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
먼저, 이 글에서 다루는 사회적 약자는 '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 임을 미리 말한다.
약자라고는 썼지만 [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 ]의 의미도 담고 있다.
또한, 이 주제는 거시적으로는 인권이랑도 연결되는데
[인권 = 사람이 개인 또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 (한국민족 대백과 정의)]
어느 사회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사회적 약자들이 인권을 제대로 못 누리는 경우가 있기에 거창하게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내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썼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포함 + 스페인에서 경험은 바르셀로나 기준임을 참고 바랍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두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국가에서 만드는 시스템, 제도적 측면
둘째는 사람들이 이들을 보는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 느낀 건
스페인은 내가 어느 상황에 있던 있던 거리를 나서는 게 자유롭다. 모두가 편하게 사회적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한국은 아직도 사회적 시설에 불편함이 많으나 개선되고 있다.
내가 사회적 시설에 관해 주의 깊게 살펴본 이유는 엄마가 돼고 나서부터였다. 건강한 몸으로 혼자서 어디든지 다닐 때와는 달리 엄마가 되고 둘 다 운전을 못하니 유모차와 함께 뚜벅이 생활을 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난 첫해에는 기차를, 그 이후부터는 지하철과 버스를 주로 타며 바퀴가 달린 상태에서 이동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높은 계단을 마주할 때 그 막막함이란. 그리고 장애인들이나 전동 휠체어가 필요한 노인들의 막막함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나마 턱이 있을 때 휠체어를 앞바퀴를 살짝 올려 넘어가면 되는데 무거운 휠체어를 혼자 타시는 분들은 어떻게 하나..
그럴 때마다 도움이 되었던 건 지하철역, 기차역의 승강기. 어디든 엘리베이터가 있어 역에서 기차를 타는 플랫폼까지 이동이 수월했다. 승강기가 없는 오래된 역 같은 경우는 밖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공사하는 것도 보았다. 저상버스의 낮은 입구. 뒷좌석은 전동 휠체어가 탈수 있게 리프트가 작동된다. (시외버스는 잘 모르겠다.) 상점 같은 경우 턱이 낮거나 올라갈 수 있는 진입 경사로가 있었다.
공항에는 아기가 어릴 때 유모차를 타고 수속을 밟을 땐 입국 심사에서 패스트 패스를 통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빨리 지나갈 수 있었다.
사진에 동그라미 친 곳이 휠체어, 유모차를 둘 수 있는 공간으로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휠체어의 나 유모차가 들어오면 비켜주어야 한다.
하지만, 오래된 집인 경우 집안은 리모델링을 해서 새것 같아도 건물 자체는 낡았기 때문에 계단이 아주 높거나 했을 때 어르신들이 힘들어하는 경우를 보았자.
다리가 아픈 지인 중 하나는 결국 집을 팔고 1층 집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나중에 공사를 통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 관리비 추가가 되고 공사하는 동안 소음과 불편함이 발생할 것이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아기는 외국인일지라도 거주 비자가 없더라도 출생증명서, 가족책등으로 미성년자 기간 동안 공공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카드를 만들 수 있어, 아이들의 기본 생존권을 보장받는다. (이것에 대해서는 불법 이민, 난민과도 연결될 복잡한 문제라 언급은 안 하겠다.)
한국은 오랜만에 오니 많은 것이 개선되었고 개선되려고 진행 중에 있어서 놀랐다.
일단 지하철역에 승강기+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예전에 휠체어 승강기는 정말 무장애인도 타기 겁나는 시설이었다. 잘못하다간 그대로 고꾸라져 계단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다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지라, 역무원을 기다리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실제로 몇몇 장애인분들의 죽음으로 인해 이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변화 하기보다는 그전에 변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2014년에 광화문에서 리프트 대신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는 장애인 시위 기사를 사진도 서치하다 보았는데 엘레베이터는 결국 2019년에서야 설치가 되었다.
서울시를 아름답게 한다고 쏟은 수많은 세금은 지하철 역 엘리베이터 설치에 쏟기에는 5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나보다. 승강기는 장애인뿐 아니라 다리가 아파 계단을 많이 걷기 힘든 노인, 어린이, 임산부, 유모차에도 필요한 부분이다. (에스컬레이터도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저상버스도 뒷문엔 높은 계단으로 내리기 위험하였지만, 계단 없이 휠체어 리프트를 탈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되고 있다.
휠체어 리프트가 있는 시외버스 또한 많지는 있지만 운영하고 있다
장애 입주민이 설계부터 참여하여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용하기 수월한 무장애 설계를 적용한 아파트도 있었다.
관련기사는 밑에 클릭
즉, 그럼에도 사회적 시설이나 제도적인 면에서 우리나라도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은 일단 당연히 배려를 받는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라는게 내가 스페인에서 느낀 점이다.
