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셜노마드 Mar 20. 2020

소셜벤처의 연봉협상

미션 중심 조직의 연봉협상에서 연봉보다 중요한 것

회사의 연봉 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보니 연봉 재계약 시즌이 돌아오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미션과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은 연봉협상을 어떻게 해야 할까?


큰 틀에서는 연봉협상 자체도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이고 사회적 가치나 미션을 추구한다고 해서 협상 절차와 스킬 면에서 특별히 다를 것까지는 없어 보인다. 다만, 연봉협상도 조직의 문화를 형성하는 하나의 과정이기에  나는 일부러 이런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사서 하는 편이다. 그리고 나름 고심하며 구성원들과 연봉 협의를 하면 확실히 다른 경험이 쌓이고 그런 누적된 경험이 저 질문의 답을 찾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올해 연봉 협의를 모두 마쳤다. 지나고 보니 꽤 인상적인 경험을 한 것 같다. 융합기술 회사이고 모든 개발을 내부화하고 있기에 스타트업 치고도 개인의 일의 범위가 넓고 업무 강도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에 회사는 아직 매출이 일어나기 전 단계라 투자금을 규모 있게 사용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회사와 개인 간 기대 연봉의 괴리가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경우 연봉 협의 과정에서 긴장감이 어느 정도는 흐를 수밖에 없다. 연봉은 중요하고 예민한 주제니까. 여기까지는 내 예상이 맞았다. 그런데 구성원의 반응이  예상을 벗어났다. 


초기에 면담한 한 구성원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들었다. "작년이었다면 일반 회사 연봉협상처럼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회사는 연봉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는 것을 작년에 느꼈습니다. 회사가 나에게 최선을 주려고 고민한다는 믿음이 있고, 그래서 지금 제안도 할 수 있는 최선을 제안했을 거라고 믿어요."


그 뒤로도 여러 구성원과 면담을 진행하면서 작년과 부쩍 다른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 지난해 본인의 퍼포먼스가 만족스럽지 않아 회사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구성원. 회사가 어떤 고민과 논리를 가지고 그런 제안을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연봉은 '주는 대로 받겠다'는 구성원. 연봉 자체보다는 회사가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존중해주는 평소 모습이 더 큰 보상이라는 구성원. 연봉 제안을 듣고 현타가 온다면서도 회사의 기준이 합리적이고 공정할 거라고 믿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는 구성원 등등.


전체적으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협상을 한다기보다는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해보려는 분위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협의의 내용 면에서도 연봉이나 퍼센트 같은 숫자보다는 회사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구성원을 위한 큰 그림이 무엇인지, 올해 목표가 얼마나 중요한 지 등 보다 정성적인 이야기가 주로 오갔다. 이전 회사에서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몇 년 만에 연봉 협의 과정에서 일종의 유대감 같은 것을 다시 느꼈다.




회사의 인재상이 자기주도적이고 내적 동기로 일하는 사람이긴 하다. 채용 때도 연봉과 처우를 본인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사람은 가급적 걸러내고, 구성원들에게도 경제적 보상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한두 가지는 있어야 한다고 종종 압박성 발언을 한다. 물론, 회사는 각각의 구성원을 위한 최선의 대우를 진정성 있게 고민하겠다는 약속도 같이 전달한다. 그럼에도 이번에 좀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발견한 느낌이다.


회사가 자신을 최선의 태도로 존중해줄 거라는 믿음과 회사의 약속에 대한 신뢰. 전부는 아니더라도 유의미한 수의 구성원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연봉협상의 핵심은 연봉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체감한다.

연봉협상에서 연봉보다 중요한 것. 바로 회사가 구성원과 근본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 관계성 위에서 경영진이 구성원의 보상에 관해 어떤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는지가 아닐까.


이 철학과 비전에 관한 공감대가 없다면 연봉이 얼마이며 그 근거가 무엇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같은 조직에 있으면서 어느 때는 미션과 가치를 향해 함께 뛰다가 연봉협상 같은 때가 되면 반대편에 앉아 줄다리기를 하는 양상. 일반적으로는 당연하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품은 조직에서는 낯설어야 하지 않을까.

  



소셜벤처라면 연봉협상의 과정과 절차에 나름의 고민이 묻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그 전반적인 과정이 회사가 추구하는 인간관, 조직 운영의 원칙과 가치, 평소에 공유하는 조직문화와 조화롭다면 연봉협상은 조직의 방향성을 강화하는 과정일 테고, 그렇지 않다면 결과도 그 반대가 될 것이다.


돌아보면 이번 연봉 협의를 마치기까지 대략 이런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1)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 상황과 간단한 연봉 정책을 모두에게 공유, 2) 회사가 구성원이라는 이해관계자를 어떻게 바라보고자 하는지 리마인드, 3) 각 구성원의 셀프 리뷰와 동료 피드백 결과 검토, 4) 각 구성원과 동료 피드백 결과에 관한 면담, 5) 시차를 두고 다시 만나 연봉 협의.


그리고 연봉 협의 과정에서 견지하고자 했던 몇 가지 태도가 있었다. 1) 각자의 강점과 가능성을 중심으로 리뷰하자, 2) 이리저리 재지 말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을 그냥 바로 하자, 3) 누구와도 모두가 납득할 만한 공정성 기준을 벗어나지 말자, 4) 분위기는 부드럽게, 내용은 명확하게, 판단은 냉철하게, 5) 구성원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급적 다 들어주고 마치자.


솔직히 이런 계획을 잘 실행에 옮겼는지는 모르겠다. 몇 가지 지점에서는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중에 떠올라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상당수의 구성원들이 회사에 보여주는 다양한 신뢰의 반응을 체감하면서 이런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들었다. '이 사람들 나중에는 연봉으로도 활짝 웃게 만들어주고 싶다.'


그리고 일련의 연봉 협의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스티븐 코비가 말한 대로 신뢰의 속도는 확실히 빠르다.'



*(각주) 사실 이전 회사 경험은 훨씬 인상적인 것이었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던 크리에이티브 회사였는데 성과가 좋지 않았던 다음 해 연봉협상에서 기이한 일이 있었다. 대표는 연봉을 조금이라도 올려야 더 동기부여가 된다고 연봉 인상을 주장하고, 몇몇 구성원은 자기 연봉을 깎아서 회사 부담을 줄인 상태로 한 해를 시작하자거나 또는 자기 연봉을 깎고 그만큼 더 필요한 동료에게 얹어주라고 요구하면서 연봉협상이 몇 차례 결렬된 적이 있었다. 일반적인 연봉협상과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 것인데 이때 채용과 동기부여 측면에서 나름의 인사이트를 얻었다. 이때 이후로,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외적 동기와 보상심리가 강한 사람을 채용해서 지속적으로 목표와 그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보다는, 내적 동기로 일하고 높은 로열티를 가진 사람을 채용해서 자율성을 보장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챙겨주면서 최선의 보상만 고민하는 것이 여러모로 더 낫겠다는 선호가 생겼다. 물론,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라 실제로 구현하려면 여러 가지 기술적인 고민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셜미션 스타트업에서의 3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