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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훈 Jan 03. 2022

Roe의 변호사, 사라 웨딩턴

그리고 Roe family 이야기

미국 연방대법원의 가장 유명한 판례, 여성의 임신 중단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Roe v. Wade 사건을 대리했던 변호사 사라 웨딩턴(Sarah Weddington)이 지난 26일 세상을 떠났다.



Roe 사건을 대리했을 때 그의 나이 26세, 텍사스 주립대 로스쿨 졸업 후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연방대법원에서 처음 변론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법정에서 대리한 첫 사건. 변호사로 처음 대리한 사건이 미국에서 가장 역사적인 사건이라니, 그런 변호사의 인생이란 대체.


웨딩턴은 로스쿨 동문 린다 커피(Linda Coffee)와 함께 당시 임신 중단을 희망하던 노마 매코비(Norma McCorvey, 1947-2017)를 설득하여 Jane Roe라는 익명으로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이 사건의 피고 Wade는 댈러스 카운티 지방검사장 Henry Wade를 말한다. 텍사스를 대리하던 변호사 제이 플로이드(Jay Floyd)는 무려 연방대법원 변론을 법조계 역사상 최악의 조크로 기록된 얘기로 시작한다. "오래된 농담입니다만, 남성이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 두 명을 상대로 변론을 하면 여성분들을 이길 수 없게 마련이죠."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Roe 이후로 엄청난 유명세나 커리어를 쌓은 것은 아니지만, 웨딩턴은 텍사스 주 의회, 지미 카터 행정부 등에서 공익과 여성 인권을 위해 일했다.


한참 뒤에 밝힌 일이기는 하지만, 웨딩턴은 로스쿨 3학년 때 임신중절이 불법인 텍사스를 피해 멕시코까지 가서 수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Roe 사건을 기획하고 대리한 데는 이런 개인적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2003년 Roe 판결 30주년 기고에서 '30년 후면 임신 중단에 관한 논쟁 자체가 없어질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밝혔다. 40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압도적 보수 우위를 굳힌 연방대법원이 사실상 Roe를 뒤집은 개정기에 Roe의 대리인이 떠났다. RIP.


한편, 이 사건의 원고 Jane Roe에게는 매우 슬픈 후일담이 있다. 소송이 시작된 것은 1970년 2월이지만 연방대법원에서 1971년 12월, 1972년 10월 두 차례 변론을 거쳐 1973년 1월에야 판결이 선고되었다. 그 사이에 Roe는 출산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아이를 바로 입양보냈다. 나중에 Roe는 복음주의 개신교를 거쳐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낙태 반대 운동을 했고, Roe 사건 원고로 나선 것은 자기 인생 최악의 실수라고 밝혔다. 심지어 Roe 판례를 변경해 달라는 소송을 하기도 했다.


Roe baby 그러니까 Jane Roe가 소송까지 하면서 임신 중단을 시도했으나 출산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는 최근 (물론 본인의 동의 하에) 신원이 밝혀졌다. 가족사를 탐사한 책이 2021년 9월 출간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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