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햎_이현지

by 정재은

안녕하세요. 저는 인스타그램에서 뮤지컬, 연극 보는 햎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지입니다. 소위 연뮤덕이 된 지는 18년 차, 계정을 운영한 지는 6년 차입니다. 공연예술을 너무 사랑한 탓에 한국에서의 약 10년 동안의 군 생활을 뒤로하고 대위로 전역한 뒤, 조금은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찾아 런던으로 왔습니다.


저는 공연을 사랑하는 불나방입니다. 군입대, 늦은 나이에 시작한 워킹홀리데이 등 인생의 큰 도전부터 시작해서 스파르탄 레이스, 하프마라톤 등 작은 도전들까지 새로운 것,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뒤로하고 군인정신으로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군생활을 하면서 유독 강해진 성실성과 책임감, 충성심 등은 제가 어디서 생활하고 일을 하든 중간은 하게끔 만들어줬습니다. 또한 코로나 기간 동안 휴가, 외출이 불가하여 뮤지컬을 보고 싶은 마음을 인스타그램에 공연 후기, 밈 등 다양한 콘텐츠로 표출한 것, 뮤지컬과 연극을 보기 위해 휴가 때마다 극장을 찾아다니곤 한 것(어느 때는 11개의 공연을 연속으로 본 때도 있답니다.), 공연이 좋아 군생활 중에도 문화예술경영 대학원에 진학하여 매주 경북 울진과 서울을 왕복한 것 등등, 공연을 너무 사랑해서 그에 불같이 뛰어드는(그리곤 파스스 소진해 버리는…)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결국 저의 이 성격과 열정이 지금의 저를 영국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해요.


10년 동안 군에서 일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책임감, 새로운 환경에 뛰어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적응력,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몰입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 약 30여 년 동안 해외살이는 해보지도 않았고, 영어도 기본 이하의 실력이었던 제가 지금까지 런던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런던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공연 보고, 콘텐츠 만들고, 여행 등 다양한 경험까지 병행하는 것도 이런 성향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현재 런던에 온 지 약 1년 5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워킹홀리데이(Youth Mobility Scheme) 비자로 런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전역이 확정된 후에 저의 다음 스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동안 제가 군생활을 하면서 가장 갈망했던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정형화된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과 ’휴식기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때맞춰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나이 제한이 완화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공연을 좋아한다면, 세계 최고의 공연 도시에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국 런던을 선택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화려한 웨스트엔드의 대작들부터 National Theatre 등 소극장, 신작, 실험적 공연까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공연예술문화는 어떨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한국에서는 늘 정해진 시간표 속에서 살았고, 제 나이에 맞는 제 위치가 알게 모르게 정형화되어 있다는 걸 느끼며 살았어요. 특히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내 인생에서 이 계급, 이 나이 즈음엔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가져야 하고, 어느 부대로 전입을 가야 하고’ 등등.. 제 성향과 마인드와는 맞지 않는 이 삶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국에 와서 같은 나이에, 아니면 나이에 관계없이 각자의 각자다운 삶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 느려도 괜찮고, 내 리듬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특히 예술을 일상 속에서 더 자연스럽게, 지난날들보다 많이 소비하게 되면서, 제 감정과 취향에 귀 기울이는 법을 많이 익혔습니다.


말로만 듣던 ‘올리비에 시상식’ 티켓을 구해서 관람했을 때, ‘내가 이런 귀한 경험 하려고 여기 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시상식에 드레스코드에 맞춰 갖춰 입고 입장해서 내로라하는 공연들의 수상장면과 축하공연을 보고 있는 순간, 제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처럼 짧은 여행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영국 공연산업과 관련해 깊이 있게 경험할 때, 영국에 오길 잘했다고 느낍니다.



몸이 힘들다기보단 심리적으로 힘든 날들이 주기적으로 오는 편인 것 같아요. 평소엔 굉장히 제 삶에 만족하며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영국에서 유학 중이거나 직장을 다니는 한국인들과 비교하며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하고, ‘미래에 뭐해먹고살지’, '이렇게 즐기면서 살기만 해도 되는 건가’라는 걱정을 하기도 하는 등 아무래도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외국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하루하루 사는 모양새이다 보니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드는 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그 주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답니다.


영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와서 고민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늦은 나이에 영어를 내뱉는 것 자체가 힘든 영어실력으로 전역하자마자 워홀을 선택했고, 이 선택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많은 걱정을 뒤로하고 선택한 영국행이었기 때문에 오면서도 많이 불안했어요. 하지만 와보니 막상 저랑 비슷한 나이에 같은 선택을 하고 생활하고 있는 또래 친구들도 있었고, 영어가 부족하더라도 생활할 수 있었고, 오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없던 재밌는 세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결국 중요한 건 ‘일단 시도하는 것’이더라고요.

