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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Oct 06. 2023

런던은 웜톤, 베를린은 쿨톤

영국 생활자의 독일 여행

남편이 독일 베를린에 오는 한국 공연팀 일을 하게 되어 아이들과 함께 베를린에 다녀왔다. 나는 베를린에 가본 적이 없었고, 출장 기간도 마침 나의 논문 제출 이후라 가족 모두가 함께 가게 됐다. 나에게 베를린은 그다지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었다. 런던이나 뉴욕은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만으로도 갈 이유가 충분했고 파리는 낭만이 가득한 에펠탑의 도시였지만, 베를린은 분단의 아픔이나 슬픈 감정들이 더 많이 느껴졌던 것 같다. 런던에서 1년 여를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베를린에서 런던을 떠올리며 비교하고 있었다. 낯설던 런던은 더 낯선 베를린에 다녀오니 익숙하고 편안한 도시가 되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 나라의 언어로 인사를 해본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같은 짧은 인사말. 입국 수속장에서 독일어로 인사를 건넸다. 구텐 모르겐! 심사원이 독일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던 것 같다. 답을 하지 못했다. 당황하여 웃었다. 심사원도 웃었다. 다시 영어 할 줄 아냐고 영어로 물었다. 여권에 도장 찍는 소리를 듣고 여권을 돌려받으며 꿋꿋이 다시 독일어로 인사했다. 당케 쉔!


아이들은 학기 중이라 여러 날을 결석해야 했다. 큰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현장학습을 신청할 수 있어서 종종 사용하곤 했는데 영국엔 그런 게 없을까 궁금했다. 우선 학교에 메일을 써서 부모의 출장으로 부득이하게 장기간 결석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구글 양식에 내용을 작성하라는 답장이 왔다. ‘생각보다 간단하네’ 하며 결석하는 기간과 사유, 아이들 이름과 학년, 반 정보를 적어서 제출했다.


첫 번째 호텔은 공항 바로 앞에 있었다. 로비에서 짐을 맡기려 기다리고 있을 때 영국 국가번호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들이 왜 학교에 오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메일을 보냈고, 보내준 구글 양식도 작성해서 제출했노라고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그런데 결석에 대해서 교장의 허가를 받았냐는 것이다. 지난 학기에 감기를 호되게 앓으며 여러 날 결석을 했었다. 학교에서 출석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쩐지 장기 결석 절차가 너무 간단하더라니. 기분이 안 좋아지면서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이미 떠나왔고 아이들은 각종 새로운 탈것들에 이미 신나 있었다.

가장 예뻤던 Museumsinsel 역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빨간색 기차는 복층이었다. 매우 쾌적하고 자리마다 충전이 가능한 220V 아웃렛과 테이블, 쓰레기통이 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기차와 트램, 버스에 개찰구가 없는 것이었다. 양심만 챙긴다면 이보다 더 편리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개찰구가 없으니 카드를 대거나 표를 넣는 시간이 걸리지 않고 앞사람이 그것을 처리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인식기와 출입 시스템을 만드는 비용도 엄청나게 절약될 것이다. 티켓은 온라인 어플이나 역과 트램 안에 있는 기계에서 살 수 있다.


나는 한 번도 검표원을 만나지 못했다. 실제로 걸리는 사람이 많아 그 자리에서 6배 정도의 벌금을 낸다고 들었다. 공항 가는 길에 아이와 함께 기차 안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오니 우리 자리에 검표원이 왔었다고 했다. 다시 오겠다고 하고 갔다고 한다. 거의 다 와갈 무렵 화장실에 갔는데, 하필 그때 또 검표원이 왔다는 것이다. 나는 어플로 구매한 티켓을 당당하게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만나지를 못했다.




아이들과 하는 여행인지라, 관광 명소 박물관 미술관도 좋지만 놀 거리도 중간중간 필요했다. 쇼핑몰 안에 대형 미끄럼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안타깝게도 운영이 중단된 채였다. 두 개층을 돌아 내려가는 원통형 미끄럼은 아래에서도 오르지 못하도록 막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쇼핑몰 안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난감 가게가 있었다. 내가 봐도 재미있을 정도로 다양한 장난감이 아주 많았다. 한참을 구경하며 주말에 있을 친구 생일파티에 가져갈 선물도 샀다. 그다음으로는 박물관 앞에서 봤던 배를 타기로 하고 나왔다. 구글지도로 버스 행선지를 분명히 확인하고 탔는데 목적지와 반대로 가고 있었다. 잘못 탄 것을 알고 급히 내린 곳은 널찍한 공원 앞이었다.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걸어가다가 공원 안에 놀이터를 발견했다. 쇼핑몰에서 허탕 쳤던 미끄럼틀이 기울기별로 세 개나 있었다. 게다가 한 편에는 모래밭 위에서 조종할 수 있는 포클레인 놀이기구까지 있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는지 이곳에서 한참을 보냈다. 나는 놀이터 옆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여행의 묘미란 이런 게 아닐까? 버스를 잘못 타지 않았으면 없었을,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연히 만난 놀이터와 미끄럼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다가 배를 타러 갔다. 구글지도에서 가장 별점이 좋은 유람선을 찾아 탑승구를 찾아갔다. 5분 후에 출발하는 배에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배를 정박해 둔 곳으로 내려가는 계단 한 구석에서 표를 팔고 있었다. 어른은 16유로, 아이들은 8유로씩이어서 32유로라고 했다. 그런데 현금만 받는다는 것이다. 런던은 거의 cash free, card only인 곳이 많아서, 유로로 환전을 해오지 않았다. 그런데 가방에 딱 30유로가 있었다. 아이들이 베를린에서 만난 어른들께 받은 용돈 40파운드 중에서 일부를 썼고 딱 세 장의 지폐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2유로가 모자랐다. 배가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것밖에 없다고 30유로를 내밀어 보였다. 배 앞까지 와서 타보지도 못하고 돌아가면 아이들이 실망할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매표 직원이  아주 잠깐 고민하더니, 오케이!라고 했다. 얼떨결에 2파운드를 할인받아 기분이 좋았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배를 탔다.  


