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문박예진이라고 합니다. ‘문’은 어머니 성이고, ‘박’은 아버지 성으로 부모님 성을 같이 붙여서 쓰고 있는 게 맞고요. 영국에서 이렇게 저를 소개하면 여권 비자 이름과 다르다고 저를 쫓아낼까 봐 무서워 여기서는 그냥 이름 끝 글자인 ‘진’으로 불러달라고 말합니다. 공연 예술을 기반으로 기획도 하고 글도 쓰고 이것도 저것도 여기저기서 가지고 와 이리저리 만들어보는 등 일단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제게 주어지는 일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창작하고 제작하는 ‘문 밖’이라는 1인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어요. 사람의 감각과 경험으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우리는 타인을 더 공감하고 환대할 수 있을지를 고민 중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 강점은, 신념과 취향이 확고하고 그걸 제 자신이 잘 안다는 거예요. 도전적이지 전혀 못하다는 점에서 이게 가끔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저는 익숙함과 여러 기억들이 겹쳐져서 오는 풍미를 더 감미롭다고 느끼는 편이거든요. 제 On/Off와 좋고 싫음이 확실하기에 내가 어떤 것들을 내 삶에 가까이 두고 보고 싶은지, 무엇보다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 그 선호도를 굳혀 가기 위해 무엇을 더 습득해야 하고 찾아야 하는지 잘 알아요. 어떻게 보면 제 자신 자체가 맞춤형 알고리즘을 계속 생성하는 AI인 거죠.
저는 2025년 9월 학기 시작 바로 직전 주에 제 삶을 40kg로 줄여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어요. 석사 1년 과정 학생 비자로 머물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졸업 이후 바로 귀국하기보다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싶어서, 이후 졸업 비자와 글로벌 탤런트 비자를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예술학사를 졸업하고 국내외 문화예술기관에서 일을 하던 중, 공연계 종사자에게 요구되는 열정페이와 붕괴된 워라밸, ‘관객들의 시간과 돈을 소비하게 했으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끝없는 피로감을 느꼈어요. 동료들과 없는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 서로의 공연을 보러 다니며 종종 ‘내 살 파서 남 살 채워준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했고, 그 말이 웃기면서도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그 이후 운 좋게 문화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타 대륙의 문화예술계 업무 조직 문화와 삶과 일의 균형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익숙하게 몸담아왔던 한국 공연예술계의 생태에 반쯤 걸쳐 바라보는 감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고요. 조금 더 객관적인 시점에서 제가 이제껏 무엇을 했는지, 그게 현 사회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 작업들이었는지, 그렇다면 앞으로 제가 추구하고 싶은 예술과 창작환경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길고 긴 본인과의 질의응답 끝에 분야를 조금 좁히되 더 넓은 시야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결론을 냈고요. 그게 바로 석사 유학의 시작이었어요.
사실 제가 지금 영국 런던에 와 있는 이유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고 굉장히 현실적이에요. 물론 삶의 거처를 옮기는데 감성보다 이성이 더 작용해야 하는 게 맞지만요. 영국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영어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여기에 다른 언어까지 배울 여유도 뇌 용량도 없다는 아주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런던을 선택한 이유는 제가 오래전부터 관심 가져온 감각 기반의 이머시브,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라이브 아트에 대한 실험과 논의가 영국 내에서는 이곳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공연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의 감각 전체를 작품 내부로 끌어들이는 시도들, 완벽을 이룰 수 없는 어떠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실험들이 한국에 비해 더 너그럽게 읽히는 것 같더라고요.
영국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간의 정확성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여기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We’ll see.”인데요. 그때마다 제 목젖 바로 앞까지 “We are not seeing each other before we see which date, what time, and where we are seeing, right now, right here.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만나고 있지만, 날짜와 시간, 장소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서로를 진짜로 보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하고 싶지만, 어쩔 때는 이게 암묵적인 거절의 의미일 때도 있어서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라도 답변을 줄 때까지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는 편이에요.
