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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익 Feb 05. 2022

좋은 영화는 엔딩 크레딧 이후에도 계속된다.

2021년 개봉작 베스트.


음력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나는 설날이 좋다.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고, 느슨해진 새해의 감정을 한 달 사이에 또 새롭게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지난 한 해 극장에 걸렸던 좋은 영화의 리스트를 남겨본다. 올해도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길 희망하면서.



<드라이브 마이 카>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단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듯싶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희곡 <바냐 아저씨>의 대사로 상징되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사실 뻔하다. 마음의 상처에 괴로워하는 중년 남성이 진실을 직시하고 그럼에도 삶을 이어간다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우리에게 언제나 깊은 감동을 선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뻔해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함부로 덧붙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영화는 몹시 탁월하다. 그 뻔한 진실을 드러내기까지 하마구치 류스케가 취한 '언어적 거리두기'라 표현해도 무방할 시선과 태도는 <왜 그 뻔한 이야기를 '영화'라는 수단으로써 풀어냈어야 했는지>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된다. 왜 소설이나 음악이나 그림이나 혹은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였어야 했는지. <'영화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답안 같은 영화다. 그 대목에 있어서 얘기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프렌치 디스패치>

사랑스럽다. 세밀하고 감각적인 미쟝셴이 그 자체로 예술이다. 어마한 디테일이 새겨진 숏들이 빠른 템포로 휙휙 넘어간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3번이나 봤다. 그 예쁜 장면은 정확하게 보고 싶어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꿰뚫는 키워드가 있다면 <노스탤지어>가 아닐까 싶다. 과거의 한 장면을 예쁘게 포착하여, 액자에 걸어두고는 두고두고 기억하는 것. 어린 시절 잡지 <뉴요커>를 사랑했던 웨스 앤더슨의 자전적인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뉴요커> 잡지에 헌정하는 듯한 이 영화는, 저널리즘과 예술에 대한 헌정으로도 다가온다.



<인트로덕션>, <당신얼굴 앞에서>

투명한 영화다. 홍상수 감독의 두 영화에 관하여 내가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감히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맥락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어떤 기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솔직히 여태껏 나는 홍상수 영화를 옹호하면서도 그를 보고 뭔가 제대로 느꼈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인트로덕션>과 <당신얼굴 앞에서>를 보면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장면이 있었고 이상한 위로를 받았다는 느낌도 든다. 영화는 '부조리한 세상과 삶 속에도, 그래도 따스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낙관하는 듯 했다. 아마 그래서 위로를 받은 것 같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홍상수 영화를 보는 나 자신이 ‘성인’ 의 영역에 접어들었음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나리>

윤여정 배우님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작품. 윤여정 배우님의 열연도 열연이지만, 무엇보다 나는 이 영화 갖고 있는 따스한 힘이 좋다. '미나리'란 무엇인가. 향긋하지만 질긴 것. 어떤 환경에서도 억세게 살아남는 존재. 먼 외지에서 딛고 일어섰던 코리안 스피릿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 영화의 OST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한예리 배우가 부른 <Raing Song>, 맑고 청아한 노래가 아름답다. 한예리 님이 유스케에 나와서 라이브로 부르기도 하셨는데 꼭 들어 보시길. 홀로 타지 생활을 하는 나에게 알게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그린 나이트>

중세 서사시를 전복적으로 해석하여, 고풍스런 미쟝셴으로 유려하게 연출했다.개인적으로는 쉽게 다가온 작품은 아니었다. ’이게 뭐지‘스러운 대목도 많았지만, 그 의문점들은 영화에 대한 회의라기보단 문학적 상상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또 개인적으로 언택트로 진행되었던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과의 GV도 기억에 깊이 남는다. 다음 영화는 꼭 한국에 오신다 했으니 기대를...