일단 와서 보고, 부딪히고, 실패하더라도 일단 와서 경험해 보는 것과 상상만으로 지레 겁먹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오고 싶은 이유가 명확하다면 영국행은 인생에서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 인생을 뒤흔든 공연’은 프렌치 버전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입니다. 학창 시절 우연히 본 <노트르담 드 파리> DVD가 계기가 되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십수 년 간 연극, 뮤지컬 등을 주기적으로 관람하는 연뮤덕이 되어버렸어요. 그게 결국 연극, 뮤지컬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게 되었고, 저를 영국으로 오게 했으니까요. 제 소원이 파리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마침 제가 영국에 있는 동안 파리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가 공연을 한다는 거예요!(보통 아시아 투어만 도는 공연인데도…!) 그래서 내년에 파리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 보기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설레요.


© Les Cloches - Angelo Del Vecchio - France /© La cours des miracles – Jay


다른 의미로 ‘내가 본 공연 중 최고 좋은 공연’이라면 하나만 꼽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어쩌면 해피엔딩>! 한국 초연부터 지켜봐 왔는데 스토리, 넘버, 대사, 무대 등등 가장 완벽한 한국 창작뮤지컬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소재 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짜르르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뮤지컬이에요. 내년 즈음 웨스트엔드에 온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정말 기대가 됩니다.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볼 수 있는 공연들 중에서는 <백 투 더 퓨처>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영국 오자마자 거의 처음 본 뮤지컬인데, 다양한 무대 기술의 총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크린, 무대장치, 조명, 소품 등등 무대를 구성하는 정말 다양한 것들이 공연의 화려함을 극대화시킨 뮤지컬이에요.



극장은 아무래도 제가 아주 잠깐 일했던 Lyceum Theatre가 가장 정이 가는 것 같아요. 런던에 있는 극장들 중 대부분은 아무리 대극장이라고 하더라도 로비나 객석이 다소 비좁은 느낌이 있다고 느껴져요. 하지만 Lyceum Theatre는 2천여 석의 큰 객석에 각 층마다 Bar가 있어 공연 전중후 공연장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연장이라고 생각해요. 고풍스러운 건축물 외관부터 미로같이 얽힌 내부 공간들까지, 천천히 살펴보며 재밌는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답니다.



National Theatre에서 하는 공연들도 작품성 높은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추천하고, 공연장 자체도 National Theatre의 MD를 구매하러 방문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굳이 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템즈강변에 위치한 건물에서 분위기 좋게 커피 마시는 것도 좋아요. 그리고 공연 관련 기록물들 열람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National Theatre Archive에 가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요즘은 제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런던에서의 공연 관련 경험을 한국 관객들과 나누는 데 신경을 쓰고 있어요. 사실 제 기존 팔로워분들은 제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 팔로우를 해주신 분들이기에 웨스트엔드의 공연 소식에는 관심이 적은 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공연시장도 지금보다 더 큰 발전을 위해선 기존 거대 시장의 문화, 산업구조 등에서 레퍼런스를 수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산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가장 큰 고민 지점, 우리나라 공연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자 조금 변해야 하는 점인 관람문화 등에 대해 다른 나라는 어떤 방식으로 공연을 관람하는지, 공연예술과 관련해서 어떤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지에 대해 꾸준히 노출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한다면 좋은 문화는 점점 장려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외에도 런던에서만 즐길 수 있는 공연 관련 이색 액티비티, 웨스트엔드로 진출을 준비 중인 한국 창작뮤지컬 등등 런던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물색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문화예술재단이나 관련 기관에서 문화예술행정 또는 경영을 지원하는 업무를 해보고 싶어요. 군생활 중에 업무를 하면서 가장 뿌듯하고 행복했던 때는 힘들게 준비한 대규모 문화공연을 신나게 즐기며 병영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병들을 바라볼 때였어요. 그리고 최전방 부대에서 예산 한 푼 없이 직접 지역 예술회관과 소통하고, 장비를 다루며 장병 문화예술제를 기획해 사회자 역할까지 담당했을 때였어요.

사회에서도 문화예술 관련 프로젝트를 내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보고 싶고, 그 프로젝트를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도 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전역 전, 영국에 오기 전에 성균관대학교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하며 관련 학문을 배웠고, 지금은 런던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공연, 전시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떠올려보고 있어요.




저는 영국에서 유학을 통해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도 아니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공연 관련 분야에서 알바를 할 만큼의 영어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 하나 때문에 새로운 나라로 불나방처럼 달려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경험을 통해 만족감을 충분히 느끼고 있거든요.

런던에서 산다는 게 마냥 쉽고 행복하지만은 않지만 이 글을 읽고 계신 이미 런던에 계신 분들, 혹은 런던에 오고 싶은 분들께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분들이 제 계정을 팔로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ㅋㅋ)


인스타그램 @musical_play_happ


이전 08화기묘한_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