저는 소셜 배터리와 체력이 남들보다 물리적으로 적은 사람이라 누구를 만나거나 일정을 조율해야 할 때 어느 정도의 신체적, 심리적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물론 이 변화가 너무 자기 자신의 생산성과 효용성에 빡빡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를 주기도 하지만, 이 점이 저를 또 매우 게으르게 만드는 지점도 있어서… 아직 적응 중입니다.
영국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제 발로 영국에 찾아와 줄 때입니다. ‘Andrew Bird’라고, 노래도 부르고 기타도 치고 바이올린도 켜고 휘파람도 무지막지하게 부는… 그야말로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악기인 뮤지션이 있는데요. 작년 브뤼셀에 살았을 때 오직 이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런던 재즈 페스티벌에 왔을 정도로 팬이거든요. 올해 제가 좋아하는 앨범 발매 20년을 맞아 미국 투어만 한다고 해서 매우 절망했지만, 돌아오는 해 2월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런던에 온다고 해서 쾌를 질렀어요. 지구상 내 존재 여부도 모르는, 이 야속한, 하지만 사랑해 마지않는, 이 중년 서양인 뮤지션에게 퍼분 제 다년간의 애정의 보답을 이렇게 받는가 싶기도 했고요. 제가 평생을 걸쳐 홀로 키워왔던 짝사랑의 대상들-뮤지션, 극단, 작가, 연출가, 배우들-을 너무 허무하게 쉽게 만날 때 제가 세계 시간 기준선에 서 있다는 게 실감이 나요.
런던 오기 전까지 저는 제가 굉장히 철저하게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런던 3개월 차에 발굴해 낸 건 제가 제 삶을 살아내는 데에 미숙하다는 사실이에요. Sparkling water인 줄 알고 2L*12개 생수 묶음을 힘겹게 집까지 이고 왔는데 알고 보니 Spring water였다 거나, 서머타임 끝난 줄도 모르고 약속에 한 시간이나 일찍 나가 벌벌 떠는 등... 이 미숙함에 나의 체력과 화폐적 가치뿐만 아니라 그게 감정적인 비용까지 수반할 때 가장 제 자신에게 분해요. 그땐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내 삶의 뿌리를 지탱해 준 다른 뿌리들이 생각보다 깊게 나를 잡아주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에요.
영국에 오려고 하시는 분이 있다면, 오기 전 꼭 시간을 들여서 나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인지, 위기가 왔을 때 어떤 걸 하고 싶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등 자기 자신에게 집요하게 물어보고 오세요. 이미 알고 있다는 감각과 익숙함에 머나먼 것도 모자라 아예 타지의 땅, 습기와 공기에 자기 자신을 두었을 때도 흔들리지 않게요.
처음에는 여기에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에 큰 해방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매번 나를 설명하고 내 존재에 대해서 그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에 싫증감을 느껴요. 그래서인지 가끔 이 도시의 모든 낯섦이 대체 네가 지금 여기 왜 서 있는지 묻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지하철 플랫폼 너머 공백의 흘끗거림이 내 목 뒤를 타고 꺼림칙한 의미를 갖고 찾아오는 느낌, 덜 잠근 샤워기처럼 오는 비가 꼭 나에게 침을 뱉는 것만 같은 기분이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짐을 꾸릴 때, 나를 나 자신으로 만들고 느끼게 해주는 것들도 잘 챙기셨으면 좋겠어요. 커버를 보기만 해도 첫 트랙부터 히든 트랙까지 가사를 다 외울 수 있는 앨범, 계절감이 굉장히 모호하지만 입었을 때의 감촉이 좋은 옷, 스트레스받을 때 만지작거릴 수 있는 인형 등을 하나라도 챙겨 오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여기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웬만한 음식, 소스, 생활 용품, 옷 등은 여기서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위를 많이 타시는 분이라면 전기장판만은 꼭 챙겨 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제 삶을 여러 번 살렸어요.)
제 인생의 방향성에 가장 큰 울림을 남겼던 두 공연이 생각나는데요. 우연히 각각 한국 프로덕션과 영국 프로덕션이네요!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3시에서 3시 4시에서 4시>와 ‘ZU UK’의 <Within Touching Distance>입니다.
