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ndys Aug 25. 2019

잊기 좋은 이름



1997년이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였죠. 어쩐 일인지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정문 앞에 서있는 낯익은 얼굴이 보이더라고요. 당신이었어요. 수많은 초등학생 중 아는 얼굴을 찾는 모습. 당신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오고, 오랜만에 보는 당신이었지만 저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답니다. 새로 이사 간 곳에서 당신을 만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서 더 반가웠어요. 게다가 한낮에 보는 당신이라니. 반가움과 어색함이 동시에 떠올랐어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 반응한 건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 튀어나온 “아빠~!”라는 단어였어요. 8살 남짓한 인생에서 늘 바쁜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시간이었는데도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을 아빠라고 불러본 건 잘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아빠라는 단어만큼은 꼭 잊지 않고 있었죠.


당신과 저, 그리고 언니는 셋이 떡볶이를 먹으러 갔어요. 언니랑 저는 떡볶이를 좋아하니까 당신이 사주겠다고 했어요. 아마도 근처 언니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식집이었겠죠. 떡볶이도 시키고, 튀김도 시키고, 순대도 시키고. 평소 용돈으론 어림도 없던 푸짐한 양을 보자 단번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당신은 떡을 오물거리는 우리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었어요. 아니, 정확하게는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봤어요. 그 질문을 받자 언니는 떡을 우물거리다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어요. 입을 다문 언니를 대신해서 저는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드렸지요. 당신이 어떤 나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거든요. 어른들은 늘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니까, 그냥 궁금한가 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언니를 대신해서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서 일하는지 조곤조곤 알려드렸어요. 아마 엄마가 화를 내거나 싫어할 줄 알았다면 저는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는 몰랐어요. 저는 너무 어렸으니까요. 그리고 가끔은 당신이 그날처럼 언젠가 또 언니와 나를, 엄마를 보러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떡볶이 외식을 마치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어요. 당신은 모르는 우리 집. 우리 세 모녀만 이사 온 집으로요. 왠지 그 집을 당신에게 소개한다는 게 창피했어요. 정말 작은 집이었거든요. 당신과 함께 우리 네 가족이 함께 살던 그 빌라보다도 훨씬 작은 단칸방 집이었어요. 길가에 불쑥 튀어나온 현관문은 제가 보기에도 허름해 보였어요. 당신은 집 앞만 쓱 보고는 이제 바쁘다며 가봐야 한다고 했지요. 그 때 당신은 몰랐을 테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창피할 만큼 작은 방, 작은 집이었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 아빠니까, 한 번쯤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 궁금해하기를 그 때의 제가 간절히 바랐다는 것을. 집안을 살펴볼 5분의 시간도 없다는 당신이, 바로 가봐야 한다는 당신이 조금은 얄미웠어요. 그리고 마음이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답니다.


당신은 평소답지 않게 지갑에서 초록색 지폐 몇 장을 꺼내더라고요. 그리고 용돈이라면서 언니에게 건네줬어요. 아마도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그때의 그 용돈이 우리가 당신으로부터 받은 유일한 용돈이 되겠죠. 그렇게 손에 쥐어준 몇만 원을 남긴 채 당신이 떠났습니다. 당신이 가고 언니와 저는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말이 한동안 없었어요. 적어도 그날 저녁 엄마가 퇴근하기 전까지는요.


당신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잔업을 자주 하는 일을 하셨어요.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밤 9시쯤이었죠. 당신이 왔다간 날에도 엄마는 잔업을 하는 날이었나 봐요. 언니와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더라고요. 엄마의 모습은 꽤 화가 나보였어요. 눈치를 슬슬 보고 있으니 엄마가 “누가 말했어? 누가 엄마 일하는 데를 말했느냔 말이야?”라고 고함을 질렀어요. 불호령 같은 엄마 목소리에 슬그머니 손을 드는 저에게 엄마는 꽥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손바닥을 펴 보이며 빗자루로 맞기도 했고요. 울보였던 저는 금세 눈물보가 터졌답니다. 그날 당신과 엄마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엄마에게 다신 안 그러겠다고 싹싹 빌고 나서야 그날 하루를 간신히 끝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날 이후 깨달았어요. 당신을 그리워해서도, 궁금해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날 엄마에게 혼난 일들이 당신 때문이라는 원망도 들었죠. 그럼에도 저는 이따금씩 당신의 안부가 문득 궁금하곤 했어요. 하지만 저는 언니에게도 엄마에게도 물어보지 않았어요. 아니, 물어볼 수 없었어요. 그리고 당신도 저와 언니를, 엄마를 다시 찾아오지 않더라고요. 우리 세 가족에게 당신은, 당신에게 우리는 거의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나 봐요.



이후 시간이 지나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학교에서는 가정조사라는 명목으로 부모님의 성함과 동거여부, 하시는 일 등을 적어서 내야 하더군요. 그때마다 저는 늘 당신의 이름을 적을까 말까 고민하곤 했었답니다. 이상한 일이죠. 당신의 실루엣과 목소리는 희미해져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데 이름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났으니까요.


그리고 엄마는 언니와 제가 말썽을 피우면 기억도 나지 않는 당신을 이용해 종종 상처를 주곤 했답니다. “네 아빠랑 똑같다.”고요. 사실 저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당신과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당신과 함께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당신이 어떤 면과 닮았다는 건지 잘 모르지만, 엄마가 말한 의도는 정확하게 알 수 있었어요. 그 말은 언니와 제 마음에 생채기를 낼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말이었다는 것을.


다행히도 저는 머리가 커가면서부터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지도, 적을지 말지 고민하지도 않게 되었어요. 부모님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되는 서류가 점차 생기며 고민이 줄어들었죠. 엄마도 더 이상 당신을 닮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상처에 대한 기억이 줄어들며 저는 자연스럽게 당신의 이름도 떠올리지조차 않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저는 점차 당신에 대한 기억을 바깥으로 밀어내며 잊어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애란 작가의 <잊기 좋은 이름>의 생일 축하 에피소드를 읽고 나니 당신이 생각나더군요.


 

  그러니 만일 제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린 제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그리고 네 앞에 있는 사람을 잘 봐 두라고. 조금 더 오래 보고, 조금 더 자세히 봐 두라고. 그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이고, 곧 사라질 모습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133쪽)



저는 아직도 철이 덜든 걸까요. 그렇게 떠난 당신인데도 잘 지내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혹은 어딘가에서 살아는 있을지 궁금했어요. 한동안 잊고 지낸 당신의 이름이 선명하게 기억나더라고요.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이름인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에요.


30년 전에는 가족으로 만났던 우리. 이제 생사도 알 수 없는 남이 되었네요. 아마 우리는 22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언젠가 같은 공간을 같은 시간에 지나쳐도 서로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죠. 혹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당신이 제가 세상에서 싫어하는 인간의 부류가 되어서 당신을 끔찍하게 싫어할 수도 있을 테고요.


저는 당신이 종종 떠오르고 궁금하지만 현재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1997년 여덟 살, 지난날의 기억으로 묻어두려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을 끝으로 저는 당신을 잊어보려 해요. 이제 당신의 이름조차 잊고 싶습니다. 살다 보면 이따금씩 떠오를 때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당신의 이름과 존재, 기억나지 않는 목소리와 얼굴 모두 이제는 제 기억에서 놓아주려 합니다. 잊기 좋은 이름으로 두려고 해요. 저와 언니, 그리고 엄마 우리 가족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도 부디 어딘가에서는 오래오래 안녕하시길 바랄게요.




이전 09화 흰머리 한 가닥에 500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