오래전 엄마와 일본 여행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결혼 전에 엄마와 둘이 여행을 많이 다녔더랬다. 후쿠오카에 갔을 때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일본어라고는 오직 나마비루(생맥주)밖에 몰랐고, 읽을 줄도 말할 줄도 몰랐고 번역기조차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먹고 있는 안주나 진열된 재료 중에 골라 주문을 했고 맥주도 시켜 먹었다. 이것저것 맛보고 나서 계산을 하려고 얼마냐 물었더니 상상 못 할 금액이 나왔다. 그곳도 현금만 받는다고 했고 나는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엄마가 쿨하게 주머니를 털어 있는 현금을 다 내고는 이게 다라고 했다. 그러자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은 그래, 다음에 올 때 또 오라며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엄마와 나는 현금을 모조리 써버린 탓에 숙소까지 걸어가야 했지만 걷는 내내 그 이야기를 하며 얼마나 깔깔 웃었는지 모른다. 나중에 아이들도 2파운드 부족했지만 배를 탈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할까. 유유자적 물 길을 따라 도시를 감상하던 늦은 오후의 공기도.



 

런던보다 대중교통이 쾌적한 베를린에 나쁘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며칠을 보냈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이 정말도 남의 일에 신경을 안 쓰는구나를 여실히 느꼈던 사건이 발생했다. 트램 안에서 둘째 아이 코피가 터진 것이다. 아이 둘 다 워낙 코피가 잘 나는 데다, 한 번 나면 또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휴지를 넉넉히 챙겼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코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거의 뿜어 나온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휴지를 접어 콧구멍을 막아주자마자 펑펑 젖었고, 휴지를 다 적시고 흘러내렸다. 아이 티셔츠와 바지에 이미 핏방울들이 번지고 있었다. 트램 안은 냉방이 안 돼 더웠고 내려야 할 정류장이 어디인지도 챙겨야 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몇 장씩 챙겨뒀던 제각각의 휴지들은 찢어서 말았을 때 두께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식당에서 가져온 냅킨은 두꺼워서 잘 찢어지지도 않았다. 그나마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휴지를 다 쓰고도 코피가 안 멎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트램 안에서 이렇게 사투를 벌이다가 문득 서러워졌다. 여기가 런던이라면, 누군가 휴지를 건네지 않았을까? 서울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그날 그곳에는 코피를 쏟는 아이와 그것을 막고 있는 나에게 신경 쓰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베를린은 나에게 그렇게 조금은 차가운 도시로 기억됐다.


런던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서로를 많이 배려한다.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탈 때나 나 혼자일 때도 먼저 타라고 비켜서 주기도 하고, 튜브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이들이 많았다. 유모차가 지나가면 길을 비켜주고, 아이가 울거나 떠들어도 눈치를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니까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있다. 엄마들은 공공장소에서도 편안하게 수유를 한다. 런던에서 수시로 듣던 땡큐, 쏘리가 없는 베를린은 어딘가 허전했다.




여행 중에, 우리가 런던으로 떠나온 지 꼭 1년이 지났다. 익숙하지 않아 긴장되고, 낯설어 피곤하고 지치는 날들 중에도 문득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좋은 때가 있었다. 영국 밖으로 진짜 여행을 하고 나니, 돌아온 이곳이 내 집 같은 느낌이 짙어졌다.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지만 여기에 내가 머물고 있는 집이 물건들이 가족이 있다. 우리가 런던에 온 지 1년이 되었다는 것은, 내 학생증이 만료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학생이 아니다. 학생이라는 타이틀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부만 하면 된다는, 조금은 여유로울 수 있었던 1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가 넘어서였다. 큰 캐리어 두 개와 졸린 아이들이 있기에 우버를 불렀다. 기사가 차에서 내리며 Hi, how are you?라고 묻는다. 여기 사람들은 정말 한 단어처럼 이 말을 붙여서 하는구나 하며 들었던 익숙한 인사. 모르는 이들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들. 의례적인 인사였지만 내가 런던에 왔음이 실감 났다. 런던으로 돌아올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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