처음 바르셀로나에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거리의 장애인이었다. 지체장애든 신체장애든 거리에서 많이 보았는데 마주치는 순간 내 마음이 조금 불편해하고 있었다. 그땐 불편한지도 모르고 있다가 지나고 보니 내가 무의식적으로 불편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고 나 자신이 조금 싫어지며 반성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나 어릴 땐 장애인들을 많이 마주쳤는데 어느 순간 점점 거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장애인이 없어서 안 보인 게 아니다. 거리에 없을 뿐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스페인에서 오랜만에 장애인들을 마주쳤을 때 우리나라 장애인에 대한 분위기까지 깨닫게 되었다.
몇 년 뒤, 동네에 있는 공립 학교에 지체 장애 아이가 부모와 함께 휠체어로 통학하는 것도 자주 마주치곤 했었는데, 당연히 그 아이를 위한 시설이나 선생님이 분명 배치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스페인에선 시각장애견이 있다고 입장 거부가 될 경우는 상상도 못해보았다. 일단 멍멍이가 태어나는 아이보다 많다고 할 정도로 애견인들이라 마켓 앞에 멍멍이 줄을 걸 수 있는 고리가 있고 지하철에서도 대형견을 탄 경우도 많이 보았다. 무엇보다, 멍멍이는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 도와주기 때문에 함께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다.
스페인은 노인 비율이 높은 나라이다.
최장 수명도 전 세계 10권 안에 들고 젊은 층의 결혼, 출산율이 줄다 보니 노인들이 꽤 많다. 이분들은 마트에 돌돌이 카트 끌고 다니시고 여행도, 운동도 씩씩하게 다닌다.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들도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전동 휠체어도 타시고 이동하시는 분들도 많이 보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는!!
버스에서 전동 휠체어가 탈 때 잠시 멈춰 기사가 경사 리프트를 내리는데 이때 걸리는 잠시의 시간에 대해 다들 당연하데 기다린다.
혼자서 못 오르시면, 기사는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
뒤로 버스를 탈 수도 있는데 휠체어가 있는 경우는 당연히 휠체어가 먼저 타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지 않아도 유모차와 노인들은 먼저 타는 게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이다. (간혹 먼저 가는 사람을 보기도 했지만,)
유럽은 키즈 프렌들리 하다.
아이들을 기본적으로 귀여워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를 낳기 전보다 나은 후에 사회적 관계가 더 넓어졌는데, 거리든 가게든 아기가 귀엽다고 해서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 키우기는 사회적 배려, 자유로움, 창의성, 비용 부분에서 유럽이 더 좋고 아카데믹한 교육적인 면에선 한국 레벨이 높아 보였다.
내가 가는 단골 카페에도 조그만 테이블이 하나 있었고 그 뒤로는 칠판이 있어서 부모들이 데리고 온 아기들이 거기서 놀곤 했다. 테이블 위에 장난감들도 여러 개 있어서 장난감만 내 테이블로 가지고 와 아기랑 놀곤 했다.
내가 가는 약국이나 24시간 무인 세탁방 역시 어린이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색연필과 종이가 구비된 곳도 있어 애들은 거기서 색칠하고 놀 수 있다. 어느 맥도날드엔 애들이 놀 수 있는 실내 키즈 놀이터가 있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들을구석구석에서 발견하기 쉬웠다.
한 번은 버스 안에서 유모차는 비치해 두고 아이가 나오고 싶다고 해서 같이 의자에 앉아 가고 있었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버스에 타더니 자리가 없는지 나한테 와서 왜 자리를 두 개나 차지하느냐, 유모차에 아이를 넣어라 같은 무논리로 따졌는데 아마도 내가 만만해서 그런 것이리라. (참고로 거기는 노약자석도 아니었다.) 난 사실, 스페인어로 뭐라고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즉시 주위에서 나를 도와주었다. 저기도 자리 있는데 왜 여기 와서 그러는냐. 앞에는 유모차 두는 것은 당연하고 여기 앉아도 된다 하고 대신 싸워주셨다. 감사했.
아이가 10개월 때 둘이서 독일에 루프트한자를 타고 갈 일이 있었는데 (2시간 거리) 위에 언급한 패스트 패스는 물론, 기내용 짐도 아이랑 들어가니 힘들겠다고 붙여주셨다. 갈 때는 아침 비행기라 아이가 비행기가 뜨자 금방 잠들었기 때문에 괜찮았는데 올 때는 낮 비행기라 칭얼거렸다. 좌석이 3개씩 붙어 있었는데 가운데는 비어있고 한쪽에 스페인 중년 여성분이 앉아 계셨는데 이 상황을 이해해 주셨다. 거기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아기를 안고 들어갈 수 없을 때 승무원분들께 부탁드리고 빨리 일보고 나오니 승무원분들이 아가랑 어화둥둥 하며 아이랑 놀고 계셨다. 나도 조용히 시키려고 먹여도 보고 왔다 갔다도 해보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칭얼거림이 중간중간 있었는데 여러모로 배려 받았다.
이런 경험들로 통해 스페인에 있을 때, 아이와 함께 있음으로 나는 오히려 더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차별이 정말 없는 건 아니다.)
