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쯤 전에 호주 케언즈에 있는 그레이트 베리어리프에 갔었어요. 그레이트 베리어리프는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인데요 정말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당시에 저는 좋은 장소, 맛있는 음식을 찾아 여행하는 것에 말 그대로 완전히 꽂혀있었어요. 그래서 제 버킷리스트에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TOP 10, 죽기 전에 먹어봐야 할 음식 TOP 10 같은 것들이 늘 상위권에 있었고요, 틈만 나면 그랜드 캐년, 그레이트 베리어리프 같은 곳의 정보를 찾아보면서 여행하는 꿈을 꾸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계 최대 산호초 군락지이자 세계 최고의 다이빙 스폿 중 한 곳인 그곳에 몸통만 한 배낭을 둘러메고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들뜨고 설레었겠어요. 그런데 그곳은 저의 이런 기대를 훌쩍 뛰어넘고도 한참이 남을 만큼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산호초와 그곳을 요리조리 헤엄치던 물고기들, 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엄청 큰 대왕조개들이 산호 사이에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었고요, 알록달록 말미잘들은 물살에 하늘하늘 흔들렸어요. 그러다 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절벽 같은 지형이었는데, 산소통을 메고 절벽 벽면을 따라 살살 내려가며 돌 사이사이의 산호와 물고기들을 보고 있었거든요. 가이드가 저쪽을 보라고 손짓하길래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저는 진짜 그때 잠시 잠깐 황홀경을 경험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신화 속의 용궁이 그렇게 그려졌을까요? 저 위 수면에서부터 떨어지고 있는 빛살과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는 수천 마리의 물고기 떼들. 적당히 시원한 채로 넘실거리고 있던 바다의 감촉, 그리고 고요함.
지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묵직한 고요함이 온몸을 둘러싸고 있는 물의 감촉을 더 생생히 느끼게 만들어 주었고,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광경과 저 위 수면으로부터 떨어지고 있는 빛 그 모든 게 어우러져 만들어냈던 그 찰나에 저는 아마 인어공주가 있다면 분명히 이런 바다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어요. 황홀했던 순간에 취해 벅찬 가슴을 안고 갑판 위로 올라왔을 때 말이에요.
저는 제가 느낀 그 아름다움을 어딘가에 말해야 했어요. 나누고 싶었어요. 당신도 그 순간을 느꼈느냐고 묻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겐 그럴 사람이 없었죠. 주변을 쭉 둘러보았습니다. 아무도 혼자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모두가 흥분되 보이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저만 빼고요.
벅차올랐던 가슴이, 몽실몽실 부풀었던 가슴이 푹 꺼졌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꺼질 수가 없더라고요. 부풀어 올랐던 만큼 어찌나 그 대비가 선명하던지 전 아마 그 느낌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제겐 아주 값진 경험이었어요. 너무 강렬한 아름다움은 도리어 제게 아주 큰 외로움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며칠 후에, 다음 여행지로 넘어가는 공항에서 저는 평소 같았으면 절대 구매하지 않았을 한 엽서를 샀습니다. 발가벗은 꼬마아이 둘이서 손을 꼭 잡고 해변가를 걸어가는 뒷모습을 찍은 엽서였어요. 그 작은 발이 남긴 발자국이 좋더라고요. 아이 둘이 꼭 맞잡은 손이 제게 뭉클함을 불러일으켰어요. 언젠가 저도 이렇게 손을 꼭 잡고 함께 이 아름다운 해변을 걸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이때부터 제 여행의 모습이 조금 달라지게 된 것 같아요.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을지에만 관심을 갖던 제가 이제는 누구와 함께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그것이 저의 여행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때론 황량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하더라고요.
다음 여행지에선 어떤 이야기들이 쓰일지 궁금하네요. 이번엔 깊고 진솔한 대화를 많이 나눠볼 수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