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흔 Apr 27. 2024

브런치 발행 글 숫자가 꺼꾸로 간다

나는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면서 발행한 글이 일 년 만에 거의 500건 정도에 육박한 적이 있었다. 아마 이 정도의 숫자는 보통의 브런치 작가가 발행하는 숫자에 비겨 볼 때, 결코 적은 분량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글을 발행취소, 혹은 삭제를 한 덕에 오늘 현재 95건의 글이 남아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그렇게 많은 글을 발행했다가 죄다 삭제한 것일까? 물론 브런치에서 삭제했다고 해서 내 노트북에서까지 삭제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선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겁이 없으면 용기백배한다고, 한 마디로 겁 없던 질풍노도 시기의 글들을 나중에 보고 있자니 너무 쑥스럽고 뻘쭘한 기분이 들어서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초등학교 시절에 지은 글을 읽으면 과연 이런 기분일까? 아마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글을 지웠다. 그리고 노트북 구석에 뒹굴던 글은 차곡차곡 분류해서 더 깊은 안쪽으로 모셔두었다. 영구 보존, 혹은 언젠가의 재활용을 기대하면서.

     

다음으로는 중구난방이던 글을 정리해서 종이책으로 출간하면서 일부 글들을 지웠다. 출간의 목적은 책을 많이 팔아서 돈을 벌겠다는 것보다, 오롯이 내 글을 종이책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누가 나 같은 병아리 작가 지망생이 쓴 책을 돈 주고 사겠는가? 언감생심이다. 가뜩이나 그런 처지인데, 브런치에만 접속하면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글들을 수록한 책을 출간하면 혹시라도 생겨날 나의 잠재적 독자들이 더욱 내 책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이런 생각은 근거 없는 자만심에서 기인한 생각이라는 반성을 항상 하고 있다. 브런치에서 글을 삭제하면, 그 글을 읽어보고 소장하기 위해서라도 내 책을 찾지 않을까 하는 허황한 상상도 한몫을 한 것임이 틀림없다. 무슨 대단한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닌 주제에, 한참 건방진 생각이었다.

      

그것도 아닌 경우는 글을 다른 곳에 재활용하기 위해서 삭제한 경우이다. 글을 쓰고 각종 공모전을 기웃거리는 작가는 거의 모두가 글을 용도별로 관리하는 습관이 있다. 그냥 발표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글도 있지만, 공모전 응모용이나 투고용으로 쓴 글도 있다. 처음에는 글이 좋아서 얼른 빨리 구독 작가님들께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브런치에 발행했다가, 틈틈이 고치다 보니 적당한 공모전에 응모해서 브런치 작가와는 시선이 다른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되는 경우이다. 그런 경우에는 공모전 응모 전에 브런치에 공개된 원작을 삭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원작을 계속 수정해서 전혀 다른 작품으로 만들었다고는 해도, 한 행이나 한 연이라도 같은 글을 공개된 인터넷 지면에 남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이것 역시 건방진 자만이었다. 그렇게 응모하면 혹시라도 당선되기는, 개뿔이었다.

     

그리고 발행 시기가 한참 지난 글도 상당수 발행을 취소하거나 삭제했다. 계속 다른 글을 추가로 발행하면서 후에 발행한 글과 성격상 어울리지 않는 글은 남겨둘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삭제했다. 가끔 보면 다른 작가님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신다. 도무지 그 브런치에서 추구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나는 주로 순수문학 계열의 창작 글을 발행하고 있으면 계속 그런 분위기를 유지해야 하는데, 발행할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나중에 읽어보면 내 브런치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잡다한 신변잡기와 같은 글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 글들은 창작 글을 기대하고 내 브런치를 찾아 주시는 독자님의 눈을 현혹하고 농락하는 글 밖에는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글들도 여지없이 삭제 대상이 되었다. 나 자신부터 다른 작가님 중에 그렇게 두서없이, 일관된 방향성 없는 글을 마구 발행하는 작가님 브런치를 멀리하게 되는데, 그래 놓고는 내가 내 브런치에 그런 글을 마구 발행한다면 그게 말이 되겠는가? 그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의 소산 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애매한 브런치가 될 것을 경계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것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요즘은 발행 속도가 예전과 같지 않다. 거의 일주일에 한두 건 정도 발행할 뿐이다. 간혹 예전에 느꼈던 발행 강박이 다시 찾아오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강박에 굴복하지 않는다. 단 한 편의 글을 발행해도 더 이상 삭제하지 않을 글들만 발행하고 싶다. 지워버리는 손도 힘들지 않도록 말이다.   

   

아침에 잠시 요즘 내가 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하다 보니 이런 글을 올리게 되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서 돌연 삭제될지도 모르는 글을 또 발행했다. ㅎ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에 댓글과 답글을 읽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