코웃다의 공연은 24시간 동안 암흑에서 하루를 보내는 공연이었어요. 눈을 떠도 감은 것 같은, 정말 무한한 어둠 속에서 조별로 밥을 먹고, 이를 닦고, 연극놀이를 하며, 시간 감각 없이 각자의 속도로 생활을 하며 보냈어요. 처음에는 서로 이리저리 부딪히고 다치지 않으려고 손끝으로 공간을 더듬기 바빴는데, 나중에는 우리 조원들의 손의 형태, 온도, 손가락의 굵기만으로도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있을 만큼 감각이 세밀해졌어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귀와 정수리 사이 어딘가에서 울리던 감각, 손으로 더듬으면 내가 공간에 어디쯤 있는지 알려주던 촉감들이 몸에 점점 더 진하게 새겨졌고요.
공연을 본 뒤 약 2주쯤 지나서야 그 작업이 시각장애인들과의 커뮤니티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어둠 속에서 나를 일으켜주고 이끌어줬던 사람들에게 빛이 허락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그날의 감각적이고 낯선 경험들이 다시금 마음속에서 의미를 다르게 빛나더라고요.
ZU-UK의 <Within Touching Distance>는 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저를 압도했어요. VR 헤드셋을 쓰고 있는 침대에 누워 요람에서 요양원까지 생의 주기를 담은 VCR을 보는 동안, 실제 배우가 제 옷을 파자마로 갈아입혀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책장을 넘겨주고, 제 손과 머리를 어루만져줘요. 이미 관객의 몰입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VR 환경 위에, 현실에서 실재하는 촉각과 온기와 배우 다정한 허밍 등이 겹쳐졌을 때 느껴지는 감각의 시너지는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어요. 이머시브 기술이 단순히 트렌디한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관객의 오감을 실질적으로 깨우고 감각 경험의 결을 더 깊고 진하게 만드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저는 이머시브 기술이나 그 뒤에 받쳐지는 자본들을 선망하면서도, 솔직히 기술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는데요. 하지만 이 공연을 통해 기술이 사람의 감각을 무뎌지게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하는 이 시대에서 역설적으로 기술이 어떻게 사람의 감각에 갇힌 기억과 경험을 일깨우는지에 대한 희망 같은 걸 봤어요. 이제껏 기술은 차갑고 중립적인 도구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날은 기술이 오히려 가장 따뜻한 촉감으로 다가왔어요.
런던에 있는 극장 중에서는 Battersea Arts Centre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미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극장이지만, 그들이 운영하는 프로덕션의 규모와 지향하는 가치의 중요성에 비해 한국에는 아직 충분히 소개되지 않은 것 같아서 이 자리를 빌려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곳에서는 컨템퍼러리, 실험적인 연극과 무용, 그리고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원예술 공연들을 만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모든 공연이 ‘relaxed performance’로 진행된다는 것이에요. 이는 말뿐인 선언이 아니라, 실제 운영 방식 전반에서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극장이라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좋은 공연을 올리는 곳’이 아니라, 어떤 예술 생태계와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지 명확한 비전이 있는 극장. 화재 이후의 그을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태도로 당신의 성지향성, 성정체성, 장애 여부, 인종 등이 환영받지 못할 것이 전혀 아니라고 확언하는 극장. 그런 점에서 저는 Battersea Arts Centre가 지금 시대의 공연예술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가장 지속가능한 언어로 구현하고 있다고 느껴요.
아직 섣부르기엔 이르지만, 내년에 이 극장에서 제가 어떤 작업을 하는 사람인지 목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도…?!
1년 석사 과정의 사분의 일이 벌써 끝나버려서, 지금은 한 학기를 잘 정리하고 런던에서 나의 삶을 만드는 데 시간을 몰두하고 있어요. 우리 집 근처 카페 중 어디 사장님이 가장 얼굴을 잘 기억하시는지, 시립 도서관 자리 중 어디가 가장 편하고 가장 구석진지, 해가 좀 노릇하게 탄 오후 무작정 걷고 싶을 때 어느 길이 밤 산책하기에 가장 안전한지 등등 이곳저곳 눈길과 발길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찾은 것 중 가장 흥미로운 건 ‘Prince Charles Cinema’라는 아트하우스 시네마인데요. <Kill Bill>을 Volume 1과 2를 연속 상영한다고 한다고 해서 일단 무작정 예매해 뒀어요. 물론 거의 6시간 장장 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지만… 그 정도는 즐길 수 있는 고통이라고 생각해요 하하. 다음 달에는 여기서 하는 오후 11시에 시작해서 오전 9시에 끝나는 영화 마라톤에 도전해 보려고요.
