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2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언어는 바뀌었어도, 메시지는 싱싱했다

뮤지컬 마리 퀴리 런던 공연 리뷰

by 정재은 Mar 21.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힘을 가진 뮤지컬 ‘마리 퀴리’가 영국 런던 채링크로스 극장 무대에 올랐다. 런던에서 선보인 ‘마리 퀴리’는 포스터에 ‘새로운 뮤지컬(A NEW MUSICAL)’로 소개됐다. 최초로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1867~1934)를 주제로 한 이 작품은 폭넓은 연령대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교육적이면서도 독특한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세상을 바꾼 이 여성 과학자에 대한 수많은 전기와 영화가 있었지만, 뮤지컬로는 한국에서 창작된 ‘마리 퀴리’가 처음이다.


265석 규모의 채링 크로스 극장은 무대 폭이 좁고 높이가 낮은 형태였지만, 영국 스태프들은 제한된 공간에서 다채롭게 무대를 꾸몄다. 이동과 회전이 가능한 계단 형태의 대형 세트는 노벨상 시상대, 공장 노동자의 시위 장소 등 여러 역할을 했다. 계단은 2층 구조물과 연결되기도 하고, 실험실로 변모하기도 하며 다양한 장면을 표현했다. 배우들은 직접 세트를 움직이며 협소한 무대를 최대한 활용해 마리 퀴리의 극적인 삶을 압축적으로 재현했다. 창살이 있는 창과 문, 후면 구조물에는 시대를 반영한 영상이 투사되었고, 중요한 단어나 화학 공식들이 무대 벽면에 실시간으로 쓰였다.


뮤지컬 ‘마리 퀴리’ 영국 프로덕션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배우들이 영어로 연기하고 노래했다. 마리 퀴리 역을 맡은 아일사 데이비슨은 냉철한 과학자로서의 인상을 주었고, 이주민 여성 과학자로서 불굴의 노력과 심리적인 변화를 탁월하게 표현하며,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갈등하는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안느 코발스키 역을 맡은 크리시 비마는 울림과 힘이 느껴지는 가창력으로 강인한 안느를 표현했으며, 특히 방사성 물질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넘버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출연진의 뛰어난 연기와 가창력은 많은 찬사를 받았다. 마리 퀴리와 딸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두 배우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눈물을 흘렸다. 집중해서 극을 관람하던 관객들은 이들의 노래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영국 현지화 작업은 한국 창작진과 영국 창작진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천세은 작가와 최종윤 작곡가의 대본과 음악을 영어로 번역해 각색하고, 가사를 번안했다. 언어는 바뀌었지만,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감정은 무대 위 7인조 라이브 밴드의 연주와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현지 반응 중 작품이 다소 감상적이라는 평이 있었는데, 이는 한국적 정서인 한(恨)과 정(情), 끈기, 인내 등의 표현이 문화적 차이로 인해 다르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이뤄지는 급박한 전개와 빠른 진행 속도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이는 장면 간의 완급 조절을 통해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마리 퀴리’가 이번 공연에서 얻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입체감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다듬어 나간다면, 영국에서도 경쟁력 있는 뮤지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마리 퀴리’는 런던에서 두 달간 다양한 관객에게 소개되었다. 웨스트엔드에서 시작해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 작품도 더 큰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록 영국 무대에서 짧은 기간 동안 작은 규모로 공연했지만, 여러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며 국내 뮤지컬 제작자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월간 객석 2024년 9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https://auditorium.kr/2024/09/%eb%b9%84%ed%96%89%ea%b8%b0%ec%97%90-%ec%98%a4%eb%a5%b4%eb%8a%94-%ed%95%9c%ea%b5%ad%ec%9d%98-%ec%b0%bd%ec%9e%91-%eb%ae%a4%ec%a7%80%ec%bb%ac/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 연극의 시간은 로마로 향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