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2017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한국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지만
그때의 나는 5개월 동안 내가 어딜 다녀오면
모든 상황이 자연히 정리되어 있을 거라 기대했었다.
역시 모든 것은 어느 하나 정리되지 않은 채,
내가 어지럽히고 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네팔에 와서 나한테 얘기했던 동생의 말이 신경 쓰여 집에서 취업을 하려 했다.
집에 같이 있는 부모님이 거슬렸다.
그냥 다 짜증 나고 답답해서 공책 하나 딸랑 집어 들고 집을 나갔다.
한참 있다 돌아오니 내 전화기가 울리고 있었다.
남동생이었다.
"아이 왜 집을 시끄럽게 한가?"
"머시?"
"엄니가 글던디 집 나가서 연락도 안된다고."
"근디"
"왜 긍가.."
"머슬?"
"그럴거믄 서울로 얼릉 가소. 내가 잘못했네."
"안 가"
"할라고 한 거 못 하게 해서 시위하는 거여?"
"끊어라"
집이 집이 아니었다.
나는 취업지원센터에 찾아가 화풀이를 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무 데나 취업 좀 시켜주세요"
"네?"
"여기 취업시켜 주는데 아니에요?"
"아.. 여기 서류 작성하시고.. 혹시 어떤 분야로 취업하고 싶으신지.."
"디자이너요. 시각디자이너"
"아 네.. 혹시 포트폴리오나 전에 하셨던 것들 있으실까요?"
나는 편입을 위해 만들었던 포트폴리오를 툭 던졌다.
"이게 뭐죠?"
"제 포트폴리온데요."
상담사는 쭉 훑어보더니 말했다.
"이건 취업을 위한 게 아니네요?"
"편입하려고 만든 거긴 한데 뭐 상관없지 않나요?"
"상관이 있죠. 취업하려는 회사가 관심을 갖도록 맞춰서 만드셔야죠."
"아 그냥 아무 데나 연결시켜 줘요."
"저기요. 취업하고 싶은 거 맞아요?"
"..."
상담사는 나를 한참 노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제가 알려드린 사이트 접속하셔서 관심 있는 회사 추려서 리스트 만들어 오시고
그 후에 이거 하시고 저거 하시고 같이 얘기해 보고 (생략) "
내 기억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 총 4번을 만났어야 끝나는 상담이었는데
네 번째 만났을 때 나는 상담사께 진심으로 죄송했다고 말씀드렸다.
"저 상담사님. 처음에 방문했을 때 제가 버르장머리 없이 행동해서 죄송해요."
"네? 아, 괜찮아요. 정글님 정도면 귀여운 수준인데요 뭘 ㅎㅎ"
"제가 저한테 화가 난 건데 주변 사람들한테 화풀이를 했습니다.
상담받고 나서 생각이 많이 정리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이번에 면접 보시는 곳에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요.^^"
덕분에 나는 도청(관공서) 일을 주로 하는 디자인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보증금만 마련하고 서울로 갈 생각이었지만
여기서 계속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딱 보증금을 만들었을 때 나는 그 회사에서 잘렸다.
서울로 가라는 계시였는지 뭐였는지..
그새를 못 참고 여자친구를 만들어버려서 그냥 있기로 했다.
집에서 눈칫밥 먹는 게 싫어서 아무 데나 얼른 다시 일을 시작했다.
거의 같은 일을 하는 회사였는데 업무가 살짝 달랐다.
이때부터는 일하는 중에도 계속 서울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여기 있을 게 아닌데.. 내가 왜 여기 있지?"
나는 점점 다시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마음을 잡으려 애썼다.
"아부지, 인자 나도 적은 나이도 아니고 지금 여자친구하고 결혼할랍니다.
어차피 산다는 것이 다 억지로 참고 사는 것 아니오. 다들 그렇게 상께
나도 인자하고 싶은 거 하겄다고 지랄 그만 치고 현실을 살랍니다."
