떤 사건을 보며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점수가 몇 점인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심리 구조와 삶의 맥락이 왜 이런 파괴적인 방식으로 발현되었는가’여야 한다.


심리학의 논의는 이미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대중 보도는 여전히 낡은 성벽 아래 머물러 있다. 보두첵, 스키엠, 패트릭, 쿡, 릴리언펠트 같은 학자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문제제기가 단 한 줄의 뉴스 자막 앞에서 납작하게 무너지는 장면을 볼 때면, 그 무책임함이 고통스럽다. 조금만 더 공부했더라면,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그렇게 단정적인 자막은 쉽게 달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가며: 9년의 기록, 그리고 다시 던지는 질문


2017년부터 관련 내용을 종종 나눠오며 내가 배운 건 하나다. 정답은 점수표에 있지 않다는 것. 인간은 그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이며, 무엇보다 변화 가능한 존재다.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이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들이 가진 특이한 인지 방식과 정서적 질감을 더 정밀하게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재범 방지와 사회적 통합을 이야기할 수 있다.


혹시 변동사항이 있나, 과거 발언에 대한 책임의식에 나는 주기적으로 사이코패스 관련 논문을 뒤적인다. 논쟁적인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 오래된 이론과 새롭게 제안되는 모델들을 함께 읽으며 다시금 다짐한다.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여전히 자극적인 단어에 중독되어 있지만, 누군가는 그 단어의 민낯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이라 부르는 이들이 사실은 더 복잡한 심리적 지도를 가진 인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조심스럽게라도 말해야 하니까.


글이 길어졌지만, 할 말은 여전히 남았다. 학문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타인을 배제하기 위한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을 넘어, 우리 사회가 인간을 대하는 그 얕은 시선에 대하여. 나는 앞으로도 내 눈에 보일 때마다 이 문제를 다시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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