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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dys Jul 02. 2019

프로불편러는 새벽 배송이 불편하다.

“SSG닷컴, 새벽 배송 서비스 시작”


종종 받아보는 뉴스레터에서 헤드라인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새벽 배송’ 키워드가 들어있는, 어쩌면 평범한 제목이기도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새벽 배송은 물류의 혁신이자 하나의 경쟁력이니까 어찌 보면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주제이기도 했다. 그 빠른 배송 시스템을 통해 누리는 편리함에 나 또한 종종 주문 시 이용하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왜인지 모르게 새벽 배송이라는 키워드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상에서 편리하게 누리는 순간에 가끔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위로공단>을 보고 나서였다. <위로공단>은 노동자들의 고단함을 다룬 영화이자 전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콜센터 직원, 마트 계산원, 승무원, 공장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과 다양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내용 중, 여러 종류의 신선 식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한 명의 노동자가 주문서에 맞춰 일정 시간 내에 대신 장을 봐준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내용에 따르면 대신 장을 봐주는 시간에 따라 인사 고과 등급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했다. 주문자 입장에서는 세상 간편한 온라인 쇼핑의 이면에 있던 적나라한 노동 현장을 보자, 편리한 것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노동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그것들을 외면한 채 편리함을 그저 편하게만 이용할 수 없는 상황들이 늘어갔다.


이를테면 연중무휴로 불을 밝히는 편의점에서 늦은 시간 물건을 살 때, 편의점 직원을 마주할 때, 늦은 밤 온라인으로 주문해도 다음날 새벽에 배송해주는 쿠팡의 로켓 배송을 받아볼 때, 마켓 컬리의 신선식품을 샛별 배송(=새벽 배송)으로 받아볼 때가 그랬다. 새벽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누군가의 새벽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밤 10시까지 근무하고 다음 근무자인 야간 아르바이트생과 근무 교대를 할 때도 내 할 일은 끝났지만 일이 끝났다는 해방감 한편에는 무거운 마음이 켜켜이 쌓여갔다. 야간 아르바이트생은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의 시간을 책임져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누군가는 편의를 누리지만 다른 누군가는 밤을 지새워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의 편리한 소비는 누군가의 새벽 노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조금씩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 재화를 사는 소비자이면서도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겨울, 2016년의 일이다. 당시 해외 인턴을 준비하며 생활비를 악착같이 모으던 시절이었다. 하루 쓰리잡 알바를 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 푼 한 푼이 귀하던 때였으니까. 낮에는 보안 회사에서 사무직 알바로, 밤에는 카페에서 야간 알바를 뛰며 일을 했다. 밤에 일하던 곳의 출근 시간은 자정 열두 시부터 아침 일곱 시까지 딱 7시간이었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에도 사람들은 해장 커피를 마시러, 시험 기간에 공부하러 부지런히 카페를 찾았다. 카페 안에 흡연 부스도 있는 곳이어서 애연가들의 핫플이기도 했다. 새벽 3~5시 손님이 한차례 빠질 즈음, 커피 머신 청소와 매장 청소를 했다. 아르바이트 업무 중 가장 싫어하는 파트는 담뱃재와 침이 뒤범벅된 재떨이를 비우고 흡연실을 청소할 때였는데, 유리벽을 닦고 있으면 누렇게 쩐 니코틴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흡연실을 청소하는 비흡연자. 왜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는가 같은 질문부터 시작해 흡연실을 깨끗하게 이용할 수는 없을까 같은 현실적인 질문도 던져보았지만 가래침과 떨어진 담뱃재는 반복될 뿐이었다. 하기 싫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업무란 아침에 카페를 찾을 고객을 위해 깨끗한 카페 이미지를 한결같이 유지해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3년 후, 지금. 나는 짧고도 길었던 알바 생활을 끝내고 직장인이 되었다. 더 이상 매일 같이 새벽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교대 근무가 아닌 유연근무제의 혜택을 받는 직장인이 된 것이다. 물론 잦은 야근과 4시간에 육박하는 통근 시간으로 집에 도착해 자정 무렵일 때면 3년 전 알바를 하던 내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지만 말이다.


늦은 밤 퇴근 후 집에 가는 길, 집 앞에 시동이 걸린 채 주차되어 있는 쿠팡의 로켓 배송 차를 발견했다. 쿠팡맨은 보이지 않았지만 시동이 걸려 있는 걸로 봐서는 그가 아주 가까운 어딘가에 택배 물건을 배송하러 갔음을 짐작케 했다. 그 날 저녁 주문했던 책 한 권도 이렇게 누군가가 배송해주는 거겠지 싶었다. 출근길에 집 앞에 놓여 있을 한 권의 책과 배송 기사가 떠올랐다.


분명 옛날보다 한층 빨라진 “물류 혁신”인데 그에 감탄하기보다, 늦은 시간 배송을 해준이에게, 내가 주문한 상품들을 직접 장보고, 분류 작업을 해주었을 이에게 왠지 고맙지만 짠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괜한 감상일까? 나 역시 언젠가의 새벽 노동자였기 때문에 새벽 노동의 고됨을 이해하기에, 그저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었다. 요즘 같은 ‘새벽 노동 착취’에 비하면 내가 했던 노동의 강도는 가벼운 수준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누군가는 밤을 지새워 노동을 해야 하는 시대다.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고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예컨대 세계 1위 이커머스인 아마존의 프라임 멤버는 연간 $119의 멤버십 비용을 내면 주문 후 1~2일 만에 주문한 상품을 받아볼 수 있는 프라임 배송 서비스로 고객을 모았다. 프라임 상품군이 상당수 포진해 있어 프라임 멤버 가입자가 1억 명이 넘었다는 뉴스 기사도 나왔고. 한국에서 신선 식품 배송 업체 마켓컬리는 “최상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 여러분의 편의를 위한 맞춤 배송 서비스”를 내걸며 샛별 배송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샛별 배송은 밤 11시까지 주문건을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배송해주는 제도로 이 제도는 마켓컬리는 단숨에 업계 1위로 만들어 놓았다. 한국의 아마존을 표방하는 쿠팡 역시 물류 혁신을 외치며 2014년 로켓 배송을 내놨다.


업계 1위 기업들의 빠른 배송, 새벽 배송 모델이 차례로 성공을 거두며 다른 후발주자 업체들도 너도 나도 새벽 배송 모델을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물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거겠지. 새벽 배송. 누군가의 새벽을 취해야 나의 편리가 충족된다면 과연 나는 불편과 편리, 그 사이에서 어떤 갈피를 잡아야 할까. 당분간은 되도록 급한 일이 아니라면 새벽 배송을 이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비록 시대에 뒤 처지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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