<아네트>

레오스 카락스를 좋아한다. 그가 만든 여러 작품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모든 사람들이 쉬이 공감할 정도로 '대중적'이라고 얘기하긴 어렵다. 우리가 흔히 뮤지컬 영화에 대해 기대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무드로 굴러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열등감, 자기혐오와 뒤틀린 욕망, 복수와 참회에 대한 이야기는 가볍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탁월하고 독창적인 연출을 배경으로, 그래서 <이 요소들을 엮어 뭘 얘기하고 싶었을까>에 관한 조금은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다. 레오스 카락스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되었다는 느낌이 있고, (물론 훌륭하지만) 뮤지컬 영화가 아니었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 무엇보다 애덤 드라이버의 연기가 몹시 인상적이었다.



<듄 part1>

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서막. 혹자는 이야기가 너무 질질 끌렸고 원작을 독창적으로 묘사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나는 그 대목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숏과 숏이 난발하는, 휘황찬란함’이 없는 블록버스터. 건조하고 사실적이며 장대한 시선. 그 관점에서 나는 이 영화의 옹호론자이다.



<레 미제라블(2019)>

자유-평등-박애로 하나 된 공화국은 더 이상 없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가 겪고 있는, 서구 유럽이 직면하고 있는 어떤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야기는 이슬람 이민자들이 밀집한 도시 '몽페르메유'의 순찰을 도는 경찰관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영화는 순찰을 따라 차근차근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단계를 밟아가다가, 끝에 이르러 그 모든 것들이 이어지는 '대환장 파티'의 상황을 터뜨려 준다. 영화는 과장이 아니다. 감독 '레쥬 리'는 실제 몽페르메유에서 자란 이민자 출신이고, 해당 영화는 2005년에 있었던 소요사태를 실화로 한다. 오늘날 유럽 사회의 이면을 들춰보는데 꼭 필요한 영화이다.



<쁘띠 마망>

시퀀스 하나가 너무 인상 깊었다. 두 소녀가 보트를 타고 호수로 뛰어가는 그 장면. 그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갖나, 그리고 배경으로 흘러나온 노랫말이 어떠한지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영화를 처음 봤던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 모녀의 생채기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따스하게 감싼다.



<퍼스트 카우>

총성 없는, 제빵왕 서부극. 미국의 개척사를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 돌이켜 보면 이런 “서부개척극의 변주”라 할 만한 것들이 근래 참 많이 나왔다. 느긋하고 따뜻한 영화. 화제작 <파워 오브 도그>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 넓은 범주에서 본다면, <노매드랜드>나 <미나리>까지 포함하여 “웨스턴 개척극의 변주”라 할 만한 할리우드 바깥 영화의 장르로 묶이는 영화들이 아닌가 싶다.


<첫눈이 사라졌다>

폴란드 영화. 매우 은유적인 영화이다. 동구권 유럽의 어떤 현실적인 분위기와 사람들의 생채기를, 판타지적이고 은유적인 묘사를 통하여 연하게 풀어낸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과 어울리는 영화라기보다는, 진눈깨비가 슬슬 내리는 겨울날에 보기 좋은 영화다.


<자마>

긴 러닝타인의, 참으로 독특한 영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미 식민지 치안판사가 아니다. 냉혈한 제국주의자가 아닌 힘빠진 동네북 아저씨 같은 주인공의 일상들을 느릿하게 밟아간다. 이런 역사적인 시선을 뭐라 해야할까.. 걸핏 보면 이렇게 길고 지루한 듯한 영화의 템포를 어떻게 봐야할까. 어찌되었건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시네필이라면 가끔은 이런 영화적 체험에 부딪혀 줘야 한다.



"좋은 영화는 엔딩 크레딧 이후에도 계속된다"

좋은 영화에 대한 나의 판단 기준이다. 어떤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스크린에 뜨는 동시에 나에게서 사라진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계속해서 뇌리에 맴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도 머릿속 영사기는 계속하여 돌아가고, 이 영화에 대한 흩어진 생각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야 된다는 욕망에 휩싸인다. 그런 점에서 ‘좋은 영화’에 대한 나의 체험은 극장 안에서 한 번, 그리고 극장 바깥에서 한 번, 그렇게 최소 두 번의 단계로 이뤄진다. 작년에 개봉한 위의 영화들은 최소 두 차례 체험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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