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가고 싶은데 제가 거기에 계속 살 수 있을까요?"
"보통은 대게 1년 하고 다시 돌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세요."
"아 그런가요.."
"저는 아예 이민을 가고 싶은데 혹시 어디가 좋을까요?"
"음.. 그러면 캐나다는 어떠세요? 그래도 미국보다는 가능성이 더 있어요."
"오 그럼 캐나다로 알아봐 주실래요?"
"네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회사에 그만두겠다 얘기했다.
그만두고는 캐나다를 가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루에 12시간씩 주간 야간 격주로 번갈아가면서 하는 일이었다.
일이 힘든데, 그래서 밥을 소 같이 먹어도 살이 빠지는데, 참 즐거웠다.
주변에도 슬슬 알리기 시작했다.
"아부지, 저 캐나다 갈랍니다."
"드디어 제정신으로 돌아왔구만. 잘 생각했다."
친구들은 말렸다.
"가서 뭐 하려고? 갔다 오면 나이가 몇 살이냐.. 다시 생각해 봐."
"그거 다 현실도피다. 거기 가면 더 쉬울 것 같지? 아니여. 더 어렵다.
뻘소리 말고 그런 생각할 시간에 여기서 살 궁리나 더 해라"
"가서 또 생각대로 안 되면 어쩔라고? 대안은 있고? 그냥 여기 있어.
이제 너도 적은 나이 아니잖냐. 다 그렇게 참고 살아."
나는 별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간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간다. 잘 있거라.'
뭔가 잔소리 같은 말들을 들을 때 짜증 나기보다는 짜릿했다.
이 짜릿함은 내 삶이 재부팅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들 말이 틀린 건 없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잘못되었을 때를 위한 대책도 없었고,
캐나다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좋은 전략이었다. 잘못된다는 설정까지도 없었으니까.
'나는 캐나다에서 살게 된다.' 그저 바람과 믿음, 한마디로 막무가내였다.
처음에는 유학원을 통해서 영어학원을 등록하고 5개월 학생비자를 받았다.
추가로 비행기 타기 일주일 전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2019년 2월, 드디어 토론토에 첫 발을 내디뎠다.
운이 좋게도 학원 다니던 와중에 (4월) 워킹홀리데이 비자 인비테이션을 받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7월부터 한인식당 주방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쉬울 리가 없다.
영주권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던 그 식당은 코로나로 인해 2020년에 문을 닫았다.
다른 식당으로 옮겨 갔지만 그해 3월 캐나다 정부에서 모든 식당에서 식사를 금지했다.
내가 옮긴 지 한 달 만에 모든 직원들은 출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다행히 사장님께서 영주권을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켜주셔서 나는 출근할 수 있었다.
상황이 어려워지니 많은 사람들이 이때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나는 또 선택지가 없었다. 죽어도 여기서 죽었지 한국은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영주권 취득까지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언제까지 식당에 짱 박혀 있어야 하나.. 내가 이러려고 여길 왔나..
한국 사람들하고 일하다 보니 여기가 캐나다인지 한국인지 헷갈린다.
과연 영주권을 딸 수 있을까?'
슬슬 의심하기 시작했다. 영주권 소식을 기다리다 지칠 때마다 기어이 믿어보려 애썼다.
'나는 캐나다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역시 막연하게 믿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른 주로 이동을 해야 되나? 캐나다에서 대학을 가야 되나? 아무나 붙잡고 결혼을 해버릴까?'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기 위해 방법을 탐색했다.
'아닌가? 좋은 사장님 만난 것도 기회인데 계속 기다려봐야 되나..'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조급함에 허덕였다.
어릴 적에 아버지 차를 타면 아버지는 신호를 못 기다리시고
우회전에 유턴에 다시 우회전을 거쳐 사거리를 건너가시곤 했다.
2번 하면 1번은 그냥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빨랐다.
그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도 버스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타서는 도착하느라 기다리고, 그 기다림을 못 견뎌서
이럴 바에는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해서였다.
이런 나에게 한 없는 기다림은 잔혹한 고문이었다.
하루는 출근길에 기차가 지나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냥 기차에 타 있는 게 아닐까?
사실 우리는 그저 달리고 있는 기차 안에서
펼쳐지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보고만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은 보여주는 것 밖에 볼 수 없지 않을까?'
그리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신호등은 결국 파란불로 바뀐다.."
어차피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그다음을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영주권을 받고 나면 어떻게 할 건지 내가 바라는 이곳에서의 삶은 어떤 삶인지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찾는데 집중하다 보니 견딜만했다.
2021년 7월, 마침내 영주권 인비테이션을 받았다.
사람들이 다들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면서 이민경쟁률이 낮아졌고
그 틈에 내가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모두에게 위기였던 코로나 사태가 나에게만큼은 기회였다.
물론 전략적으로 기다림을 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위기를 기회로 탈바꿈시켜 준 것은 인내였다.
이후, 나는 계획했던 것들을 순조롭게 진행시켰고
결국 영주권을 기다리면서 바라왔던 것들을 전부 이뤄냈다.
전부 이뤘다고 해봤자 '나는 캐나다에서 살게 된다.' 이긴 하지만 ㅎㅎ
"캐나다에서 사는 거 어때? 좋아?"
"그냥 뭐.."
사실 어디서 사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원하는 것이 있는지, 그것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지이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사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는 것이 찝찝해서 내가 나에게 다시 질문했다.
"캐나다에서 살 수 있게 돼서 어때?"
"10년 전의 바람대로 외국에서 살 수 있게 돼서 어때?"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어때?"
이 질문에는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좋지 뭘 어때 ㅋㅋㅋㅋㅋ"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일으켜줘야 할 놈은
과거의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나다.
항상 그랬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 뭐슬 원하냐? 내가 다 들어줄라니까'
'원하는 것이 쪼까 많은디?'
'아이 말만 해 나는 듣기만 할랑께'
'아이 다 들어준담서!'
'하는 것은 니가 하는 것이제ㅋㅋㅋㅋㅋ'
'그람 그렇지. 들어준 것이 어딘가. 그거믄 됐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