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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dys Jun 28. 2021

엄마의 일기


내가 다니던 조그만 IT 중소기업은 코로나 사태로 경영이 악화되자 대부분의 직원에게 휴직을 권했다. 말이 권유지 달리 선택권이 없던 나는 예정에도 없던 휴직으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한동안 문자 그대로의 ‘집콕' 생활을 이어갔다. 경제적으론 피폐했지만 집콕 나름의 장점은 있었다. 회사를 다닐  매일 같이 야근하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가족이었는데, 휴직을 하고 나니 외출이 없는 날엔 전업주부인 엄마와 24시간 내내 붙어 있는 날들이 이어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엄마의 하루 일과에도 신경이 쓰였다.


엄마는 대게 새벽 네다섯 시쯤 일어나 책을 읽고 여섯 시쯤에 동네 공원에 배드민턴을 치러 갔다.  시간 정도 배드민턴을 치고 집에 돌아와 씻고 아침을 먹었다. 그리곤 커피를 마시고 약간의 집안일을   다시 신문이나 책을 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종종 낮잠을 잤고 티브이나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엄마도 대부분의 약속이 취소된 때였으므로, 특별한 일이 없는  거의 이런 일상이 매일 반복됐다.


 역시 휴직  이렇다  일거리가 없어 엄마의 하루와  다를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엄마에 대한 오지랖이 발동했다. 그것은 엄마가 하루를 조금  생산적으로 보냈으면 하는 오지랖이었다. 당시의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글쓰기 모임을 2 정도 하고 있었는데, 자발적으로 ‘쓰기 행위' 취미로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있었던  같다.


나는 엄마에게도 글쓰기의 중요성 ( 정확히 말하자면 ‘기록' 중요성이지만) 대해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그러지 말고 엄마도 글을 써보는  어떻겠냐고. 게다가 엄마는 자잘한 일들은 대체로  기억하는 편이지만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던 일이나 가족 행사 같은 굵직한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어서 입버릇처럼 “아휴~ 이래서 기록을 해놔야 .”라고 말하곤 했던 터라 나는 이때를 기회 삼아 엄마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하지만  번도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엄마는 자신이 없다고, 근사한 이벤트도 없는  그런 글은 써서 뭐하냐고, 그런 글을 누가 봐주냐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 글일수록  써야 한다고, 엄마의 글인  의미가 있는 거지 근사한 글이 의미가 있는  아니라고, 글도 쓰면 쓸수록 실력이 느는 거라고 거듭 설득하자 엄마는 마음을 열었다.


마침 집에 남는 노트북이 있어 엄마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고 브런치 계정을 만들어줬다. “엄마 여기다가 글을 쓰고 저장하면 작가의 서랍에 저장이 되는 거야. 엄마도 꾸준히 글을 쓰면 작가가 될 수 있어.” 엄마는 그 이후로 일주일에 몇 번이고 일기를 썼다. 그리곤 나에게 어떤 지 봐달라고 물었다. 대게의 글은 오늘은 뭘 했고 뭘 했다 하는 식의 간단한 기록이었다. 엄마에게 일상을 적는 글도 좋지만 좀 더 엄마의 생각을 담은 글을 써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이후로 엄마는 내게 매번 보여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글을 쓰곤 하는데, 작년 이맘때 엄마가 썼던 글을 발견하고는 웃기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왠지 진짜 엄마의 글을 보는  같아서 미소가 지어졌다. 앞으로도 엄마가 글을 오래도록 썼으면 하고 생각했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멋진 나. 그리고 또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도 주문을 외우는 나.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내가 봐도 난 괜찮은 사람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입니다. 나는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 엄마의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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