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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꽁치 Dec 18. 2022

추피와 소망이의 생활 이야기

   23개월 소망이는 혼자서도 책장을 넘기며 책을 읽는다. 한데 요즘은 다른 재미난 것들이 많아졌는지, “책 볼까?”하고 물으면 종종 “책 아니 아니”를 외치곤 했다. 그럼에도 하루에 십여 권은 거뜬히 읽는 책이 있으니, 바로 추피 책이 그것이다. ’ 추피 지옥‘이라는 말은 육아를 하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중고거래 사이트에도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미 많은 아이들이 그 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소망이 역시 지금 그 시기를 한참 지나는 중이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알고 시리즈 중 좋아하는 책들은 줄거리도 꿰고 있다. 재밌었던 장면을 기억하고 그 장면이 나오면 눈이 똥글똥글 해져서는 기대에 찬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내가 읽어 내려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 내 웃는다. 심지어 좋아하는 책은 끌어안고 잠도 잔다. 책을 꼭 쥐고 잠든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책 보다 재밌는 것이 많다는 걸 알게 된 소망이에게, 그럼에도 책이 재밌다는 걸 알려준 고마운 추피이기에 남들은 지옥이라 불리는 그 시기를 나는 기쁘게 여기고 지나는 중이다.


   그런 추피에게 정말 고마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얼마 전 소망이가 고열로 시달릴 때 일이다. 지난여름 코로나를 겪으며 약 먹기가 너무 힘들었는지 그때 이후로 약통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에게는 약 먹이기는 가장 큰 난제였다. 해열제를 먹이는 시간만 되면 심장이 콩닥거렸다. 고새 컸다고 억지로 먹이려니 다 뱉어내고 또 너무 힘들어해서 그것도 더 이상 방법이 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요즘 재미있어하는 전화 놀이를 하다 문득 이 방법이 먹힐까 싶어 상황극을 시작했다.


(따르릉따르릉)

- 추피: 여보세요?

- 소망: 응(여보세요 라는 뜻)

- 추피: 소망아! 나 추피야. 아프다며? 많이 힘들지?

- 소망: 응(대답은 잘하는 소망이)

- 추피: 약 먹기도 싫고 힘들지?

- 소망: 응

- 추피: 나도 여렸을 때 그랬어!(책 속의 추피는 3세다. 우리 나이로 치면 5세쯤으로 추정) 그렇지만 약을 잘 먹어야 빨리 낫는대. 나도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꾹 참고 먹으니 정말 빨리 낫더라고! 힘내서 약 먹고 빨리 나아! 그리고 나랑 또 통화하자!

- 소망: 응 안뇽


   그렇게 추피와 필루와 번갈아가며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이후 약 먹는 시간이 다가왔다. 역시나 약 먹기를 거부하는 소망이에게 추피랑 필루와의 통화 한 이야기를 시작하니 약통에 입을 갖다 대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내심 이 방법이 먹힐까 싶었던 나는 소망이의 순수함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꾹 참고 약을 먹어주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다.

   추피와 필루와의 통화 이후 진저리 치던 약도 받아 잘 먹으니 빠르게 열도 잡히고 증세도 호전되었다. 오늘 낮에도 한 열다섯 권 정도의 에피소드를 읽고는 낮잠에 들었다. 잠든 소망이 옆에는 추피 책이 쌓여있다. 새근새근 잠든 소망이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꿈속에서 추피랑 필루 형아랑 같이 신나게 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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