"뭔 갑자기 자다가 봉창 뚜들기는 소리를 하냐. 정신이 어떻게 돼브렀냐?"
"아따 내가 적은 나이도 아닌디 계속 이상만 좇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기제"
"누가 니보고 잘못되었다 글든? 뻘소리 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해라잉."
나는 기어이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 합리화가 쉽게 될 리가 없으니 아무 잘못 없는 여자친구를 탓하기 시작했다.
'너만 아니었어도 내가 지금 여기 안 있을 텐데..
너만 안 만났어도 이 그지 같은 회사에 다닐 일이 없었을 텐데..'
출근하기 싫어서 일찍 도착해도 9시 딱 돼야 들어갔고
출근해서는 퇴근시간만 기다리느라 시계 쳐다보고 멍 때리는 게 일상이었다.
몸은 여기 있고 마음은 저기 있던 5년 전 주방에서의 나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나는 여전히 이 모양이다.
마치 아주 달콤한 꿈을 꾸다 깬 것처럼 나의 5년이 사라져 버렸다.
결국 여자친구를 버렸다.
내가 만나자고 해놓고 너를 만나고부터 되는 게 하나도 없다며 지친다고 얘기했다.
여자친구 때문이 아니었으니 내 상황은 당연히 달라질 게 없었다.
'이제 27살인데 지금부터 준비해도 면접 볼 때 28살, 나이가 너무 많은데?
지금까지 한 게 써먹을 게 하나도 없네.. 맨날 거지 같은 디자인만 하고
이러니까 내가 서울에서 시작해야 된다고 했잖아. 시간만 날리고 이게 뭔 짓이여!
가족들 말 듣는 게 아니었어. 아니지 애초에 취업을 하는 게 아니었어.
괜히 그 선생님 말을 들어서는. 주변에 도움이 되는 인간들이 하나도 없네 씨발'
계속 남 탓만 해댔다. 점점 탓하는 대상도 커져 갔다.
'한국이 문제야. 나라 망했어. 헬조선, N포 세대. 그냥 전쟁이나 나라. 다 같이 죽자'
탓하는 것도 슬슬 질리더니 그냥 다 끝나버렸으면 싶었다.
영혼 없이 지내던 어느 날, 방에 멍하니 앉아있다 흐릿한 초점이 점점 뚜렷해지더니
책꽂이에 꽂혀있던 내 일기장들이 보였다.
나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일기장들을 퍼먹듯이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5년 전의 나와 다시 마주하게 되고 위로를 느꼈다.
'5년 전의 나는 참.. 활활 타올랐었는데..
이젠 다 타서 재가돼버린 걸까..
뭘 어쩌다 나 자신이 이렇게 싫어진 걸까..
과거에 갇혀서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이거 때문에, 저거 때문에, 너 때문에, 한국 때문에
허구한 날 변명만 늘어놓고..
왜 그때는 움직였고 지금은 가만히 있을까?
5년 전과 다른 게 뭘까?
원하는 것을 이룰 방법을 못 찾아서 방황했지,
원하는 것이 없어서 방황하진 않았으니..
그래서인 건가?..'
정확히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을 때와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의 차이였다.
지금은 방황이고 그때는 방랑이었다.
깨달을 때쯤 뭔가 편안해졌다. 비로소 스스로에게 용서받는 기분이었다.
'긍께 왜 건방을 떨었냐 떨기는. 어찌겄냐 일이 그라고 되아브렀는디.
인자 과거는 다 털어블고 또 다시 나아가야제. 안 그냐?
이만하믄 염병할 거 다 해쓰. 언제까지 자빠져 이쓸라고.
살다보믄 별에 별일이 다 있는 거 아니겄냐.
다시 하믄 됭께 다 털어브러야.
머시 정 생각나는 것이 없냐? 그라믄 아나. 이거 하나 가지가라.'
5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툭 던져준 꿈 한 조각.
먼지 쌓인 일기장 모퉁이에 적혀있던 나의 바람,
'외국에서 살고 싶다.'
나는 다음날 유학원 상담을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