임산부였을 때
좌석 양보 받기 ( 기차에선 자리를 아무도 양보 안 해준 적이 있었는데 내가 배가 너무 당겨 양보해 달라고 하니 바로 일어났다) 막달에 길에서 갑자기 너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땐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서 양해를 구하면, 바로 쓰게 해주셨다.
의료적 도움은 나중에 의료에 관해 이야기할 날이 오면 하겠다.
한국이 약자에 대한 전체적인 사회 인식은 유럽과는 좀 다르다. 일단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말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에 대한 소식을 많이 본다. 그리고 일상 속의 배려도 목격하곤 한다.
하지만, 아직도 대상과 상황에 따라 제멋대로 동정하거나 혹은 귀찮음과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평소엔 무심하지만, 누군가 때문에 내가 손해가 생기면 그 대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대상일지라도 그들 때문에 내가 피해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다.
특수학교가 생기면 집값이 떨어질까 지역 반대로 부모가 무릎을 꿇는 기사
혐오감이 붙는 단어를 만들어 비난 대상으로 만들기 > 맘충, 틀딱등등
시각장애견 때문에 마트에서 쫓겨난 사건.
비행기가 아이가 탔다고 소리치거나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사람들
장애인들이 시위를 하는 건 상관없지만 내 출근길을 막는 것에 대해 욕하는 사람들
버스에 휠체어 리프트가 있으면서도 한 시간 동안 6번이나 승차거부 당한 사례
어르신에 폭행 욕설한 중학생.
흡연자에게 담배 꺼달라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폭행당한 아기 엄마.
아이와 엄마들을 문제 있는 대상으로 거부하는 사례 등등등 너무 많다.
차가운 냉소와 혐오가 가득한 각박한 세상이다.
비행기에 아기 탔다고 한숨 쉰 커플 사건보다
이 사건에 달린 댓글들이 나를 좀 더 놀라게 했다.
그건, 티켓값에 서비스 비용도 포함되어 있으니 아기 소음이 싫을 수도 있다 라는 내용이었고 거기에 좋아 요도 여러 개가 눌려져 있었다. 윙? 당신도 어릴 때 비행기까진 아니더라도 버스나 기차 혹은 지하철을 탔을 텐데? 분명 아무 소리도 안 내고 가만히 있었을까.
이 사건에 대한 다른 게시판 베스트 댓글은
'요즘 이상한 게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는 아기들한테는 한없이 빡빡하게 굴어가고 반대로 어른들은 인간성도 버릴 정도로 아무것도 안 지키려 함' 이었고 여기에 공감한다.
또 다른 베스트 댓글은 '이야 세상이 이렇게 각박해졌다니... 이게 논란이야????? 어이가 없네 ㅎㅎㅎㅎ' 였고 이런 댓글들이 많은 공감을 받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든 또 다른 의문점은 아기가 있다고 폭언한 남성이나 한숨 쉰 커플들은 과연 백인 아기와 부모가 타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였다. 왜 이런 의문점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불편해도 아마 저렇게 소리치며 티는 안 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례들을 마주할 때 드는 생각은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젊고 건강한 성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 모두가 어릴 때 이미 배려 받아 성장했고, 나이를 먹으면 또 배려를 받아야 할 것이다. 어릴때 소음과 우다다하는 아이의 행동도 '아이'라는 이유로 이해받은 경험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지금 어른이라 기억도 안 나는 옛날이겠지만, 분명 사회적 따뜻한 보살핌이 있었다. 확실한 건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내 몸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먼저 대중교통을 타고 자리를 양보 받는 작은 배려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장애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나의 선택이 아니다.
반드시 사회적 돌봄을 받고 그들을 햇빛이 따스한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들, 아기들을 싫어하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며 시끄럽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가 웃지 않은 세상의 미래를 어둡다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알고 있었기에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국에 오고 나서 아이와 함께 걷는데도 차가 닿을 듯 말 듯 지나갈 때, 스페인이었으면 한마디 했겠지만, 여기선 잘못하면 맞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있다.
아! 간혹 나는 약자니깐 말도 안되는 배려와 서비스를 요구해도 괜찮고, 내가 원하는대로 대접받아야 된다는 마인드는 지양한다. 아기는 당연히 시끄러울 수 있으니 그냥 시끄러워도 내버려둔거나, 이웃들에게 아기가 있으니 윗집에서 샤워도 하지 말라 같은 민페와는 포인트가 다르다.
또,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회적으로 불쌍하다, 약하다는 시선이 아닌다.
그냥 함께 녹아들고 인생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려와 이해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시스템이 발전하는 만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성의 레벨도 같이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의 권모술수 권민우가 하는 말은 무언가 소름 돋는다.
그리고 어느 공감을 많이 받은 트윗
나는 평소에 봄날의 햇살 최수연인지 권모술수 권민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잘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래서 요즘 딩동댕 유치원 보면 다문화 아이와 휠체어를 탄 장애 아이도 등장한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인식시키는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았다. 펀스토랑에 오윤아의 자폐 아들인 민이와 등장해 응원을 받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엄청난 히트를 쳤다.
이제 생활 속에서 사회 속에서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 돼보자.
나 역시 다른 최수연에게 배려 받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