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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마사띠 Sep 22. 2022

#3.정창래 선생님

아이들은 안다.

아이들은 안다. 모를 것 같지만 다 안다. 어쩌면 본능과 직관의 영역에서는 그 능력치에 관해 어른보다 훨씬 앞선다. 착한 사람이 누구인지 착한 척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인지 무관심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안다. 그래서 어린이는 무섭다. 속일 수 없다. 멋진데 스스로 멋지다는 걸 모를 때, 똑똑한데 본인이 똑똑한 걸 모를 때 인간의 매력은 배가된다. 모름의 미학이랄까? 어린이는 모르는게 많다. 아는데, 안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어린이는 강력하다. 열 한 살의 여자아이는 그 여자 선생님의 마음이 선하고 그래서 세상의 기준에는 취약한 사람임을 알았다. 어린 우리들에게 요구가 없었던 다정한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교감선생님께 불려가 혼나곤 했으니까. 그녀 주위의 공기는 봄날의 강물처럼 부드러웠다. 어린이가 아무 걱정없이 다가갈 수 있는 존재였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4학년 3반. 정창래 선생님은 나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그다지 예쁘지도 옆 반 선생님처럼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선생님이 좋았다. 조용조용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어린 마음에 가닿기에 적당했다. 선생님은 가끔 나의 눈썹을 어루만지며 이 갈매기 눈썹 나에게다오 하시거나, 내 짱구 이마와 낮은 콧대 사이의 굴곡을 귀여워하기도 하셨다. 선생님은 점심 시간에 반 꼬맹이들과 본인 책상에서 도시락 반찬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내 작은 팔을 뻗어 선생님의 스테인리스 식판에 올라있는 소세지를 집을 때 그 기분이란! 어느 날은 부반장이었던 내가 학급회의 중 크리스마스 트리를 크리스마스 추리라고 칠판에 적었는데, 추리가 아니고 트리라며 친구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고 무안함에 엉엉 울어버렸다. 선생님은 외래어라서 둘 다 맞아요라고 하시며 크리스마스 추리의 설 자리를 애써 마련해 주시기도 했다. 선생님은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텅 빈 교실에 반 아이들을 돌아가며 한 명씩 남겼다. 그 날은 선생님이 나를 남으라고 하셨다. 내가 뽑혔다. 내 차례다. 마냥 상기되었던 작고 소중한 마음. 맨 뒷줄 나무 책상 위에 나를 앉히신 선생님은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라 저쪽으로 돌려라 하시다가 이제 됐다며 그대로 멈춰 있으라고 했다. 풉하고 웃으셨던것 같기도 몇가지의 사소한 질문이 오갔던 것 같기도 하다.  4B연필로 나의 얼굴을 그려 내려가던 선생님의 눈길 그리고 움직이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을 한치도 어기지 않으려 애쓰는 열 한 살 여자아이. 그 한낮의 정적을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기억한다. 그 교실, 그 책상, 나를 쓰다듬던 선생님의 눈길과 운동장이 보이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따사로운 햇살. 선생님은 본인이 막 그려낸 따끈따끈한 나의 얼굴을 보여주셨다. 씩 한번 수줍게 웃고서는 책가방을 매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가슴이 부푼다는 기분은 그런 것일까? 오랜 기억은 거기서 그렇게 끊겼다. 곧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고 한참 뒤에 들려온 소문으로는 뒤늦은 나이에 프랑스로 미술 유학을 가셨다고 했다. 어릴 때 누군가가 뒷통수 쓰다듬어준 힘으로 평생을 산다는 말을 듣고 그 날의 선생님과 내가 떠올랐다. 선생님은 마흔 하나가 된 내 기억 속에 등장하실 때마다 어김없이 내 뒷머리를 쓰다듬고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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