저는 나중에 저를 소개할 때 ‘experience designer’라고 저를 부르고 싶어요. 예술가가 되기엔 너무 각져있는 데다가 남을 너무 생각하는 편이고, 또 기획자가 되기엔 반체제주의적에 구부러질 바에는 아예 부러지겠다 류의 사람이거든요.
넷플릭스가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독식하려고 하는 지금, 공연예술은 ‘어떤 감각과 경험으로 사람들을 극장으로 다시 불러 들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을 한참 동안 내려보는 사람이지만, 4차 산업혁명과 기술 발전이 우리의 현존성을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껴요. 그래서 저는, 내가 어떤 현실과 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지에 대한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우리가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고 공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주춧돌’이 놓인다고 믿어요.
직접 몸으로 체험된 경험과 감각만큼 더 강렬한 공감과 연결감이 어디 있을까요.
이 때문에 꽤 오랫동안 어떤 감정이나 감각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때 그 순간 그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요소들이 나를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는지 자세히 기록하는 연습을 해오고 있어요. 비록 그 기록들이 하나의 직접적인 스위치처럼 일대일로 치환되지는 않겠지만, 결국엔 제가 설계하고 싶은 경험들의 바탕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는 어떤 걸 그냥 특정하지 않고 다양하게 만나보고 있어요. 한국이었다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친구의 친구와 만남, 모르는 사람 10명 이상인 전체 인원 50명 이상 파티에 가보기 등등. 테이블에 앉은 사람 수가 저 포함 6명 이상인 모임에 가지 않는 93% 내향인으로서는 엄청난 도전적 행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는 네트워크와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우선 자리에 나타나 얼굴을 비췄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둬요. 그 이후에는 내가 그 사람들 기억에 어떻게 하면 남을 수 있는지, 내가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는지를 하나둘씩 실험해 볼 예정이에요. 확실히 사람을 만나면 만날 수록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면 조금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지가 명확해지기는 하더라고요. 현재까지의 실험 결론은 공통으로 본 영화나 TV 시리즈, 소설이 없으면 아무리 날씨가 별로여도 대화를 10분 이상 나아가기 힘들다입니다 하하.
사실 옛날에는 만나보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정말 많았는데 최근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어요. 제가 오랜 시간 걸쳐 흠모해 왔던 컨템퍼러리 극단의 애니메이터를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막상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적은 인원으로 오페라 이상의 대형 프로덕션을 어떻게 소화해 내는지 등 짧게나마 대화를 해보니 그들도 본인 앞의 삶 한 조각에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이구나를 느꼈어요.
제가 천재시하고 우상화했던 순간들이 결국엔 그들에게도 현실과 앞에 협의된 선택들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 이후로는 신격화된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다거나 누군가를 신격화시키는데 의미를 두기보다는, 그냥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가는 사람들에게 사소하게 원동력이 되는 것이나 쓸모없지만 실소를 터뜨리는 것들을 더 많이 물어보고 싶어 졌어요.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환상을 어그러뜨리는 실망감으로 대답되기보다는, 서로의 삶을 조금씩 실제로 연결시켜 주는 진짜 교류가 되기를 바라요.
사실 3년 간 삶의 거처를 한 세네 번 정도 옮기며 제 언어를 잃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요. 어떤 순간부터 ‘0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했고요. 제 안의 다양한 언어로 혼재되어 있던 다짐과 생각들을 정리하고 다듬으며 제 지금 당장 여기의 좌표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제 이야기는 우연히 이 런던 브리지에 발굴되어 지금의 당신에게 읽힐 수 있었지만, 당신의 이야기 또한 지금 어딘가에서 발굴되기를, 그리고 잔잔히 라도 계속 써내려 져 가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